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서 만난 심수관 도자기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8.09.27l수정2018.09.2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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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1598년, 남원 도공 심당길과 박평의 등 80여명은 사쓰마번주 시마즈쇼시히로에게 납치되어 가고시마로 끌려간다. 이 중 심당길 일족은 1603년 나에시로가와(苗代川)에 이주하여 나에시로가와야키(苗代川燒)를 연다. 1614년 심당길은 박평의와 함께 도자기 원료인 백토(白土)를 발굴한다. 사쓰마번주는 이들이 구워낸 도자기를 사쓰마도기라 부르며 지원한다. 메이지유신 후 12대 심수관(주)은 미야마에 사재를 들여 개인가마(심수관요/沈壽官窯)를 짓고 심수관도자기를 발전·계승시킨다,

▲ '오스트리아만국박람회' 출품작 '대화병'(12대 심수관)

1873년 12대 심수관은 ‘오스트리아만국박람회’에 대화병 한 쌍을 출품하여 서구세계에 사쓰마도기를 알리게 된다. 1893년 ‘시카고콜럼버스만국박람회’에서 동상, 1903년 ‘1900년 만국박람회’에서 동상, 1904년 ‘세인트루이스만국박람회’에서 은상을 받는다. 이후 ‘사쓰마도기’는 일본도자기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다. 현재 15대 심수관이 조선도자기의 기술과 아름다움을 대를 이어 전하고 있다.

▲ 금수동방삭입상(12대 심수관)
▲ 사쓰마 복향로(13대 심수관)
▲ 시로싸스마 용문 물통(14대 김수관)

심수관 도자기는 4가지 특징을 지닌다 한다.

1. 25명을 넘지 않는 전통적 분업체계 : 분업의 최적정선을 25명이라 생각하고 그림, 조각, 원료, 배합, 가마소성 등을 철저히 분업하여 제작하고 있다.

2. 성형, 조각, 문양 등 세분업 : 각 부문별, 작품별, 문양별로 5~6인이 장인들이 나누어 분업한다.

3. 투각 및 금채기법 : 도자기에 문양을 넣는 정교한 조각법으로 심수관요의 전형적 기술 중 하나다. 세계에 작품을 알리게 된 것도 이 화려한 금채기법이 적용된 도자기 덕분이다.

4.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마 형태 : ‘연방등요식’ 가마로 불꽃이 천장을 타고 올라간 후 다시 아래로 내려와 순환하고 다음 칸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 사군자 화병과 쌍학도(15대 심수관)

남원시는 역대 심수관 작품 13점을 ‘심수관도예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이들 작품 중 일부는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기획한 <심수관과 남현도>전시회에서 9월 30일까지 만날 수 있다.

‘남현도’는 남원현대도예의 약칭이다. 남원은 고대부터 조선까지 수많은 가마터가 있을 정도로 전통 깊은 도예지이며, 고유 도자기 문화가 발달하고 있는 곳이다.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수준 높은 도예가들도 많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제2의 심수관을 꿈꾸는 남원 도예가 12명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그 중 몇 점을 소개한다.

▲ 김광길의 연잎이야기
▲ 김영희의 '인생'
▲ 왼쪽 이학구의 '달항아리', 이병구의 '화니토니'
▲ 박송미의 '숲의 사랑여행'
▲ 이미순의 '소꿉동무들'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은 도공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갖은 노력 끝에 백토를 발굴하여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구워 사쓰마번주를 감동시킨다. 사쓰마번주는 이들을 무사계급으로 예우한다. 이후 약 270년간 사쓰마번주의 도움으로 도자기를 제작한다.

1875년 메이지유신으로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번주가 힘을 잃게 되자 번요도 폐지된다. 12대 심수관은 사재를 털어 ‘심수관요’를 설치하고 일본에서 조선도자기의 맥을 이어나간다. 13대 심수관 시절 태평양전쟁으로 가세가 기울자 부친인 12대 심수관에게 도자기를 팔자고 제의하지만 부친은 크게 나무라며 “산과 전답은 돈만 있으면 나중에 얼마든지 사지만 도자기는 초대 이래 조선도공의 혼이 깃든 것이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했을 정도로 대대로 조선도공의 자부심으로 살았다. 

14대 심수관은 1989년 일본 최초로 대한민국명예총영사로 취임하였고 1998년에는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4년 노무현대통령은 심수관요를 방문하였다. 2008년 남원시는 14대 심수관을 명예시민으로 추대하였다. 15대 심수관은 2011년 남원시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으며, 남원시에 역대 심수관 작품 13점을 기증하였다.

▲ 부부사슴 조각상(15대 심수관)
▲ 시로사쓰마 6면 투각향로(15대 심수관)

조선은 일본으로 잡혀간 도공들을 찾지 않았다. 그래도 이들은 끈질긴 장인정신으로 일본에서 살아남아 15대째 조선도공의 길을 걷고 있다. 조선도자기를 발전시켜 일본 대표 도자기로 만들고, 고국에 작품까지 기증한 심수관 가문에 감사드린다.

▲ 사쓰마 한인좌성(15대 심수관)

(주) ‘심수관’이란 말은 일본 사쓰마도기(薩摩燒)를 연 도공 심당길과 15대까지 이어진 후손 모두를 총칭하는 말이다.

* 참고자료 : 남원심수관도예전시관 자료집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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