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평화 모험, 평화이야기 356~358일째

한참을 걷고 있는데 길옆에 종잇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눈의 동공이 더 크게 열리며 그것이 돈이라는 것을 알았다. 5위안짜리 지폐이다. 그것을 집어 드는 손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5위안이면 시원한 콜라 한 병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마오쩌둥의 초상이 새겨진 작은 돈이지만 그것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았다. 

▲ 8월 13일 달리면서 만난 중국 지폐

중국의 돈은 1위안, 5위안, 10, 20, 50, 100위안 모든 지폐에 마우쩌둥 초상이 새겨졌다. 우리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신사임당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다 골고루 들어간 것과는 다르다.

▲ 2018년 8월 22일 중국 Pengyan(碰墕) 인근에서 선무현(神木县) 지나 Wanjiadun(万家墩) 인근까지 달이면서 만난 문

옌안이라는 도시는 지나지 않지만 이곳 산시 성(陕西省) 옌안(延安)은 마오쩌둥 홍군이 길고 고통스러운 대장정(이라 쓰고 삼십육계줄행랑이라 생각하면서 통일마라톤이라 의미를 부여한다)을 마치고 자리 잡은 곳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춘추전국시대 이래 다시 여러 군벌세력으로 갈라졌던 중국통일의 기틀을 잡은 곳이다. 이곳은 중국공산당 혁명사령부와 인민정부를 두고 중일 전쟁을 지휘하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산실이자 혁명의 성지이다. 그리고 초창기 김일성과 함께 권력지형의 한축을 이루었던 ‘화북조선 독립동맹의 옌안파와 연관이 있기도 하다.

마오쩌둥은 미약한 세력으로 시작하여 12,500km에 달하는 대장정을 통해, 미국 및 유럽 열강들이 지원한 국민당 정부를 타이완으로 밀어내고 베이징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위대한 혁명가, 사상가, 전략가이자 중국 건국의 아버지다. 대장정을 출발하는 마오쩌둥은 정치적으로 별 볼일 없었다. 심지어 그날에는 들것에 실려 가는 환자였다. 하지만, 이를 통해 중국인민들 마음을 얻고 강해지면서 마침내 중국인민들의 우상으로 숭배자로 치닫게 된다.

마침 내가 지금 368일에서 열흘 빠지는 358일째 달리고 있고 거리도 12,500km쯤 달리고 있을 때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 지금 지나고 있는 션무시 근교에는 석탄광산이 산재해있다. 중국에서 석탄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 션무지역이다. 지금까지는 바퀴 22개 달린 트럭이 지나갈 때 일으키는 황사 먼지구름 때문에 고생했다면 이곳에는 검정 연탄 먼지구름이 달리는 나를 고문한다. 아마 마오쩌둥의 홍군이 이곳을 지날 때는 저 바퀴 22개 달린 괴물들은 없었으리라! 14억 중국인민들이 다가오는 겨울을 따뜻하게 나려면 저 괴물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928년 말까지 북벌을 완료하고 이제 공산당만 제거하면 중국 통일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국민당의 장제스는 1930년에서 1933년 3월까지 4차례 장시 성 루이진에 있던 공산당 토벌작전에 나서지만 모두 실패하자, 1933년 10월부터 50만 대군과 구미열강의 원조로 들여온 항공기와 최신무기를 앞세워 제 5차 토벌작전을 개시했다. 공산당 10만여 명은 포위망을 뚫고 대장정이라고 불리는 역사상 유일무이한 고난의 행군을 강행했다.

마오쩌둥이 대장정을 하면서 국민당의 장제스와 대결 장면은 항우와 유방의 대결보다 더 극적이다. 모두 11개의 성과 24개의 강, 천여 개의 산을 넘으며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이어지던 대장정은 1935년 10월 20일 산시 성 옌안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다. 이때 10만여 명 중에 7천여 명만이 살아남았다. 나중에 제 2방면군과 제 4방면군이 합류하여 모두 3만여 명의 홍군이 살아남았는데 이들은 중국공산당의 최정예군으로 그 후 항일전쟁 승리와 중국 공산화 통일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

스펜스가 쓴 마오쩌둥 평전,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에는 “그들이 돌파할 수 있었던 힘은‘모든 고난을 함께, 평등하게 짊어진다’는 원칙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난을 인민들과 병사들과 나누어 짊어지고 인민들 민심을 얻었다. 그 힘으로 중국의 독립과 주권을 회복하였다. 중국을 통일하여 외세에 의해 국토를 유린당한 중국인민들의 굴욕감을 씻어주었다. 관료들을 견제하고 인민들의 정치참여를 유도하여 중국의 자립의 기초를 세웠다.

마오쩌둥은 두 가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나는 외세 침략에서 나라를 해방시키고 중국을 재통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이가 평등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첫 번째 임무를 성공했으나 두 번째 임무는 실패했다. 그래서 그는 공도 크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크나큰 과오도 남겼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무려 4천만 명 이상 중국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역대 중국의 그 어떤 포악한 군주도 그렇게까지 자기 백성을 죽인 일은 없었다. 천윈(陳雲)은 이렇게 마오에 대하여 말했다. "마오 주석이 1956년에 죽었더라면 그의 업적은 불멸로 남았을 것이다. 만약 1966년에 죽었더라면 과오는 있지만 여전히 위대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1976년에 죽었다.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중국인민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 2018년 8월 23일 달리면서 만난 중국 모습

현대중국의 시원은 바로 368일간 12,500km를 돌파했던 대장정에서 찾을 수 있다. 368일간 대장정을 통해 단련되고 거듭난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 등 인재들은 그 이후 마오쩌둥의 뒤를 이었고 그들은 중국을 결국 21세기에 G2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지금 중국의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도 이때 동지다. 현대중국은 끝없이 달리면서 잉태됐고 달리면서 생존본능을 키웠고, 죽음의 행군 속에서 인재가 키워졌다.

유엔군의 북상으로 심장부인 평양을 버리고 강계의 두메산골로 밀려난 패망 직전 위기에 내몰렸던 김일성을 구원한 것은 마오쩌둥의 중국이었다.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은 이후 한국전쟁의 당사자는 미국과 중국이었고 남북한은 주변 세력으로 밀려났다. 이승만이 작전권을 미국에게 넘겼듯 김일성도 그러했다. 지금 중국이 종전협상의 당사자로 나서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동아시아 현대사이다. 장강의 물결처럼 장대한 행군의 마오쩌둥 대장정은, 불굴의 의지와 정신 그리고 혁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물리적 어려움도 이겨 내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마오쩌둥의 신념과 연결되어 있다. 80년 전의 일이지만 오늘날에는 시진핑의 담대한 도전인 일대일로(一带一路)가 유라시아의 평화시대를 막는 만리장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여는 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2018년 8월 22일 Pengyan(碰墕) 인근에서 선무현(神木县) 지나 Wanjiadun(万家墩) 인근까지 달리면서 만난 중국

 

▲ 2018년 8월 23일 중국 Wanjiadun(万家墩) 인근에서 푸구현(府谷县)까지 달리면서 만난 중국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8월 23일 중국 푸구현(府谷县)까지(최소 누적 거리 12,277km, 중국 누적거리 3,339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4,5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 강명구, 현지 동반자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주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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