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성이 나쁜 개들은 인간들만큼이나 많다

퇴근길에 보니 또 집 앞 공터에서 옆집 개가 으르렁 거리며 아들 발 꽁무니를 쫓고 있었다. 아들은 기겁을 하여 도망가는데 개 주인인 할머니는 대문 앞에 앉아 그저 말로만 개를 부르고 있다. 지난번에 아들을 물었을 때도, 상처가 깊지는 않았으나 물린 자국이 선명한 발목을 보여주며 개를 좀 묶어서 데리고 있거나 밖에 풀어놓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또 이 꼴 인거다. 당시에도 이빨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고 그 주변이 벌겋게 부었는데도, 뭐 그 정도 가지고 난리냐고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는 데는 그저 아연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이제 손바닥만한 공터마저 개들에게 빼앗겨, 개가 밖에 있던 없던 전전긍긍하며 놀아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어르신이 되지 못하고 늙어버린 개 할머니는 자식으로 부르는 개들을 앞세우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방까지 팽개치고 쏜살같이 달려가 아들을 쫓고 있는 개를 축구공을 차듯, 달리던 가속도까지 붙여서 그야말로 패널티 킥을 차듯, 배를 걷어차 버렸다. 덩치도 작은 개는 거의 십 미터를 날아가 땅에 뻗어 버렸다. 구세주를 만난 듯 나에게 매달린 아들은 거의 사색이 되어 파랗게 질려 있는데, 개주인 할머니는 자기 개에게 달려가 이리저리 흔들어 보더니 남의 개를 발로 찼다고 악다구니를 쓴다. 조금 있다 개는 낑낑거리고 일어나 나를 보더니 기겁을 하고 집안으로 도망을 갔다. 그 이후로 그 개들은 나만 보면 도망을 갔지만, 애들만 보면 괴롭히는 나쁜 품성 탓에 동네에서 원성이 끊이질 않았다. 지금 같으면 고소를 당해도 여러 번 당했을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있건 없건 풀어놓은 개들만 보면 달려들어 패 주었다. 너희들은 나쁜 개들이고 나 역시 나쁜 사람이다 .....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전 옆집에는 덩치 작은 애들만 보면 달려드는 아주 못된 똥개들과, 절대로 안 문다는 개 세 마리를 키우는 낙으로 사는 무책임한 할머니가 살았었다. 덩치가 그 어떤 개들보다 더 크고 실팍해진 지금도 아들은 개를 무서워한다. 전혀 위협이 안 되는 작은 개를 봐도 불편해하고 언짢아한다. 어린 시절의 나쁜 개와 나쁜 할머니에게서 얻은 트라우마가 깊었던 탓이다. 개를 무척 좋아했던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개와 살았고 여러 마리 키워도 본 내가 개를 비호감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할머니와 똥개들 언저리였던 것 같다.

▲ 유기견 안락사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플라스틱 가짜 팔로 개의 공격성을 테스트 하고 있다(사진 출처 -뉴욕타임즈)

세상에 나쁜 개는 없고 나쁜 관리만 있다고 강변하는 애견가들은 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고 주장하는 성선설 신봉자들과 마찬가지로 황당한 주장들을 늘어놓는다. 개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 훈련을 하고 관리를 잘하면 절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자기 아들을 물어 죽인 개를 키우던 남자도 개박사로 불릴 정도로 개에 관한 한 전문가였다고 알려졌다. 맹견을 몇 마리나 키울 정도로 개를 조련할 줄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아끼던 개가 갓 돌을 지난 아들을 처참하게 물어뜯어 죽였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습니까? 사람도 전혀 고의가 없었는데도 과실로 사람을 죽게 만들면 과실치사로 살인자가 되어 한평생을 무겁게 살아간다. 개가 사람을 물어 죽게 했는데 .... 아무 처벌도 없이 여전히 생일상까지 받을 정도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제 전과 때문에 다른 사람은 물지 못하니, 물어도 참아주는 주인이라도 가끔 맛보기로 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닭살 돋는 책 제목처럼... (만약 <청춘은 아프다> 라는 제목이었으면 백 권도 팔아먹지 못했을 거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애견스러운 이 문장이 나는 아주 거슬린다. 그것은 마치 ‘청춘이 아픈 것은 당연한 것이다.’라는 선입관을 강요하는 것처럼, ‘개는 좋은 동물이고 그러니 멀리하거나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좋다.’ 라는... 생각을 은연중 주입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언어가 무의식 중 인간에게 주입하는 이미지는 생각보다 그 영향력이 아주 크다. 캐나다의 어느 산악 마을에서는 기존에 있었던 친근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곰 주의판 사진을, 무섭고 험악한 공격 이미지의 사진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것은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차안에 있던 어린아이가 곰을 보고 차에서 내려 곰에게 다가갔다가 처참하게 죽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라고 한다. 필시 그 아이는 동물 사랑 교육을 비롯해서 곰돌이 푸우같이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곰들의 이미지만 머리 속에 가득히 있었을 것이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참으로 애매모호하고도 무책임한, 그러나 나는 그런 문장 하나가 가져올, 착시현상에 의한 피해에 대해서 나쁘지 않고 좋은 견주들이 얼만큼이나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일까?

▲ 아기가 있는 자동차로 곰 두마리가 다가 오고 있다. (네이버 블로거 여행 사진 캡쳐)

 

작은 개에게 발뒤꿈치를 물려서도 죽을 수 있다는 뉴스를 보기 전까지는 사실 커다란 개는 몰라도 작은 개들에 대해서는 위협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길 가다가 개를 만나면 그 크기와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흠칫 신경을 쓰게 된다. 뒤 이어 따라오는 작은 짜증감... 주딩이 마개 쫌 하고 끌고 다니라고 !! 세상에 나쁜 개는 인간들만큼이나 많다고 !!!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유원진 주주통신원  4thm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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