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 아닌 통일국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12월 14일 <백범일지> 70돌 기념 특별전이 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기념관 강당에서 펼쳐졌다. 

백범 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김형오)는 백범일지 출간 70주년을 맞아 관련도서 380여 권을 선보이는 특별전을 선보였다.

축사로는 한국당의 나경원 의원, 광복회 박유철 회장, 임시정부기몀 김자동 회장이 맡았다. 아울러 임성헌 보훈처 보훈예우국장, 서울대학교 박찬욱 부총장, 한국인문사회연구원 홍일식 이사장 등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백범일지, 70년간의 대화>의 개막식의 테이프를 끊었다.

▲ 백범회관 입구에 펼침막에 "백범일지, 70년간의 대화"를 홍보하고 있었다

"1947년 12월 5일 국사원에서 <백범일지>를 처음 활자화한 이래 강산이 일곱 번 바뀌었다."고 김형오 기념사업회 회장은 말했다. 이 백범일지를 통해 영화, 드라마, 창무극, 창작, 판소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것이라고 김회장은 말했다.

▲ 김형오 백범기념사업회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그는 백범 관련 소장 자료를 찾고 있다면서 유적, 유품, 휘호, 사진(영상), 도서, 메모(쪽지) 등 유형의 자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저격 당하여 평생동안 가슴에 박힌 총탄을 그대로 간직하고 사셨다. 그래서 휘호할 때에 떨림채를 부득이하게 쓰시게 되었다."는 김학광 동학후원학 회장은 백범이 동학의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제자였음을 감격스럽게 설명하였다. 

▲ 백범을 죽인 안두희, 그 안두희를 죽인 박기서 씨와 동학인 김학광씨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다. 백범 김구는 동학을 창시한 최시형의 제자이다. 백범을 죽인지 47년 만에 평범한 시민에 의해 ‘역사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안 씨를 죽인 사람은 당시 47세의 평범한 버스기사인 박기서. 그는 시장에서 홍두깨(몽둥이)를 사고 매직으로 ‘정의봉(正義棒)’이라고 적었다. 오랜 탐문 끝에 찾아낸 안 씨의 집에 난입해 그 방망이로 사정없이 휘둘렀고 안 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박 씨는 살해 직후 성당에 찾아가 고해성사를 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 박 씨는 “배운게 부족한 내가 민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안두희 같은) 인간 쓰레기를 치우는 일 뿐이었다”고 진술했다. 평소 백범을 존경해왔고 그는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이 천수를 다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신념이 있던 것이다. 박 씨는 반인륜적 행위로 불리는 ‘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여론은 달랐다. 살인을 정의로 포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박 씨를 ‘의사(義士)’라 부르며 ‘이 시대의 독립운동가’로 추앙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시민단체들은 박 씨의 무죄판결을 위한 구명운동을 벌였고 무료로 변론해 주겠다는 변호사들도 잇따라 등장했다. 재판부도 박 씨에게 호의적이었다. 박 씨는 7년을 구형받았지만 1심에서 살인죄 최소형량인 5년을 선고받았고 2년이 감형돼 3심에서 3년형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때 특별사면 되어 지금은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

"남북통일의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백범 김구. 그는 누구보다 조국의 '진정한 통일'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는 안두희 살인범을 때려잡는데에 평생을 바쳤던 거인 -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 박기서 대표의 절규이다. 

지금도 그는 택시를 운전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다. 기자는 현재의 근황을 알아보면서 그가 백범기념관에서 방문객들에게 해설하는 안내역을 맡으면 방문객들의 감격은 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 백범일지 출간 70주년 기념특별전의 <민족정기>가 유난히 돋보인다. 그 앞을 박기서씨가 감회어린 심정으로 서있다. 그는 지금 애국 선열들이 잠들어 계신 효창원을 국립묘지로 해야 한다는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 백범일지의 특별전의 참석자들이다.

백범기념사업회 관장이 어떻게 이승만 독재자에서 친일 박정희의 독재자로 그리고 오늘의 연장선상으로 한국당의 김형오로 이어지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백범 선생께서는 동학에서 시작하여 유학과 불교에 입신하였고 나중에는 기독교에 귀의하였으나, 모두를 긍정하고 포용하고 상생하려는 한국사상의 원류 정곡을 꿰고 계셨다. 바로 동학사상은 외곬으로 기울어 편향된 세계관을 배격하고 모두를 포용하고 사랑하고 아울러 상생 공존의 길을 찾아가는 무극대도인데, 백범은 그러한 도인이셨다. 백범은 좌파니 우파니 하는 잣대로는 헤아릴 수 없는 정통의 한국인이다. 이러한 경우는 좌파, 우파에서 모두 배격하여 결국 백범은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현재 동학 천도교의 입지가 이처럼 어려운 상태에 처한 것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고 은인자중하여야 한다. 근래 천도교 역사를 보면 좌파, 우파 양쪽으로 공격을 당하여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것이다. 이것은 수운대신사께서 말씀하신 상오국지목국하니 수불실어삼철이라고 예언하신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삼절의 운에 처하나 운수를 잃지 아니하고 기어이 회복되리라는 말씀이니, 경거망동하면 아니 된다는 경계의 말씀이다. 지금도 어느 보수쪽에서는 김구를 좌파 빨갱이로 보는 것은 참말로 안타깝다. 

▲ 좌에서 두번째가 박기서이고 우측에서 첫번째가 차영조 독립유공자유족회 부회장이다.

백범이 건설하고자 했던 통일국가는 무엇이었는지, 오롯이 하나된 조국을 꿈꿨던 백범의 다양한 노력들은 무엇일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국문제에 관한 모스크바 협정을 둘러싸고 미국, 소련 그리고 남-북, 좌우의 대립으로 통일정부 수립의 꿈이 좌절되어가자 남북지도자 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이 제기되기 시작했다."고 독립유공자유족회 차영조 부회장(74,임정의 국무위원 차리석의 아들)은 광복절을 건국일로 만드는 것은 김구의 항일독립정신으로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분은 자유 한국당의 김형오는 백범기념사업회 회장으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면서 "김구의 항일, 독립, 통일정신을 모독하는 사람들이 주접을 떠느냐?"면서 물갈이를 해야 한다면서 적폐의 대상들은 물러가라는 큰 소리를 외쳐서 장내는 한때 소란스럽기도 하였다.

▲ 효창공원에 안치되어있는 백범 김구의 묘이다. 안두희를 죽인 박기서씨는 효창공원을 성역화하는 국립현충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1945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절이라고 하는 주장은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이승만 박사 밑에 들어가 권력을 잡고 대를 이어 호의호식하는 부유한 친일파 기득권 후예들이 일제시대를 긍정해야하는 이유가 있어요. 대한민국 수립은 1919년 삼일혁명에 기원을 두어야 해요. 그 뒤에 친일파의 발호와 6.25전쟁의 혼란, 먹고살기에 급급한 경제적 궁핍 속에서 이러한 민족정기의 문제는 아예 삭아버렸습니다. 이제라도 민족정기의 부활이 백범 정신의 선양과 더불어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참석자들의 웅성거림이다.

▲ 참석자들이 기념식의 자리를 참여하면서 대화를 하고 있다.

"김구는 가능한 지역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자는 유엔의 결정안이 나오자 이에 대한 반대에 앞장섰습니다. 우리민족끼리 피를 흘리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단독정부 수립안에 대해서 반대했습니다." 라고 박종호(94, 평화통일신문 고문) 참석자는 말했다.

김구는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김일성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구는 김규식과 함께 미-소 양군 철수, 남북요인회담과 총선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한 후 무조건 분단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편지를 보냈고, 결국 김일성을 만났고, 그러나 김구의 몸부림은 미완으로 끝났다.

▲ 백범일지 출간 기념식을 축하하는 광복회 박유철 회장 등이 보내온 꽃다발이 자리를 빛내고 있다.

백범의 노선은 참으로 올바른 길이었다. 그러나 그 "올바른 정의"가 현실에 구현되고자 하면 반드시 힘이 수반되어야 한다. 남북한 온 국민이 백범정신 아래 하나로 뭉쳐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고, 미-소의 외세와 투쟁하여 이를 물리쳐 냈어야만 진실로 독립국가 건설의 기초가 닦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당시 해방정국과 한반도는 아무런 무기도 없는데다가 거국적인 지도력이 분산되었으니, 깊이를 알지도 못하는 "주의자"들의 선동과 등쌀에 빠져 극심한 내부혼란을 가중하고 있었다. 백범의 리더십도 어쩔 수 없었고, 더구나 암살 당하고 말았으니 오호 통재라! 

허지만 머지않아 백범의 소원 평화통일은 반드시 곧 될 것이라고 윤기하(국보법) 대표는 말한다. 윤대표는 백범의 통일정신에 빠져 이곳 백범회관 행사가 있는 날에는 방문하여 우리의 소원 통일을 기원하면서 성묘를 한다. 유일하게 "백범일지" 한권이 민족의 진로를 밝혀주는 우리 한민족의 바이블로서 뚜렷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윤대표는 말했다.

오늘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한 여인이 있었다. 효창공원 입구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백범을 찾아오신 손님이 오면 같이 차를 하면서 성묘도 안내한다는 박연주(45)이다. 이문의 商術(상술)인이 아닌 사람을 남기는 商道(상도)인이 늘어날 때 백범의 소원 - 평화통일은 곧 될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이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고순계 주주통신원  sangdo1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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