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혁명) 100년의 기도

1. 1919년 3·1혁명이 일어나기 한 갑자(甲子) 전, 수운 최제우 선생은 하늘과 통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1861년 남원 교룡산성 은적암에서 검결(劍訣)을 부르며 칼춤을 추었습니다.  

시호시호(時乎 時乎) 이내 시호(時乎) 부재래지(不再來之) 시호(時乎)로다.
만세일지(萬世一之) 장부(丈夫)로서 오만년지(五萬年之) 시호(時乎)로다.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舞袖長衫) 떨쳐 입고 이 칼 저 칼 넌즛 들어
호호망망(浩浩茫茫) 넓은 천지(天地) 일신(一身)으로 비껴서서
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時乎時乎)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 칼은 일월(日月)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여있네.
만고명장(萬古名將) 어디 있나 장부당전(丈夫當前) 무장사(無壯士)라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 신명(身命) 좋을시고.

지금부터 4개월 남짓 후인 2019년 3월 1일, 3·1혁명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 민족은 1919년 이래 갖은 고통과 가시덤불을 헤쳐 왔습니다. 민족 구성원의 대부분이 사람으로서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참상을 감내하였습니다. 전 세계의 온갖 문물들이 이 땅에 들어와 활개를 쳤습니다. 기독교, 마르크스 레닌주의 등을 비롯하여 양자물리학 등의 사양 사조들이 이 땅 지식인들의 정신을 빼앗았습니다.

한민족 100년의 수난은 외적인 요소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쓰임을 하기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었습니다. 가시밭길을 이겨내면서 에너지를 충전했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기 위하여 다양한 사조를 융합하려는 용광로였습니다. 드디어 동서양의 모든 사상을 회통(回通)하는 사상이 세상에 나오려 하고 있습니다.

2.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구속되었습니다. 이명박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문재인 정권 탄생했고,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렸습니다. 이제 종전(終戰)선언이 있을 터이고, 전시(戰時)작전권이 환수될 것입니다. 주한미군 철수도 시간문제이고요.

세월호가 바로 선 것은 이 땅의 정의와 양심이 바로 선 것을 상징합니다. 어떤 것이 퇴조하고, 어떤 것이 들어오고 있는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밀물은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썰물도 한꺼번에 나가지 않습니다. 들어오고 나감을 반복하면서 모르는 사이에 큰 흐름이 바뀝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새것과 낡은 것의 갈아듦도 마찬가지입니다.

天地日月古今不變 運數大變 新舊不同 新舊相替之時 舊政旣退 新政未佈 理氣不和之際 天下混亂矣 當此時倫理道德自壞 人皆至於禽獸之群 豈非亂乎

천지일월은 예와 이제의 변함이 없으나 운수는 크게 변하나니, 새것과 낡은 것이 같지 아니한지라 새것과 낡은 것이 서로 갈아드는 때에, 낡은 정치는 이미 물러가고 새 정치는 아직 펴지 못하여 이치와 기운이 고르지 못할 즈음에 천하가 혼란하리라. 이때를 당하여 윤리 · 도덕이 자연히 무너지고 사람은 다 금수(禽獸)의 무리에 가까우리니, 어찌 난리가 아니겠는가.---해월신사법설, <개벽운수>에서

3.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작은 변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민족의 운명을 바꿀 것이고, 지구 문명사에 큰 획을 그을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큰 일이 일어날 때, 보통 천시(天時)-지리(地利)-인화(人和)의 3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선 천시입니다. 하늘이 열어준 때가 당도했습니다. 모든 것이 무르익었을 때, 하늘은 문을 엽니다. 과일과 곡식이 익어 수확할 때는 그 과정을 치밀하고 성실하게 겪었을 때입니다. 말 없는 하늘의 때는 결국 우리 민족 스스로가 고난을 통해서 가져온 때입니다. 그 지난한 과정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는 열매를 수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새 세상의 문을 열 수 있는 힘이 없었을 것입니다.

천시(天時)는 곧 민시(民時)입니다. 민이 오랜 세월 신산고초(辛酸苦楚)를 통해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할 때, 그때가 바로 민시(民時)입니다.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이 선택한 길입니다. 천손(天孫) 민족으로서, 하늘을 뫼시고 있는 사람들로서, 어찌 앞길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하늘의 선택이 지난 100년이었습니다. 선순환으로 고난을 선택하고, 그 길을 성실히 겪어, 새 세상의 창조의 열쇠를 쥐게 된 것입니다.

다음 지리(地利)입니다. 땅이 주는 이로움입니다. 북한이 열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하여 부산에서부터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기찻길과 자동차길이 열리게 됩니다. 한반도는 더 이상 외진 곳이 아닙니다. 동서양을 잇는 시발점(始發点)이자 종착점이 되고 있습니다. 이 길을 통해 지구의 바른 뜻과 밝은 문화, 세상에 큰 도움을 주는 물자가 오고 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인화(人和)입니다. 지난 100년, 우리 민족의 개개 구성원들이 이러저러한 인생의 길을 선택했고, 이러저러한 갈등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지난날의 모든 차이와 그에 따른 대립의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차이를 넘어 공존이 필요합니다.위대한 공존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1919년 3․1의 기미독립선언에서 우리는 어둠의 세력에 대한 위대한 포용을 발견합니다.

서로 이해가 다른 세력들 사이에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지금까지의 지난 몇 십 년의 과정을 보라! 용감하고 밝고 과감한 결단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한 뜻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 판국을 열어나가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한때의 감정으로써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로다. 그 어리석은 일 대신 우리의 삶을 살려 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수구 세력과 외세 의존 실력자들의 사익 추구와 공명심에 희생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그릇된 상태를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 길, 큰 으뜸으로 돌아오게 함이로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나뿐’의 이익을 취해 민족과 대중에게 큰 피해를 입힌 세력이 새 세상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위대한 포용에 상응하는 뉘우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적폐세력은 새 세상에 동화(同化)하기 위해 스스로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동화의 기회도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동화되지 못하면, 퇴출되거나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4. 해월 최시형 선생님께 제자들이 묻고 대답하십니다.

問曰 「何是顯道乎」 神師曰 「山皆變黑 路皆布錦之時也 萬國交易之時也」
묻기를 「어느 때에 현도가 되겠습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산이 다 검게 변하고 길에 다 비단을 펼 때요, 만국과 교역할 때이니라.」

問曰 「何時如斯乎」神師曰 「時有其時 勿爲心急 不待自然來矣 萬國兵馬 我國疆土內 到來而後退之時也」

묻기를 「어느 때에 이같이 되겠습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때는 그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히 하지 말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오리니,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는 때이니라.」---해월신사법설, <개벽운수>에서

이미 산에 숲이 우거져 검게 변했고, 길에 아스팔트가 비단처럼 펼쳐졌고, 60년대 이래 만국과 교역을 하고 있어 전 세계 10위권의 통상국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1950년에 UN군이 들어왔다가 대부분이 물러가고 이제 단 한 국가의 병마(兵馬)만 남았습니다. 미군이 얼마나 더 오래 남아 있을까요? 한 5년이면 너무 길게 잡는 것일까요?

5. 동학이 현도(顯道)가 된다는 것은 곧 한민족 르네상스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민족이 그 오랜 세월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 접화군생(接化群生) 등의 가르침을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가르침에 따라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새로운 문명을 이 땅에 꽃피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천품(天稟)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경제시스템을 구축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생명-평화-홍익-밝음의 철학이 있고, 그것을 120여년 전에 꽃 피운 동학(東學)이 있습니다. 우리는 동학을 법고창신(法古創新)하여 <지금, 이곳>에 하늘 고유의 밝은 문명을 숨 쉬게 할 것입니다. 그 문명은 <오래된 미래>로서의 새로운 문명입니다.

하늘의 이치가 땅에서 실현되도록 하며, 근본적으로 인간을 돕는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길이며, 내가 바로 너인 접화군생(接化群生)의 길입니다.

그 길은 탈산업적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이며, 근대국가를 넘어 범 지구를 아우르는 문명이며, 물질을 포괄하는 정신문명으로 나 있는 길입니다.

6. 기미(1919)년 3월1일 민족의 영혼을 일깨우고, 세계적으로 피압박 민중의 함성이 이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온 민족의 마음과 행동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의는 높고 뜻은 숭고했습니다. 동학을 이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온 겨레의 양심이 서로를 공경하고 경청하고 배려하여 새 문명을 천명했습니다.

"아아! 새 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도다. 힘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 지난 온 세기에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의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도다. 새 봄이 온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도다. 얼어붙은 얼음과 찬 눈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저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때를 맞고, 세계 변화의 물결을 탄 우리는 아무 머뭇거릴 것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온 누리에 민족의 정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가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 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은밀히 우리를 지키며,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나니, 시작이 곧 성공이라, 다만 저 앞의 빛으로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로다.“

또 하나의 3․1혁명과 동학을 <지금,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출구가 막힌 복합 위기의 구 문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이 우리 사회의 각 곳 현장에서 시도되어왔으며, 이제 서서히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모든 움직임을 이제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3․1혁명의 정신을 본받아 종파(宗派)와 정파(政派)를 넘어, 계층을 아우르며 우리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나라, 새로운 문명의 길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7. 저항과 투쟁의 상징인 촛불이 아직 필요할 때도 남아 있기는 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저항의 주체가 아닙니다. 창조의 주체입니다. 이제 새 문명을 창조하기 위하여 북을 울릴 때입니다. 저기서 새 시대를 부르는 북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모든 이의 심장을 울리는 북 소리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나도 칸!

너도 칸!

우리 모두 칸! 칸! 칸!

 

스스로 살리고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세!

 

편집 : 김혜성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황선진 주주통신원  maga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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