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35~138일째

바투미, 그리스어로 ‘깊은 항구’라는 뜻이다. 이곳은 아자르 자치공화국 수도이며 아주 오래 전부터 문명의 교차로였다. 바투미 시장이 사람들로 붐비고 흥청망청 거릴 때 동서양은 더욱 가까웠다. 이곳은 예로부터 동서양의 문물이 오고가던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한 삶의 터전이었다. 그리스 신화 속 마녀 메데아가 ‘이아손 원정대’에게 황금양털을 건넸다는 신화가 이 광장에는 살아서 숨 쉬고 있다.

▲ 바투미 중앙광장에서 양털 가죽을 안고 서있는 마녀 메디아상(像)

황금양털을 찾아 나선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모험담은 고대신화의 대표적 이야기 중 하나다. 속 좁고 질투에 눈 먼 신이 인간과 비슷한 것이 그리스 신화가 흥행에 성공한 요소 중의 하나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정신 못 차리는 남자들, 사랑에 눈멀어 부모와 나라를 배신하는 여자들까지 총출동해서 사람들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그 까마득한 옛날에도 그리스 신화의 무대가 이곳 바투미라니 생각보다 실크로드의 역사는 더 오래되었고, 사람들도 더 자유롭게 왕래했나보다. 메데아는 이 광장에 우뚝 솟아 흑해를 바라보며 아직도 이아손을 기다리는 듯하다.

아르고호에 탄 50명은 이름만 대면 금방 알만한 호화 멤버들이다.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카스토스와 폴리데우케스,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 리라 명인 오르페우스 등 당대 최고의 멤버들이 총 망라되었다. 이런 기라성 같은 호걸들이 목숨을 내걸고 풋내기 20대 빈털터리 청년을 따라 나선 건 그의 바보스러운 리더십 때문이었다. 그는 어느 순간에도 예의를 지켰다. 복수를 하러 가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강을 건너는 할머니를 도와주다 신발을 잃어버리고 숙부에게 왕권을 되찾으러 가면서도 신발을 한쪽만 신고 가기도 했다. 지켜주지 못하고 보낸 바보리더십의 우리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이 그리워진다.

 

어제 마친 지점에서 시작하여 바투미 시내를 가로 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300년 동안 오스만터키의 지배로 다른 조지아지역과 달리 회교도로 개종했던 지역이어서 아직도 시내 곳곳에 모스크가 많이 남아있다. 사람들도 터키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터키어를 구사했다고 생각하진 마시라! 터키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이야기다. 겨울이 긴 조지아는 터키에서 건너온 야채들이 시장을 채운다. 계속되는 터키 침략 속에도 자신들만의 조지아 정교를 지키고 그곳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고 살아왔다.

▲ 동반주자들

바투미 시내를 벗어나서 산을 하나 넘고 터널을 지나자 송어양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이 조금 이르긴 했지만 송어를 한 마리 사서 즉석에서 박호진씨가 매운탕을 제대로 끊여낸다. 조지아의 송어와 한국의 고추장의 만남은 치명적인 입맛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 점심으로 송어 매운탕을

고국의 입맛에 영양까지 공급받은 나는 힘차게 흑해와의 마지막 인연을 멋지게 장식하면서 달리고 있는데, 아자르 자치공화국의 교육, 문화, 체육부 장관이 보낸 비서관이 우리 일행을 찾아와 장관 면담과 방송국 인터뷰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한다. 코불레티를 지나서 38.5km를 달린 지점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 지점에서 일정을 마치고 장관 면담과 인터뷰를 했다.

▲ 아자르 자치공화국의 교육, 문화, 체육부 장관 인터뷰
▲ 아자르 자치공화국의 교육, 문화, 체육부 장관 인터뷰 후 기념 사진
▲ 아자라 방송국 인터뷰

지난밤 묵었던 호텔에서 다시 여장을 풀고 다음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려고 나섰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어차피 내일쯤 하루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핑계 김에 잘됐다. 다시 짐을 풀고 늦잠을 즐기고 일어났는데 송교수님이 아자라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고 전한다. 그는 정말 집요한 외교관답게 평화마라톤 홍보에 혼신을 다한다.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은 흔치 않다. 내일이 조지아 신년 명절인데 아침 생방송에 나와서 유라시아 달리는 이야기를 방송하자는 제의다.

조지아의 제일 큰 명절날 아침 황금시간대에 우리 평화통일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큰 기회다, 그러면 하루 더 지체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쉽지만 거절하고 말았다. 거절하고 돌아서니 일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평화마라톤 목적이 세계인들에게 한반도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지를 받는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다시 전화를 하여 생방송 출연을 약속했다.

평화가 중요한 건 조지아도 더하면 더했지 우리에게 뒤지지 않는다. 유사 이래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을 받아왔고 얼마 전에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국토의 일부를 점령당했으니 말이다. 새해 첫날 ‘평화이야기’를 듣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큰 덕담이 될 것이다.

▲ 2018년 1월 14일 조지아 설날 Ajara TV 방송 아침 생방송

그리오골레티에서 오랜 시간 정들었던 흑해와 작별하는 순간이 왔다. 이제부터는 내륙으로 들어서서 본격적인 동장군의 기세와 맞서야 한다. 드넓게 펼쳐진 때 묻지 않은 야생의 코카서스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며,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땅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외세 침략에 맞서 싸우며 자신들만의 전통문화를 지켜온 억세고 순박한 삶이 있는 곳. 푸시킨이 극찬한 맛있는 음식이 있고, 그것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약 8000년 전부터 와인을 제조했다고 조지아인들은 최초의 와인 생산국이 조지아라고 믿고 있다.

▲ 묵게된 호텔의 Receptionist와 함께 싸고 맛있는 조지아 와인 한잔

바투미 중앙광장에서 양털 가죽을 안고 서있는 마녀 메디아상(像)을 보면서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모험담을 머리에 되새긴다. 문득 드는 생각이 어찌 보면 바보스럽기까지 한 올바른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고기를 잡아 나누듯, 꿈과 희망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어부아저씨, 폭풍 한가운데서도 중심을 잡고 파도를 헤쳐 나가는 선장 같은 지도자. 분쟁이 있는 곳에선 화친의 중재자, 넉넉한 미소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 영혼을 팔지 않고 진흙투성이 바닥에서도 연꽃으로 피워낼 줄 알며 사람들을 신명나게 하는 지도자! 그런 바보 노무현이 그립다!

▲ 2018년 1월 14일 일요일 조지아 Bobokvati에서 Grigoleti까지 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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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월 14일 일요일 조지아 Bobokvati에서 Grigoleti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

▲ 1월 14일에서 16일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조지아는 러시아명으로 그루지야라고 부른다. 이글에서는 조지아로 통일하여 쓴다.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 강명구, 송인엽, 박호진 / 동영상 : 송인엽, 박호진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강명구선수유라시아평화마라톤 138일째(2017년 1월 16일)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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