불의 항거한 '무골 집안' 기질이 '한겨레 사랑'으로

‘한겨레 주주’ 평화재향군인회 최사묵 공동대표 김경애 <한겨레> 인물팀장l승인2017.05.02l수정2017.05.0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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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한겨레’ 창간 때부터 애독,

양평동 사옥 인근 관악고 교련교사, “독재유산 군사훈련 폐지 주장” 사표

표명렬 장군 ‘한겨레’ 기고 보고 동참, 조부 최구현 의병활동 뒤늦게 ‘발굴’ 

“촛불정신 이어갈 젊은 민주군인 기대”

▲ 예비역 대위 출신으로 <한겨레> 창간 독자 겸 주주인 최사묵 평화재향군인회 공동대표.

“1988년 5월15일 <한겨레> 창간호를 몰래 숨어서 읽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마침 서울 양평동 관악고에서 교련 교사로 재직중이었는데 바로 인근에 한겨레신문사가 들어섰잖아요? 너무나 바르고 옳은 기사들이 한가득 실려서, 어찌 이런 신문이 나왔을까, 한편으로 주위 시선이 두려울정도였어요.”

그렇게 시작된 <한겨레>와 인연은 주주로 이어졌고 마침내 그의 후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고교 졸업 뒤 병사로 입대해 15년간 복무한 예비역 대위였던 그는 교육부 관료들과 회의 때 “박정희 군사독재의 유산인 학생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교련 과목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두어해 뒤 스스로 교련 교사를 그만뒀다. <한겨레>에 기고한 표명렬 예비역 준장의 뜻에 동참해 2005년 8월 평화재향군인회 창립에 앞장섰다. 3년 전부터 표 회장에 이어 평화재향군인회를 이끌고 있는 최사묵(85·사진) 공동대표를 1일 서울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 만났다.

“나 역시 군에 있을 땐 ‘반공만이 살 길’인 줄 알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현실은 많이 달랐어요. 나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만 군에 끌려가고 고생하는 ‘불공평’ 탓에 군에 대한 불신이 컸어요. 그래서 표 장군의 글을 읽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직접 찾아가 만났지요.”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의기투합했다. 3천여명의 예비역 회원들이 뭉쳐 출범한 평화재향군인회는 2007년 6월28일 서울 한강대교 노들섬 둔치에서 ‘한강 인도교 폭파 희생자 위령제’를 휴전 이후 처음으로 열었다. 한국전쟁 반발 직후 대통령 이승만이 먼저 피난간 뒤 국군에 의해 자행된 한강 인도교 폭파로 희생된 피난민 800여명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넋을 위로했다.

“그때부터 해마다 한강 인도교 위령제를 비롯해 전쟁과 군인들에 의해 억울한 눈물을 흘린 곳은 전국 어디든 달려가고 있어요. 제주4·3, 코발트광산, 노근리 등등 민간인 학살 피해 현장을 돌며 추모제도 열었지요.”

올 6월 행사 때는 인도교 현장에 작은 위령탑이라도 세우고자 서울시와 보훈 당국에 제안을 해뒀다.

이어 그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만 아는 지역을 대상으로 '한겨레 보기' 활동을 했다. 2008년에는 표 회장과 함께 서울시청 앞에서 '조중동 OUT, 한겨레 OK' 캠페인도 펼쳤다. 특히 2008년부터 1년간 벌였던 ‘군 내무반에 <한겨레> 보내기 캠페인’을 잊을 수 없다. “군인 양심선언을 꿋꿋이 보도해온 <한겨레>를 지지하고자, 난색을 표하는 국방부를 설득해 창군 이래 처음으로 26사단 내 도서실·휴게실·피시방에 <한겨레>와 <한겨레21> 130여부를 비치했어요.”

그는 지난해 주주·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문화공간 온’ 창립 때 출자자로도 참여했다. 하지만 그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조금밖에 사지 못한 ‘한겨레’ 주식을 앞으로도 더 갖고 싶다”고 미안해했다.

그의 남다른 ‘한겨레 사랑’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뒤늦게 알고보니 무골 집안이었어요. 특히 조부 최구현 선생은 충남 당진 소난지도 일대에서 구한말 무과급제해 을사늑약에 항거한 의병장이셨어요. 그 사실을 지난 2004년에야 이장하면서 관 속에서 ‘의병전투일지’를 발견해 알게 됐지요.“ 의병 활동 탓에 옥고를 치룬 조부는 고문 후유증으로 작고했고 재산마저 다 빼앗기는 바람에 그의 후손들은 내내 가난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10살 때 부친을 여의고 고등학교 월사금도 제대로 내지 못해 간신히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했고, 말뚝을 박았죠. 그런데 68년 ‘김신조 사건’을 겪으며 군복을 벗었어요.”

14대조 선조 역시 정유재란 때 순국한 무관이었다는 그는 “아마도 불의에 맞서는 기질을 물려받아, ‘한겨레’의 불편부당한 논조에 더 끌리는 것 같다”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두 가지 숙제가 있다며, <한겨레>에 도움을 청했다.

“나 역시 고령으로 은퇴를 앞두고, 평화재향군인회를 물려받을 젊은 민주군인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는 지난해 촛불광장과 ‘박근혜 탄핵’을 통해 용기 있는 후배들이 나타날 것이란 희망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또 한가지는 2005년 평화재향군인회 창설을 지지해 기고문을 썼다는 이유로 육사 7기 동기회에서 제명된 고 최추봉(1927~2011) 대령의 자서전을 출간하는 일이다. 황해도 출신으로 미 육군 보병학교 유학과 오키나와 미 특전사령부 근무 경력을 지닌 초엘리트 출신인 추 대령은 87년 퇴역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해, 남가주 백범 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 6.15공동선언 실천 서부위원회 위원 등으로 통일운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고 직전까지 자서전을 썼다는데 미처 마무리를 못했어요. 반드시 명예회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김경애 <한겨레> 인물팀장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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