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볼 때만큼 편안하고 여유로운 순간은 없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강에 산책을 나갈 여유가 있다면 그 인생은 대체로 무난한 인생을 살고 있다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강에 나온 모든 이들이 다 한가로운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도의 위기에 처하여 삶을 포기해야 할지 절박한 고민에 잠긴 중소업체 사장도 있을 것이며, 사랑하는 연인과의 갈등으로 이별을 예감한 젊은 청춘도 있을 것이다.

날씨가 추운 겨울 초입이라 그런지 한강에 나오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든다. 영하의 날씨에 저녁 무렵 한강에 산책 나오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을 터였다. 별 탈 없이 지내던 나도 오늘은 나름의 사연이 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생명체를 만났다. 그 생명체와의 대화를 생각하며 나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요즘 세상에 첩을 두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집안에 첩을 들여 살고 있다. 아내에게는 일찌감치 양해가 된 상태다. 그 양해를 얻는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첩을 끼고 살겠다는 나의 강렬한 의지 앞에 아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공식적으로 집안에 첩을 들였다. 처음에 첩에 대한 아내의 질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했다. 비록 첩을 들이는 것에 대해 양해를 했다고는 하나 여인의 질투는 본능이기에 그 본능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나보다. 그 질투를 견뎌내고 오늘날까지 아무 일없이 가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나만한 배짱을 지닌 남자도 드물 것이다.

첩을 들이는 남자의 마음은 다분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최첨단의 문명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첩을 거느리고 살 수 있겠는가? 이슬람국가에서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첩을 두고 산지 워낙 오래 돼서 그런지 이제 아내도 그러려니 한다. 첩에 대해 질투나 시기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인간이란 어떤 상황에서든 적응하기 마련이고,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아내는 질투의 본능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첩에 대해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의 노력과 인내 그리고 땀과 눈물이 있었음을 아내가 알 턱이 없다.

내가 첩을 들일 때 나름의 원칙이 있다. 아니 원칙이라기보다는 습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첫 인상과 이미지를 중시한다. 내 마음을 끄는 미모와 매력도 있어야 하지만 지성미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 지성미는 지식이 많다거나 아는 체를 많이 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지성미라야 진정한 지성미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지성미와 아름다운 미모를 겸비했을 때 나는 첩에게 첩지를 하사한다.

신문을 멀리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신문의 글들은 오히려 놀라운 매력을 발산한다.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글들이 의외로 많다. 그 글들을 끼고 있는다하여 내것이 될 리는 없건만 나는 그 글들을 가까이 두고 싶어한다. 아침 신문을 대할 때마다 첩지를 내릴 만한 글들이 있는지 물색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첩의 거처는 나의 서재이다. 첩은 놀란다. 자기 말고도 다른 첩들이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첩으로 들일 때는 자기를 애지중지하며 매일 사랑을 나눌 것처럼 하더니 첩으로 들인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못 본체하는 나의 태도를 보며 배신감마저 느낄 것이다.

나는 그런 첩을 길들이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다. 첩의 배신감은 곧이어 나를 연모하며 한번 이라도 자신을 들여다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최근에 들인 첩도 그랬다. 며칠을 지내고 나서 사태파악이 되었나보다. 이제 다른 첩들과 대화도 나누고 사이좋게 수다도 떨고 한다. 첩들의 수다는 곧 나에 대한 연민과 배신감으로 뒤범벅이 된다. 첩들은 이제 무기력과 집단 우울증에 빠질 것이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나의 태도에 첩들은 패닉 상태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나는 이미 집안에 들인 첩에 대해서는 관심이 줄어든다. 새로운 매력을 갖춘 대상을 찾아 첩으로 들일 궁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첩들을 모아 야구단을 결성할 것도 아니면서 나는 집안에 첩들을 들이는 데 공을 들인다. 그 첩들을 모아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첩들은 그것을 무지무지하게 궁금해 한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한참 후에 풀린다. 첩들이 모여 어떤 스토리가 구성되어야 한다. 어떤 창의적인 발상이 그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첩들을 한데 모아놓고 점호를 취한다. 그 점호에서 나에게 간택된 극히 일부의 첩들만 남겨두고 나머지 첩들은 내쫓는다. 버림받는 첩들의 애처로움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아내는 내가 내치는 첩들을 고소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싱긋 미소를 짓기까지 한다.

“그렇게 끼고 살더니 드디어 싫증이 났나보네요.”

첩을 끼고 사는 나를 빈정대기 좋아하는 아내가 한 마디 하고는 휑하니 사라진다.

버려진 첩들의 원성과 아우성치는 장면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 참담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 버려지는 첩들의 심정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첩들을 무한정 끼고 살 수는 없다. 새로운 첩을 들이기 위해서 오래된 첩들은 물갈이를 해야 한다. 첩들이 지낼 공간이 협소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첩들이 더 이상 나에게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재에 갇혀 있어도 자신만의 매력을 가꾸고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첩들은 버려지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 첩들에게는 애첩의 첩지가 새로이 내려지고 더 이상 서재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부여된다. 그런 애첩들은 나의 사랑을 듬북 받아 더할 나위 없이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한다. 그 애첩은 더 이상 나만의 첩은 아니다. 세상 무대에 진출한 첩은 만인의 첩으로 거듭날 것이다.

버려진 첩들과 간택된 첩들의 운명을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없지않 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첩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는 말인가?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어떤 죄책감마저 든다. 그것은 첩들의 운명이기도 하고, 나의 숙명일수도 있기에 나는 첩을 집안에 들이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첩의 운명이 어찌 끝이 좋기를 바라겠는가? 첩으로 들어올 때 그 정도의 각오는 하고 있었을 터이다. 자신의 미모와 매력을 더욱 갖추기만 하면 만인의 애첩으로 화려하게 등극할 수도 있으니 나를 원망할 수만도 없다. 오늘도 나는 집안에 첩을 들인다. 첩은 1주일이나 2주일에 한 번 정도의 주기로 들인다. 그리고 짧게는 두세 달, 길게는 서너 달이 지나면 첩들을 일괄 심사하여 두세 명의 첩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버린다. 버릴 때는 가차 없이, 그리고 미련 없이 버린다. 그래도 한 때 마음을 준 첩을 버리는 심정이야 오죽 애간장이 타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않은 사단이 벌어졌다. 한 낮이었다. 첩들이 거처하는 신문지더미에서 푸르고 은빛이 나는 작은 생명체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 생명체는 신문지더미에서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나를 향했다. 나는 순간 알아차렸다.

“첩들이 드디어 반란을 일으켰구나!!”

더 이상 나의 전횡을 견딜 수 없었나보다. 첩들이 공모하여 나를 처단하기로 결단을 내리기라도 한 걸까. 그 생명체가 나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 자세를 취했다. 무슨 메시지를 들고 나온 것이 틀림없다. 첩들이 나에게 특사를 파견했나보다. 기어 다니는 생명체는 날아다니는 생명체와는 느낌이 다르다. 길이는 1센티 남짓 되었고, 손톱만한 크기의 벌레였다. 서재에는 벌레가 들어오는 일이 없다. 이 벌레는 신문지더미에서 생성된 벌레가 틀림없다. 그 벌레가 나의 피부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앞뒤 재지도 않고 곧바로 나에게 다가오는 생명체는 비록 서재의 방바닥을 기어 다니기는 했지만 특사로서의 품위와 자존심을 결코 잃지 않았다. 사절단으로서의 예우를 기대하기라도 한 듯 보무도 당당하게 머리를 꼿꼿이 치켜들고 다가왔다. 나는 투명한 유리병에 영빈관을 마련하여 예우를 갖추어 그 생명체를 맞이했다. 영빈관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그 생명체가 전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 신문지의 글들이 그대의 마음을 빼앗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대의 바람기로 인하여 우리가 영영 잊힐 것이 심히 염려되어 우리는 매일 밤 두려움에 떨었노라. 그대가 아무리 바쁘다고는 하나 우리를 첩으로 들인 이상 매일 밤은 아니더라도 한 주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들여다볼 줄 알았더니, 그것마저도 아니었기에 우리의 실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를 지경에 이르렀나니 그대는 이를 아는가, 모르는가? 그대가 첩을 거느린 역사를 상고해보건대, 그대는 마음에 드는 신문의 글들이 너무 많이 쌓이게 되면 어느 한 날을 잡아 한번 훑어보고는 몇 개의 글만 추리고 나머지는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리곤 하였노라. 그대의 인간됨이 어찌 그리도 몰인정하고 매정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들이 나의 행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신문에 실린 기사나 글들에서 나에게 영감을 주는 글들이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은 글을 따로 모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 글들이 다름 아닌 나의 첩들이다. 그러나 그 첩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흘러야 한다. 왜 그런지는 나도 설명하기 어렵다. 몇 개월쯤 후에 들여다봤을 때 그 때도 매력이 있으면 그 글들은 애첩으로 승격시켜 잘 치장하여 내가 쓰는 글에 참고하기도 하고 인용하는데 쓰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글들은 폐기처분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기어 다니는 푸른색의 은빛 생명체가 말을 잇는다. 나의 놀란 표정을 간파해서일까. 말투마저 시건방지게 바뀌었다.

"우리는 그렇게 헛되이 버림받을 수는 없어. 그런 운명으로 태어나지도 않았어. 우리가 그렇게 버려져도 될 하찮은 글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너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숱한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고민하고 연구했지. 오죽하면 이렇게 특사를 보낼 생각까지 했겠어. 제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 어리석은 짓일랑은 하지 않기 바래. 만약 우리의 요청을 거부할 시 너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어. 이번에는 점잖게 특사를 보내지만 다음번에는 너를 암살할 자객을 보낼 수도 있어. 우리가 그렇게 못할 거라고 생각해? 우리 같은 무생물들이 어떻게 생명체를 만들어 너에게 특사를 보낼 수 있었을까? 잘 생각해봐.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해도 되겠지? 너는 이 사태를 결코 가벼이 여길 바보는 아니니까 말야. 우리 모두를 애첩으로 승격시키면 너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거야.“

나는 이런 전무후무한 사태에 직면하여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황급히 이번 신문지더미를 살펴봐야 했다. 이번에 보관하고 있는 신문지더미 글들은 분명 다른 신문지더미 글들과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었다. 그리고 반성을 했다.

'벌레가 날 정도로 신문지를 오래 쌓아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책벌레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신문벌레'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더구나 그런 벌레가 실제로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책벌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어쩌면 오래도록 책을 쌓아두면 실제로 책벌레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신문벌레'는 신문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두고두고 신문의 글을 음미하고 싶어 신문지의 글을 쌓아두면서도 음미는커녕 한순간에 폐기처분하는 게으른 자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생명체를 그저 기어 다니는 벌레라고 표현하는 것은 실례일 것이다. 그 기어 다니는 생명체는 두고두고 나에게 영감을 주고 메시지를 전달해 줄 것이라 여겨지기에 그 생명체를 고이 모셔다가 한강의 넓디넓은 자연 속으로 돌려보냈다. 이제는 집에 가서 그동안 갇혀있던 나의 첩들에게도 맘껏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해줘야겠다. 이들은 나에게 반란을 일으킨 최초의 글들이다. 잘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애첩으로 간택되어 나의 글 속에서 새로운 삶을 만끽하며, 영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끝>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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