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이다. 오후 5시 좀 넘어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금동 4거리 근처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우회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 빨간 벽돌이 반토막나서 뒹굴고 있었다. 슬쩍 피하며 천천히 차를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저거 그냥 두면 다들 불편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자, 순간적으로 차문을 열고 나가 벽돌을 치우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미 차는 4~5미터 앞으로 나가버리고, 뒤에 차들도 따라오고 해서 그냥 어정쩡하게 앞으로 가게 되었다. 

  한 100미터 가다가 생각하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려고 오른쪽 골목으로 차를 꺾어 골목길을 거쳐 유턴하여 아까 지나간 차도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데자뷰하듯이 4거리에서 우회전하다가, 이번엔 깜박이등을 켜고 정차하고 내려서 빨간 벽돌 반토막을 집어들고 인도 안쪽 건물 모퉁이에 던져 놓고 얼른 차에 올라탔다. 다행히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큰 불편 주지 않고도 작업(?)을 수행하게 되니 스스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차를 다시 몰고 집에 오면서 갑자기 어릴 때 읽은 '이솝' 이야기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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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이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이솝의 주인은 훌륭한 학자였다. 어느 날 주인이 말했다.

"얘, 이솝아, 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많은지 보고 오너라."
이솝은 목욕탕으로 갔는데, 목욕탕 문 앞에 끝이 뾰족한 큰 돌이 땅바닥에 박혀 있는 것이었다.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나 목욕하고 나오는 사람 모두가 그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어떤 사람은 발을 다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코가 깨질 뻔했다.
"에잇! 빌어먹을!"
사람들은 돌에게 욕을 퍼부었지만 누구 하나 그 돌을 치우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도 한심하지. 어디, 누가 저 돌을 치우는가 지켜봐야지.'
이솝은 목욕탕에서 그것만 지켜보고 있었다.
"에잇! 빌어먹을 놈의 돌멩이!"
여전히 사람들은 돌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는 욕설을 퍼부으며 지나갔다.
얼마 후에 한 사나이가 목욕을 하러 왔다. 그 사나이도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이솝은 여전히 그 사나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웬 돌이 여기 박혀 있담!"
그 사나이는 단숨에 돌을 뽑아냈다. 그리고 손은 툭툭 털더니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솝은 그제야 일어서더니 목욕탕 안에 들어가 사람 수를 헤아려보지도 않고 그냥 집으로 달려갔다.
이솝은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목욕탕 안에 사람이라곤 한 명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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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솝이 나중에 주인에게 왜 거짓말했느냐고 혼나면서 ‘사람다운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솝의 눈으로 아까 자기합리화 하면서 자리를 모면했던 나를 보았다면 ‘사람’ 취급을 못받았을 것이다.

아, 나는 언제부터 이리 양심이 무디어졌단 말인가? 그러면서 생각하니 어쩌다 가끔 가게에서 받은 영수증과 마시고 남은 빈 드링크 병을 길가에 세워진 트럭 짐칸에 슬쩍 던져놓거나, 콧물을 닦은 휴지를 버스 좌석 아래 후미진 곳에 버리고 내린 기억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다시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무디어진 마음을 벼리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섰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허익배 주주통신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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