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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이었다. 교육부 한 기획관은 언론사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발언을 해 국민의 분노를 샀다. 같은 자리에 있던 기자가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열아홉살 김 모군의 이야기를 하며 "기획관은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고 말하자 그 기획관은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두 사람의 신분에 대한 인식의 차는 확연하다. 교육부 기획관은 ‘나와 개·돼지 같은 민중은 신분이 다르다’는 것이고, 기자는 ‘신분이 정해진 게 아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획관은 ‘자신의 상류층 신분은 자기 자손에게도 세습될 것이다’는 것이고, 기자는 ‘신분이 꼭 세습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를 보는 시각이 너무 다르다. 누구의 생각이 맞을까? 그 기획관은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라는 말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교육관은 이번에 중앙교육연수원으로 복귀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교육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다루는 보직을 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교과서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지배하는 자들의 방향성을 살필 수 있다.

그 기획관이 교과서를 관리하고 교육정책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더 걱정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부가 검정제도를 통해 교과서를 검열하고, 학생들은 그 교과서를 읽고 수용하고 암기만 해야지 그 교과서 내용을 비판하거나 재창조하면 여러 가지로 점수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역사도 도덕도 그냥 암기과목이다. 그런 교과서를 관리하는 사람의 가치관이 신분제 사회를 좋아하고, 그들이 가진 기득권의 질서가 그대로 정착되기를 바란다면, 한국의 교육은 어디로 굴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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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전후,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던 시기에는 많은 신분 이동이 있었다. 그리고 교육은 신분 이동에 결정적인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신분이 어느 정도 정착되면서 신분이동은 어려워졌다. 교육은 이제 신분상승의 도구라기보다는 계급재생산에 이바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니 상류층들이 교육제도를 자신의 신분 유지수단으로 적당히 바꿔가며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특목고를 거쳐 일류대를 간다. 초등학교때부터 매년 수백, 수천만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그렇게 계급은 재생산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쟁취한 권력을 능력주의로 미화한다. 그들은 최순실의 딸이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라고 한 말에도 내심 공감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갑은 갑이니까 갑질하고, 을은 을이니까 을질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한다. 교육은 줄세우기를 통해 그런 능력주의를 세뇌시키는 결정적인 도구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다.

퇴직 후에 다시 특혜 채용되는 고위층 공무원들,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들, 죄를 지어도 자기들끼리는 대충 넘기는 검사 판사들, 편법으로 부를 상속시키는 재벌들, 돈 많이 들어 의사되었으니 고액 수입이 당연하다는 의사들, 마지못해 특수활동비를 받지 않겠다고 하며 억울해하는 국회의원들, 자기보다 계급이 낮으면 종처럼 여기는 장군들 등등, 이게 우리나라 엘리트들이다. 이게 다 줄세우기로 만들어놓은 능력주의가 내면화된 결과이다.

소득 상위 10%의 비중이 전국민의 소득 50%를 차지한다. 자산의 차이는 더 심하다. 2013년 기준 상위 10%는 전체 자산의 66.4%인 반면 하위 50%는 1.9%인데 그 차이는 더욱 커지고 있다. 상류층이 부를 독차지하니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권력이 세습되니 젊은이들은 비참한 비정규직의 신분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어서 결혼을 하지 않고 애를 낳지 않는다. 제도를 혁명의 수준으로 바꾸지 않고는 서민의 삶이 나아질 수가 없으며,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경제 부총리는 여러 가지 정책에서 구태의연하게 구시대 경제정책을 따라가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회의장은 적폐청산에 피로감을 얘기한다. 국회의원들은 김영란법을 어기며 외국여행을 다녀왔으면서도 이름을 숨긴다. 어떤 교회는 목사직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세습 아니라 우긴다. 대통령은 규제개혁의 속도를 높이겠다고 하지만 하필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4%에서 50%까지 높이겠다는 개혁안을 내세워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계속 관념철학이나 종교철학을 주입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난해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복하다.”, “1등이 나머지 99명을 먹여살린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순종하고 살면 천국에 가서 보상받을 수 있단다.”라고 말이다.

이제 그런 말장난하는 교육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 “정의로운 분배가 되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단다.”, “한 명의 부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다른 99명이 희생당해야 한다.”, “차별의 요소를 없애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단다.”라고 말이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는 약속은 얼마쯤 추진되고 있는 것일까?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이현종 주주통신원  hhjj55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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