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가?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가?

 특정한 문화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개인의 의식은 그가 속한 사회의 반영일 뿐인가?

 

한국 수학능력고사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문제다. 나폴레옹시절부터 시작된 이 바칼로레아는 50%이상의 점수를 받은 모든 응시자에게 국공립 대학 입학 자격이 주어지는 절대평가다. 국영수를 비롯한 탐구영역과 제 2외국어 등 5지선다형 시험문제를 60여만명의 응시생을 대상으로 각각 50분씩 단 하루에 치러 쇠고기 등급 매기듯이 한 줄로 서열을 매기는 우리나라 수학능력고사와 비교하면 어떻게 다른가?

▲입시경쟁교육 해소, ▲학교 민주화와 교육자치 활성화, ▲교육복지와 학생 안전 강화, ▲평화교육과 성평등 교육 강화... 지난 6월 13일 치러진 교육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전국 15명의 진보교육감들이 내놓은 4대 공동공약이다. 그밖에도 후보들은 학교 민주화와 교육자치 활성화, 교육복지와 학생 안전 강화, 평화교육과 성평등 교육 강화와 같은 진일보한 공약을 냈고 선거 결과 17개 시·도 중 14개 지역에서 당선되는 개가를 올렸다.

당락이 결정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입시경쟁교육 해소’와 같은 공약은 정부의 입시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사실상 풀기 어려운 과제다. 당선자들이 이런 공약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일류 상급학교가 교육의 목표가 되고 SKY 출신이 출세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중등교육에서 입시경쟁교육을 해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지난 임기 동안 서울시 조희연교육감의 외고와 자사고 폐지가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곤욕을 치렀던 사례로 짐작할 수 있다.

수학능력고사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인생의 황금기인 청소년시절, 새벽같이 등교해 밤 12시가 가까워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악몽 같은 수험생 시절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그런 공부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수학문제까지 암기해 서열을 매기면서 교육목표는 홍익인간이니 전인인간을 양성한다고 한다. 성적으로 서열 매기는 학교에서 이기적인 인간이 아닌 이타적인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길러 낼 수 있을까?

사람들이 한평생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시비를 가리는 지혜교육(철학)과 지식을 암기 하는 교육 중 살아가는데 어떤 교육이 더 중요할까? 지식인가 아니면 판단능력인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는 인간을 길러내겠다던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은 어떤 인간을 길러냈는가?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남편 연봉)이 바뀐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등의 급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시험을 잘 치러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된 교실. 이를 두고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면 너도 나도 혁신학교다. SKY가 교육목표가 된 학교를 두고 혁신학교는 정말 교육할 수 있는 학교일가? ‘서울형 혁신학교’, 경기도의 ‘혁신학교’, 강원도의 ‘행복더하기학교’, 전라남도의 ‘무지개학교’, 광주광역시의 ‘빛고을혁신학교’, 전라북도의 ‘혁신학교’ 충청남도의 ‘행복공감학교’, ‘경남의 행복학교’는 이름만 다른 혁신학교다. 진보교육감들이 전국의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바꾸면 학교가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입시학원이 교육하는 학교로 바뀔까?

▲ 경기도 교육청이 발행한 초중고 철학교과서

공부는 해서 무얼 하지?, 내 몸은 누구인가?, 사람 마음과 세상 이치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한마디 말도 않고 친할 수 있는 정도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사람은 왜 우주까지 통하려 했을까?, 인간의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더 우월한 이유가 있을까?,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누구나 바라는 좋은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름다움은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 주네!...

이런 주제를 인간론, 세계론, 가치론으로 나눠 경기도 교육청이 발행한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 목록이다. 고교를 졸업한 사람 중 이런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런 철학 교과서는 초등학교 3~4학년용에서 고등학교 3학년용까지 만들어져 있다.

교육보다 국·영·수 문제풀이 기술자로 만드는 학교가 프랑스처럼 ‘지식과 이성, 인간과 세계, 인간학·철학·형이상학, 실천과 목적’과 같은 철학을 공부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단 하루 시험으로 인생의 등급이 매겨지는 수능이 아니라 프랑스처럼 이런 철학이 필수과목이 되는 바칼로레아 시험 같은 그런 시험을 치르면 안 될까? 삶에 필요한 윤리 및 철학적 권고로 가득 찬 도덕교과서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우리나라 지식인들, 정치인들 중에는 왜 그렇게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 많을까? 진보교육감들이 진정으로 교육을 살리겠다면 혁신학교보다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더 급하지 않을까?

편집 : 심창식 부에디터

 

김용택 주주통신원  kyongt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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