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우스 박사와 철학하기』 감상평

미드(미국 드라마)를 통 보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다 읽은 한 권의 책, 『하우스 박사와 철학하기』가 호기심을 부추겼다. 2004년 가을에 시작했다는 폭스 TV시리즈 ‘하우스’를 심층 분석한 책이다. 높은 시청률이 장기간 지속되니 일어난 일이다. 철학과 의학, 그리고 윤리학 분야의 전문가 20명이 집필진이다. 대부분이 버젓한 철학과 교수나 병원의 외래교수다. 일개 TV 프로그램을 학술 논문처럼 진지하되 상식적 눈높이를 고려한 온화한 어조로 다루고 있다.


‘하우스’의 주인공은 자타가 인정하는 숙련 진단전문의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다. 특정 의사 캐릭터를 조명해 의료진 안팎의 뜨거운 감자들을 건드린다. 하우스는 남성이며, 후천적 절름발이다. 진통제를 상습 복용하는 약물중독자며, ‘타인에 대한 무신경함에 대해 일절 책임지지 않는’ 언행을 제멋대로 한다. 확진을 위해서라면 비윤리적이며 의료사고의 경계를 넘나드는 범죄를 공공연히 저지른다. 거짓말, 불법 투약, 주택 침범, 환자 의견 무시, 협박 등. 그러니까 매회의 에피소드가 논쟁거리를 낳는다. 허구 인물 하우스가 유발한 논쟁이 현실 세계에서 불붙는다. 『하우스 박사와 철학하기』도 그 불놀이 중 하나다.


집필진은 하우스의 특성을 사회관계망을 통해 응시한다. 하우스의 언행을 삶의 의미, 논리와 방법론, 윤리원칙, 덕과 인격 등의 범주로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래서 높은 시청률이 대변하는 사회적 관심에 깊이와 폭을 보탠다. 하우스에 깃든 다름(차이)의 미학을 길어 올려 여론에 신선한 물기를 흩뿌리는 것이다. 그로써 하우스라는 타자로부터 ‘타자 속의 나’를 보게 해 시청자가 마주했던 타자성을 약화시킨다. 나가 하우스일 수 있다는 역지사지는 평등의식과 생명의식의 밑거름이다. 승자독식의 사회 분위기에 숨구멍을 트는 인식이다.


우리는 『하우스 박사와 철학하기』 같은 독후를 생산하지 않는다. 그저 막장드라마를 욕하면서 본다. 그래서 종방 후 막장 캐릭터로 분한 연기자는 떠서 몸값이 오르지만, 시청자의 욕설 이후는 없다. 아니, 덧난 내상이 있지만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당장은 욕하는 대상을 통해 나를 일깨울 여유가 없다. 도리어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식의 체념으로 동류항이 된다. 체념은 미래를 외면하는 절망과 닮았다. 절망을 밥 먹듯 하면 패배의식에 절어져 분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사람 사는 사회에 드러남직한 부정부패 양상은 비슷하지만, 미국 청문회에는 얼씬없는 비리나 추문이 이 땅에서는 검토 안건으로 상정돼 어쨌거나 통과되는 일이 많다. 그것은 못난 사람도 보듬어 품는 상생 정신이 아니다. 난개발처럼 미래를 거덜 내는 막가파식 폭력이다. 분노조절을 못해 저지른 범죄가 부쩍 증가하는 현상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참 부럽다. 단죄에 성급한 우리의 여론몰이와 다른, 미국의 공들인 드라마 읽기가.

김유경 주주통신원  newcritic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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