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이부二府' 漢사군에서 韓사군으로

제31화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 관하여 어느 유식한 학자는 중대한 오역이라고 비판한다. '죽은 시인의 모임(내지 클럽)'이라야 맞다고. 그러나 제목이 가리키는 것이 단지 영화에 나오는 몇몇 사람의 클럽이 아니라 '내 안의 시인이 죽어버린 현대사회'라고 본다면, '모임'이야말로 너무나 근시안적인 번역이 아닌가.

1989년 <죽은 시인의 사회>가 '내 안의 죽은 시인을 부활하라'고 촉구한다면, 1993년 <Sister Act>는 죽은 수녀Sister를 부활Act한다. 당신들의 죽은 자매Sister를 부활하기 위해서 말이다.

포스터에 그려진 주인공의 모습은 '수녀'의 복장임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어둠의 이미지를 뿜어내고 있다. 마치 '수녀의 옷을 입은 악마'라는 듯이. 악마는 어떻게 착한 수녀들을 유혹할 것인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수녀들은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우피 골드버그가 열연한 주인공 '들로리스'는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무명의 가수. 안타깝게도 그녀는 마피아 두목이자 유부남인 '빈스(하비 케이틀 분)'를 사랑한다.

장면2. 주인공 들로리스와 내연남 빈스

장면3. 들로리스가 목격한 빈스의 살인장면 

들로리스는 빈스에게 본처와 이혼하라고 요구하고, 그러지 못하는 빈스는 선물(밍크코트?)을 보내어 연인을 달랜다. 잠시 동료들에게 선물을 자랑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들로리스는 곧 그것이 본처의 옷임을 알아내고는 들로리스를 찾아간다. 공교롭게도 문틈으로 엿보이는 광경은 빈스가 권총을 들고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 비밀을 알면 다친다던가. 비스와 마피아 일당은 '목격자'를 제거하고자 추적하고, 가까스로 도망친 들로리스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다. 경찰은 '증거 확보'를 위하여 들로리스를 샌프란시스코의 한 수녀원으로 데려간다. 수녀원의 늙은 원장은 "숨겨줄 만한 여자가 아니"라며 거부하다가 마지 못하여 받아들인다. 이름을 바꾸어 수녀로 변신한 들로리스에게 엄격한 계율이 강요되고, 자유분방한 버릇을 버리지 못한 들로리스는 몇몇 수녀들을 부추겨 술집으로 데려가는 일탈을 감행한다. 원장이 '일탈'을 방지하려고 무례한 침입자에게 '성가대'를 맡기자 지금껏 성가대를 지휘하던 또 다른 늙은 수녀는 "내 자리를 뺏으러 온 여자"라고 타박한다.

사랑이라 여겼던 연인 빈스에게 들로리스는 '목격자'에 불과하고, 경찰에게는 '증거물'이며, 수녀원장에게는 '숨겨줄 가치가 없는 여자'였으니, 성가대를 지휘해온 늙은 수녀는 '남의 자리를 빼앗으려 온 여자'라고 결정타를 날렸다. 이쯤이면 들로리스는 오직 자기만 사랑하는 바꾸어 말하면 사랑할 줄 모르는 타인들과 본처의 자리를 빼앗으려던 자신의 못된 연애행각을 돌아보았으리라. 자유롭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것이 속세의 일그러진 현실이라면 교회(수녀원)는 케케묵은 계율만 지키면서 한없이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들로리스에게 주어진 '성가대'는 죽은 수녀원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요처였으니, 들로리스는 열성을 다하여 수녀들에게 살아있는 세속의 음악을 가르친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수녀들의 열정이 들로리스의 음악과 춤에 반응하며 장엄한 하모니를 토해낸다. 수녀원장은 뒤늦게 '잘못된 일탈방지책'이었음을 깨닫고 '천박한 성가대'를 제지하려 하지만, 이미 새로운 교회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혁신적인 성가대'라는 주교의 찬사를 거스를 수 없게 된 마당이다. '혁신적인 성가대' 이야기가 매스컴에 보도되자 빈스와 마피아가 들로리스를 죽이려 하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는 수녀들과 경찰이 그녀를 지켜주고, '혁신적인 성가대'는 더더욱 큰 파장을 일으키며 마침내 교황 앞에서 공연하는 쾌거를 이루어낸다.

엄숙한 성가(正)에 자유분방한 팝(反)을 끌어들여 탄생한 '신나는 성가(合)'는 교황에 의하여 새로운 성가로 공인되었다. 그렇게 교회(상부구조)가 부활하였다면, 교회 밖의 세계(하부구조)도 변화하리라. 다시 장면2와 장면3을 보라. 빈스가 이끄는 마피아는 당신과 나를 지배하는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구조일 것이니, 빈스를 사랑하는 들로리스는 거대한 부조리와 모순의 구조에 영합하는 당신과 나의 모습이 아닌가. 누군가 들로리스처럼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고 모두가 구조(대전제)에 엽합(편승)하는 '소시민'으로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대한 구조의 노예로 전락하리라.

영화는 주체적 시민을 요구한다. 민중의 소리로 교회(상부구조)를 혁신하라. 그리하여 영혼을 회복한 당신과 나는 거대한 구조(하부구조)를 지배할 것이니.

'교황으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인간으로부터의 혁명'이 21세기 서구인들의 철학이라면, 마한의 백성으로부터의 申, 동학의 '백성이 창조하는 하늘[人乃天]'을 생각하며 고조선 위만조선 마한에 이어지는 삼국유사 네번째 이야기 '이부二府'를 보자.

 

삼국유사 '이부二府'

前漢書              ‘전한前漢’은 이렇게 썼다.
昭帝始元五年己亥     “소제昭帝(무제의 아들, 재위 BC 87~74) 시원始元 5년 己亥년
置二外府            바람난 관청[外府]을 폐[置]하여 남의 관청[外府]과 분리[二]하였다.
謂朝鮮舊地          조선에 ‘친구의 섬김[舊地≒信]’을 교육[謂]하였으나
平那及玄菟郡等      평나平那가 현도玄菟군에 평등[等]을 투사[及]하였으므로
爲平州都督府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로 하여금[爲]
臨屯樂浪等兩郡之地  임둔臨屯과 낙랑樂浪 등 두 군郡을 섬기게[地] 하고
置東部都尉府        동부도위부東部都尉府를 폐지[置]하였다.”
{私曰                       {사견을 말하건대,
朝鮮傳則眞番玄菟臨屯樂浪等四 ‘조선전’에는 진번 현도 임둔 낙랑 등 4군인데
今有平那無眞番              有를 첨단화[今]한 평나平那가 진번을 제거[無]하여
盖一地二名也}               하늘이 하나 되는 마당에 땅이 名을 분리[二]하겠는가.}

 

BC108년 한무제가 조선을 정벌한 이후 조선은 어찌되었을까?

<전한서>는 두 개의 정부가 조선 백성을 다스렸다고 한다.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토벌하자 죽어가던 진번 현도 임둔 낙랑 등은 막강한 힘을 등에 업고 조선백성들에게 義와 禮를 교육하였으리라. 그러한 배경에서 '노자가 죽어버린' 조선은 '동부도위부'라는 중화주의정부를 책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백성들은 진번 현도 임둔 낙랑은 물론 '조선'까지도 신뢰하지 않았으니(제34화 참조), '동부도위부'는 백성을 다스릴 수 있을까? 방법은 한 가지. 백성들이 요구하는 단군조선의 방식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수용할 것이다. 한나라는 이미 漢에 등을 돌린 '동부도위부'를 폐하고 '평주도독부'를 설치하여 임둔 낙랑 두 군을 섬기게 한다. 그렇다면 진번군과 현도군은 어찌 되었을까? 漢의 씨를 뿌리던 진번과 현도는 이제 韓의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일연은 조롱한다. "상부구조(진번 현도 임둔 낙랑)가 韓의 씨를 뿌리기 시작하였는데 하부구조(평주도독부)가漢의 씨를 뿌리겠는가."

'평나平那'를 기억하라. 낙랑군樂浪郡이 풍류[樂]의 물[氵]에서 서방질[良]하는 군자[君]의 마을[阝]이라면, ‘평나平那’는 평등[平]과 자유[冉]의 마을[阝]이다. 이 평나平那'는 가야로 내려가 '임나任那'가 될 것이니, 중화의 낙랑질에 대응하여 자유[冉]를 임신[任]하는 유화문명의 성전[阝]이다.

형식을 주목하라. 다른 곳에서라면 ‘前漢書云’이라 할 것을 여기서는 ‘前漢書’라고만 하였다. 일연은 왜 '운云'이라는 글자를 빼먹었을까? '죽은[前] 한漢은 더 이상 조선백성을 교육[云]하지 못한다는 조롱이다.

이제 제1화의 바보들의 역사논쟁을 환기하시라. 이른 바 강단사학은 낙랑평양설을 주장하며 한사군시대 중국의 영토를 한반도 깊숙히 끌어들인다. 반면 재야사학은 낙랑요동설을 주장하며 광대한 고대사지도를 주장한다. 한사군의 정체를 무시한 채 위치만 논쟁한다는 점은 이미 지적하였다. 한사군은 통치기구가 아니므로 그것이 설치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국경을 좌우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한사군 설치는 중화의 일방적인 행위일 뿐 대다수 고조선 백성들이 그들의 '공자왈맹자왈'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랴.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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