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이라는 단어는 좋은 의미로 쓰인다. 상대가 누구이든 어떤 처지에 있든 그를 존경하고 예우한다면 가히 그 자체로 존경받을 만하다.

그러나 지나친 존경은 문제를 야기한다. 이를테면 조선시대에 중국을 대하는 사대주의가 그러했고, 현대에 이르러 미국에 대한 자세가 그러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어디 정치에서 뿐이겠는가?

스포츠에 있어서도 그렇다. 월드컵 축구에서도 한국은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을 만나면 주눅부터 든다. 그들의 축구 실력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물론 발재간이나 공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그들 축구에 대한 존경으로 인해 시작하기도 전에 주눅부터 들고 긴장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번 월드컵에 임하는 한국 축구는 과거 월드컵 역사의 축소판이자 전형적인 모습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들었을 때를 제외하곤 그렇다. 스웨덴을 맞이해서 무기력하게 1:0으로 패했고, 멕시코와 거의 혈전을 벌였지만 결국 2:1로 무릎을 꿇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독일과의 한판 승부만이 남았다. 독일에게 지면 16강 탈락이다. 독일을 꺾으면 16강 진출이 가능해진다. 과연 한국 축구가 독일을 꺾을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한국 축구는 독일 축구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을 지니고 있다. 그 경외심으로 인해 독일 축구는 한국 축구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외심을 버린다면? 그 뛰어난 발군의 독일 축구를 한국 축구가 짓밟는 일이 일어난다면, 아니 그렇게 되려면 어찌해야할까?

독일 축구를 무시하면 된다. 아니 정확히는, 독일 축구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버리면 된다. 이미 FIFA 1위의 독일이 FIFA 15위의 멕시코에게 무릎을 꿇은 판이다. 어차피 아판 사판이 아닌가? 독일 축구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먼저 짓밟아버려라. 선수들은 물론이고 팬들도 그렇게 해보자. 중국이 한국 축구에 대한 공한증을 떨쳐버렸듯이 우리도 독일축구에 대한 공유럽증을 떨쳐버리자. 이번 월드컵에서 그것을 보여주자.

독일은 축구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거의 모든 면에서 한국에게는 모델이 되는 국가였다. 통일마저 그러하다. 그러나 스포츠는 그 모든 것에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최첨병이기도 하다. 무리한 기대일지는 모른다. 그래도 한번 억지를 부려보고 싶다. 독일을 무시해보고 독일 축구를 무시해보자. 그리하여 짜릿한 승리를 쟁취해보자.(무승부라도 좋고 심지어 16강에 진출하지 않아도 좋다.) 존경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때로는 과감한 무시전략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외엔 아무 방책도 비책도 없지 않을까?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부에디터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