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호흡한다.

한번 들이쉬매 한 생명이 탄생하고, 한번 내쉬매 한 생명체가 숨을 거둔다. 인간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신의 숨결을 느낀다.

대지가 호흡한다.

한번 들이쉬매 철없던 30년 세월이 지나가고, 한번 내쉬매 철들지 못한 또 다른 30년 세월이 흘러간다. 인간은 환갑이 되어서야 대지의 숨결을 알아차린다.

사람이 호흡한다.

한번 들이쉬매 사랑을 머금고, 한번 내쉬매 숨겨진 욕망이 드러난다. 인간은 사랑의 대상을 욕망하고, 욕망의 대상을 사랑한다. 사랑과 욕망은 이란성 쌍둥이다. 사랑은 인간의 호흡을 유지하는 원동력이고, 욕망은 그 호흡 속에서 목숨을 연명하는 기생충이다. 욕망이라는 기생충을 박멸하려면 인간은 호흡을 멈춰야 한다. 호흡은 사랑이고, 욕망이다.

도시가 호흡한다.

한번 들이쉬매 차량의 매연과 소음이요, 한번 내쉬매 도로는 신음한다. 인간들이 밤낮으로 집에 머물러 있지 않는 한, 도시의 호흡은 투박하고 거칠 수밖에 없다.

2017년 추석 연휴는 길고도 평온했다. 이런 연휴가 달마다 있다면 인간은 행복할까? 아니 행복해질까?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으로서의 행복은 쫓기지 않음이요, 부대끼지 않음이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일상의 도시는 늘 헐떡거렸고, 대지는 먼지로 뒤덮인 채 숨이 막혀 있었다. 긴 연휴는 인간만을 위한 게 아니다. 도시도, 대지도 모처럼 주어진 긴 휴가를 만끽한다. 도시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자 어디선가 누군가의 숨결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대지의 호흡이다. 대지의 숨 쉬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릴락 말락 귀를 간지럽힌다. 대지가 속삭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나는 너에게 다가가려고 그리도 애를 썼건만, 너는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구나. 나의 숨결로 너를 감싸왔다는 걸 아마 너는 모를 거야. 세상도 마찬가지야. 나의 숨결로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잠시 숨을 고른 후 대지가 말을 잇는다.

"내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 인간의 시간으로 한 육십년쯤 되려나."

그제야 나는 홀연히 깨달았다.

"아! 그래서 이제야 들리나보다. 어려서 듣던 대지의 호흡을! 나를 영원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 같았던 그 호흡을! 나를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안내해줄 것 같았던 그 호흡을!"

그리고 대지만 알아듣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동안 나를 감싸줘서 고마워. 그 때는 영원의 세계에서 평화롭게 지낼 날이 올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았지. 앞으로는 너의 숨결 안에서 살아갈게."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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