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전>

본능적으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우리 동네 삼총사로 불리던 성천, 찬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뗏목을 만들었다. 말이 뗏목이지 광에서 잘 들지도 않는 톱을 꺼내다가 뒷산에서 구불대는 생나무 10여 개를 잘라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백사장에 끌어다 놓았다.

노끈과 칡넝쿨을 같이 끊어 와서 나름 야무지게 엮었다. 테두리에는 들 물에 떠 밀려온 스티로폼 대여섯 개를 주워다가 매달았다. 우리 셋은 비장했다. 삿대도 준비했다. 온 몸에 땀이 배어 쉰내가 나는 줄도 모르게 열심히 자르고 묶기를 두세 시간만에 드디어 출항할 일만 남았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바다에 뗏목을 물이 허리쯤 차는 곳까지 끌어다 놓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사처럼 용감하게 나아갔다. 아무런 먹을 것이나 안전장치는 없었다.

▲ 출항 준비

결과는 1분도 못 견디고 그대로 난파되어 가라앉고 말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내 10대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첫째를 꼽으라면 이 무모했지만 아름다운 도전의 한 장면이다.

당시 자매결연을 맺은 독산국민학교의 초청으로 수학여행 삼아 처음으로 육지구경이자 서울구경을 나섰던 길에 각자 초대되었던 집 친구의 어머니가 "무슨 선물을 해줄까?" 하는 호의에 서슴없이 "책이요"라고 대답한 덕분에 10여 권의 책을 한 보따리 선물로 받아 들고 돌아오는 내내 배부른 느낌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 골랐던 책들이 주로 톰 소여의 모험, 해저 이만 리, 명탐정 홈즈 등등 이었는데 책을 읽고 또 읽고 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에 들어가서 등록금 벌랴, 용돈 벌랴 정신이 없던 때에도 세상은 나를 그냥 비껴가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세상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6.10 항쟁에서 작은 힘들이 모여 큰 승리를 맛보는 듯했다. 그 나머지의 완성은 정치인들이 해낼 것으로 믿었고,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왜 그렇게 돈이 귀했는지 모르겠다. 하물며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에 용돈까지 벌어야 했던 가난한 물 건너온 유학생에게야 더더욱 고단했던 것 같다. 87년 대학로 백기완 선생의 연설에서 대선출마 공탁금 마련을 위한 현장 모금에서 동전은 말할 것도 없고 버스 토큰까지 모아진 것을 생각하면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그려질 것이다.

정치, 사회적인 환경 변화는 급물살을 탔고 그 즈음에 '제대로 된 언론'을 표방한 한겨레의 창간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내 20대의 강렬한 기억이 생생하다.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나는 새벽에 신문배달로 하루를 시작 했다. 신문배달로 벌게 된 두 달치 월급의 거금(?)을 들고 서슴없이 찾아가 창간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30년, 나와 한겨레는 각자의 터전에서도 같은 가치를 지지하고 같은 방향을 보고 살아왔다고 믿는다. 한겨레는 나의 젊은 시절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리라 기대했던 어미새라고 할까? 나에게는 하나의 좌표이자 기준이 되어준 것이 틀림없다. 안 먹어도 든든하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적금통장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30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지 몰랐다. 아직도 바다에 무모하게 뗏목을 띄우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라니, 어른들이 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가더라"는 말씀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큰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한겨레 주식을 선물하였다. 둘째도, 셋째도.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두 주주가 되었다. 30년 전 내가 느꼈던 '두근거림'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애써서 내 손으로 직접 번 돈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내 발로 찾아가서 주주가 되었던 그때 나의 감정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그 한겨레를 삶의 좌표로 삼아 꿈을 펼쳐 가기를 희망한다. 내 아이들에게 그 주인 됨의 마음이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의 좌표가 되고 기준이 되어 주리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

▲ 등대처럼

나는 서른살이 된 한겨레와, 앞으로 험난한 이 세상을 서른번 이상의 또 다른 30년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세상은 작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내는 것이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란다. 무모한 도전은 없다. '모든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무모해 보이지만 목표를 향해 원칙을 지키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우직한 도전을 바란다. 지난날 돌이켜보면 어렵고 배고팠던 젊은 시절이 전혀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정겨운 추억으로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게 더 큰 가치와 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모든 사람들이 "한겨레가 하는 일이라면 믿을만해", "한겨레가 자랑스러워"라고 할 만큼 세상의 좌표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한겨레의 또 다른 30년에도 한겨레의 '핵심가치'를 꽉 부여잡고 가기 바란다. 한겨레에게 '잔재주'는 어울리지 않는다. 초심을 잃지 말고 '한겨레'에 어울리는 큰 그림을 그려주길 바란다. 내가 어린 시절 비록, 아무런 대책도 없고 먹을거리 준비도 없이, 200리 육지를 향해 무모하게 도전하여 장렬히 실패 했지만, 결국 5대양 6대주 20여개국을 돌아 다니며 세계인들과 만나는 무역인이 되었듯이, 한겨레가 부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첫 항해의 꿈을 함께 싣고 갈 높은 등대이자 큰 배가 되어주길 바란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부에디터

김진표 주주통신원  jpkim.internation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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