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지 몇 년이 흘렀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우스개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름 바쁘게 지내온 것 같다. 지리산 자락에 집지어 자리 잡기, 농사, 전교조 사무실 봉사, 사회운동(각종 회의 및 행사 참여), 지리산 탐사(동네, 둘레길, 산행), 지인 만남, 독서와 수행, 방문객 맞이 등.

올해의 콘셉트은 ‘자유와 여행’으로 잡았다. 농사도 대폭 줄이고, 각종 모임 참여도 최대한 줄일 계획이다. 그리하여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으면서, 가끔 여행을 다닐 생각이다.

3월엔 여수를 1박2일로 다녀왔다. 오동도에 들러 동백을 보고, 남으로부터 올라오는 봄을 느끼고, 여수 밤바다의 낭만포차에 아내와 마주앉아 해물 모둠에 소주를 마셨다. 둘째 날은 새벽부터 호우주의보 속에 줄기차게 비가 쏟아져서 계획했던 동네 탐방은 하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점심으로 장어탕을 먹고 시장에 들러 우럭과 민어 건어물을 몇 마리 사가지고 서둘러 돌아왔다. 여수여행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시내 곳곳에 공중전화가 여전히 남아 있고, 프랜차이즈 가게가 거의 없다는 점과 오동도에는 평일 낮인데도 젊은 방문객들이 많이 보였다는 것.

▲ 여수 밤바다
▲ 여수 밤바다

4월엔 모처럼 멀리 뛰기로 했다.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을 4월 16일부터 24일까지 다녀 올 계획이다. 오랜만에 나가는 해외여행을 굳이 우즈벡으로 정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이유는 ‘한반도 통일 기원 유라시아 평화마라톤’을 진행 중인 강명구씨를 격려하기 위함이다. 강명구씨는 지난해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하여, 매일 42km씩 달리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16,000km에 달하는 유라시아대륙을 매일 마라톤완주로 이어달려 오는 10월에는 북한 땅을 달리고 판문점을 통과 광화문에 도착할 예정이다.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고 힘을 모으기 위해 그동안 유럽 여러 나라를 달려와 지금은 중앙아시아를 달리는 중이다. 우리가 우즈벡에 도착할 때쯤 강선수는 수도인 타슈켄트 부근을 지나갈 예정인데, 이때쯤 전 코스의 절반인 8,000km를 달성할 것이라 한다. 환영식도 하고, 하루는 우리도 강선수와 함께 달릴 예정이다.

▲ 강명구 마라토너가 타슈켄트까지 달려올 길

 나의 목표는 강선수와 하루를 완주하는 것이다. 42.195km 쉽지 않은 목표다. 그런데, 요즘은 (초)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인 날이 많아 연습에 차질이 생겨, 나의 목표치를 하프 정도로 줄여야 할 것 같다. 반도반촌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지리산은 산악지형이어서 마라톤 연습에 적합하지 않아, 광주에 있을 때 달리는 데 미세먼지가 심한 날을 제외하면, 연습할 수 있는 날이 며칠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중 상당수는 항일 독립운동 후손이다. 일제 탄압이 심한 조선을 떠나 연해주에 살다 스탈린의 이주정책에 의해 불모지라 할 중앙아시아로 내몰렸다. 모진 고생 끝에 정착하였으나, 또 전쟁터에 차출되어 많은 이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아픔이 서린 곳이다. 고려인마을을 찾아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싶다. 또 이 나라는 이슬람 국가다. 나로선 이슬람국가 방문은 처음이다. 실크로드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나를 끌어당긴 요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는 고려인은 약 4만 명이고, 그 가운데 약 4천 명(그 중 80%가 우즈벡 출신)이 광주시 광산구(월곡동, 우산동 등)에 산다고 한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돈 벌기위한 목적인데 비해, 광주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광주에 정착하여 고국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나도 이번 우즈벡 여행이 고려인 정착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 같다.

5월엔 제주도행을 예약했다. 3년여 전 가을에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애월읍에서 했었는데, 이제 또 제주도를 간다. 몇 년 전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유행하기 시작한 때, 우리 부부도 서둘러 제주도에 가 한 달 살기를 했다. 매년 봄이면 제주도를 방문했지만, 단기 여행으로 아쉬움이 컸기에 모처럼 긴 시간을 내어 제주도를 속속들이 즐기기로 맘먹었었다. 특히 이번에는 가을 제주를 만끽하고, 해산물도 많이 먹고 오리라 맘먹었었다. 그런데, 이 두 기대는 실망으로 끝났다. 제주가을은 실망스러웠다. 제주가 아열대 지역이어서 난대림이기에 단풍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다. 제주 가을은 억새와 감귤에서 겨우 느낄 수 있었다. 한라산 중 산간 이상까지 가야만 단풍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 해산물이 풍부하리라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빈약했다. 제주에는 해변에 갯벌이 없기에 뻘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이 없었다. 그리고 한 곳에서 1달을 머무는 것보다는 사방 돌아가면서 1주일씩 머물렀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제주도는 전과는 많은 변화가 진행 중이었다. 중국 관광객이 넘쳐났고, 여기 저기 개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다음 여행 때는 제주도의 옛 맛을 기대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파도

이번 제주 여행은 3박 4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제주를 맛보기로 했다. 성산에서의 1박은 북스테이에서 하고 일출을 볼 것이며, 다음 날은 서귀포를 거쳐 모슬포에서 일몰을 보고 1박하고, 한림과 애월에서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 밤은 제주시내에서 보내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는 제주 4.3항쟁 70주년이기에 항쟁유적지도 돌아 볼 예정이다. 산중생활에서 보지 못한 바다는 맘껏 볼 수 있겠지 기대된다.

6월부터의 여행계획은 추후 세워나갈 생각이다. 서울, 강원도, 전라도 곳곳, 지리산권 등이 대상지로 떠오른다. 지리산 자락에 살지만, 지리산이 워낙 크기에 가볼 곳이 지천이다.

한 여름과 겨울은 여행을 쉴 생각이다. 그리고 주말이나 휴가철은 가급적 피할 생각이다. 미세먼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일상생활의 불편은 물론이지만, 우리의 여행 계획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종근 주주통신원  green27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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