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목요일 오후4시 반쯤이었어. 종로2가에서 개인적 일을 끝낸 나는, 집에 가려고 5호선 종로3가 역 승강장 나무의자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계단 출입구 쪽에서 누군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무슨 일인가 살펴보았어. 그러나, 여러 사람들로 인해 시선이 가려지고 큰소리도 뜸해져서 다시 스마트폰 열공에 빠졌지.

  2~3분이나 지났을까? 이번엔 진짜 천둥치는 고함소리와 함께 신사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절모를 쓴 70대 후반쯤 되는 어느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들고 이리 오고있는게 보였어. 마치 자기 앞에 누가 있는것처럼 위협하듯이 큰소리로 고함지르는데, 도대체 왜 저리 화를 내는지 도통 모르겠는거야. 내 옆에 있는 어떤 할머니는 뭐라고 속으로 욕을하는데, 나까지 기분이 나빠지면서 혹시 나한테 시비를 걸면 어떻게 대처하나 하는 걱정아닌 걱정까지 드는거 있지.

  때마침 기다리던 차량이 와서 자리를 모면하고, 막 출발하는 지하철에서 창밖을 내다 보니 아까 그 할아버지는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두분의 어떤 노인들에게 지팡이로 삿대질하며 고함치는데, 두 노인들은 속으로 '웬 미친 영감인가?' 하듯이 서로 눈짓하며 슬그머니 자리를 비키는거 있지.

  지하철 안에서 자리를 잡은 나의 머릿속에는 아까 고함치며 뭐라 소리치던 그 노인의 미친듯이 분노하는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거야. 그러면서 그 노인이 왜 그리 눈을 허옇게 치뜨고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며 분노하는지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과거형으로 '추리'해 봤어.

  "아마도 그 신사처럼 차려입은 노인은 오늘 점심때 인사동 근처 한 음식점에서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어떤 모임의 회원들을 만나기 전부터 매우 기분이 안좋은 상태였을 거야. 최근들어 회장인 자신의 말에 토를 달고 외면하는 회원들이 많아져 심기가 영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지. 오늘 점심 모임 자리에서도 '어흠'하고 헛기침하며 들어서는 자신에게 '회장님 오십니까?'하며 일동 기립하여 맞아주기는 커녕, 엉거주춤하며 웅얼웅얼 인사하는 척 하는게 아닌가 말이다. 그저께는 총무일을 맡던 대학 후배놈이 전화를 걸어와 총무일을 그만두겠다고 하길래, 오늘 만나서 얘기하자고 해놓기까지 한 상태였지. ~~(중략)~~ 내말에 대놓고 반대를 하는 총무놈에게 나는 삿대질하며 '네가 뭔데 감히 회장인 내 말을 거역한단 말이냐!' 하고는 마시던 쐬주잔을 집어던지고 식당을 나와버리고 말았지. 하~ 그런데 이것들이 아무도 따라나와 만류를 하지 않는거야. 이럴수가 있나? 치오르는 배신감에 당장 다시 들어가 이것들을 요절낼까 했으나, 차마 거기까진 못하고 그냥 집에 들어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들어섰지. 그 다음엔 하나도 기억이 안나... 누군가 나를 부르며 내 양쪽 겨드랑이에 팔을 넣고는 '영감님, 약주 많이하셨네요.'라고 하면서 어떤 사무실로 데려가서 집 전화번호를 묻길래 대답해줬지 뭐. 한참후에 얼굴이 벌겋게 된 아들놈이 와서 나를 차에 태워 집으로 데리고 온 거지. 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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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생로병사의 굴레에 갇힌 인간이여!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 고희(古稀)를 훨씬 넘어선 인생의 끝자락에서도 저리 아집과 교만, 독선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추태를 보이니 얼마나 비참한가? 저렇게 대낮 백주대로에 반미치광이로 남들의 손가락질이나 받다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가운데 쓸쓸히 송장 신세가 될테니... 참으로 가련한 인생일지어다, 깨달음이 없는 늘그막의 덧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노예들이여...

~ (2018.5.12일에 기억을 되살려 기록하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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