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양천 어르신복지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강의나 수업이 끝나고 다른 약속이 없는 날엔 으레 북카페(독서실)에 들러 신문을 훑어보는 게 습관처럼 돼 있다. 하루는 너댓 명의 회원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무슨 화두로였던지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때였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더니 독서대를 둘러보면서 한겨레신문을 찾는 것이었다. 거기 와서 <한겨레>를 찾는 사람은 보기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누군가가 “네?” 하고 되물었다. 그 손님은 서슴없이 “한겨레요.” 라고 응대했다. 그때 난 좀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돌아보며 “여기 한겨레는 안 들어오고요, 朝-中-東이 있습니다.” 하고 점잖게 알려줬다. 그러자, 그 분이 대뜸 “아, 조-중-동은 안 봐요!”라고 내뱉는 것이었다. 난 깜짝 놀랐다. 이쯤 되면 보통은 멋적어서 "아, 그래요." 하고 조용히 나가거나, 아무거나 좀 만지작거리다 나가는 게 상식인데~ 생각되는 순간, 난 명색이 한겨레 주주로서 무척 반가운 마음이 솟구치면서도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담?’ 하는 생각이 일었다.

그 때, “한겨레신문이 신문이가?”라는 큰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원래 나서기를 좋아하는 늙은이, 매주 한 번씩 <조갑제닷컴>에 가 조 씨의 연설을 듣고 와서 자랑스러운 듯 그 연설을 옮기는 전형적인 ‘꼰대‘였다. 난 화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이봐요! 한겨레가 신문이냐구요? 무슨 소리! 지금 신뢰도 1위 신문인 걸 모르세요! 아니, 그럼 조중동은 신문이요?” 하고 소릴 꽥 지르고 말았다. 그들은 한겨레 따위는 신문으로 여기지도 않는 무리들이다. 쉽게 말하면, 한겨레에 종북-친북의 붉은 딱지를 주저없이 붙이는 자들이니까.

 

난 한때 '조중동 OUT' 큰 뱃지를 백에 달고 다녔었다. 거기 자리한 이들은 그걸 보지는 못했을 것이고, 또 내가 한겨레 주주라는 사실도 알 리가 없다. <한겨레>를 찾던 손님은 금방 떠났고, 원탁 토론도 끝장을 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중동의 맹신자들은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한겨레신문은 자타가 인정하는 정론지다. 신문의 평가는 그 신문의 사설과 시론 등의 논조가 얼마나 공정한가, 정확한가로 따져야 한다”는 취지의 나름대로의 언론에 대한 견해를 요약, 피력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해 한겨레가 노년층에게는 환영을 못 받고 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노년 세대가 주축이 돼 태동시킨 신문인데도. 내가 느끼기에도 우리 신문을 다른 신문들과 비교하면 아기자기한 맛이 없다고 할까, 감칠맛이 없다고 해야 옳을까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알맞은 비유일진 몰라도, 일반 신문들이 <대 백과사전>의 소항목 사전(서술이 짤막짤막한)이라면 한겨레는 대항목의 사전(브리태니카 백과사전)과 같다고 할까.

그런 데서 나온 생각인지는 몰라도, 주주총회에서 신문의 편집 방향에 대한 의견이 더러 제기되는 것을 보았다. 바로 얼마 전 주주통신원 발대식 때에도 비슷한 제안 발언이 나왔던 것 같다. 한겨레가 여타 신문들과는 좀 다른 스타일임의 반증이다. 나도 요즘 신문의 편집 추세로 보아 섹션 면을 네 개면 정도로 해 요일 별로 현대인의 관심도가 높은 기사를 다뤄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주주들이 신문의 편집 틀에 관해 간섭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월권이라 생각되므로. 한자 숙어에 “百人百出”(백 명이 모이면 백 가지 의견이 나온다는 말)이란 말이 있는데, 주주의 수가 자그마치 7만에 가까운 한겨레의 경우, 그 많은 주주들의 의견을 모두 참작해 신문 제작을 하려들면, 적어도 수만 판의 약간씩 서로 다른 신문을 찍어내야 한다는 결론에 달한다. 적어도 신문의 제작 방향은 전문인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차제에 주주들께 한 가지 더 외람된 부탁을 드리고 싶다. 주총 때 “왜 이윤을 못 내느냐?”고 추궁하는 주주들을 더러 보는데, 신문의 가장 큰 수입은 ‘광고’다. 한겨레의 광고 수주가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한겨레보다 몇 배 많은 부수를 발행하는 메이저 신문들도 신문 판매만으로 이윤을 내지는 못 하는 것으로 안다. 창간 당시 그런 생각으로 참여하셨다면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주주 여러분! <한겨레>가 세계 굴지의 알차고 독특한 신문으로 성장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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