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글작가대회(2018년 11월6일-9일)경주화백컨벤션(HICO)

(아주 진지하게 문학 강의에 임한 경주고등학교 학생들과 발제 교수님들)

◆왜 경주인가? 왜 신라인가?

2018년 11월 6일부터 9일까지 열린 세계한글작가대회는 국비와 도비, 경주시비를 합쳐 무려 9억여 원에 이르는 경비로 치르는 국내 최대 문학행사다. 올해로 4회 째 이 행사가 왜 변방의 지방도시 인구 30만에도 못 미치는 경주에서 열리는가에 대해선 깊은 까닭이 있다. 경주는 단연코 한국문학의 본향(本鄕)이기 때문이다.

8일 경주화백컨벤션(HICO)에서 열린 “한민족 문학의 근원과 그 확산”(좌장: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에 관한 이상규(경북대 교수, 전 국립국어연구원장)의 논문 중 일부를 싣는다.

1> 신라의 언어와 한자 수용의 시기 구분

(중략)신라의 경우 3세기 이전의 언어를 후대 한자 차자표기로 기록한 삼한언어 자료와 함께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지방 문자로서의 한자를 활용한 이두 표기가 발전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마치 고구려를 경유한 한자 유입의 영향으로 뒤늦게 발전되었으리라는 논리의 전개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신라에서는 지금 거의 해독이 어려운 인명, 지명, 관명의 표기법이 나타나다가 3세기 이후 특히 6세기에 이르러서는 한문의 흐름과 전혀 다른 신라식 이두가 발달되었으며 역시 구어에 대응되는 서사 방식으로 향찰이라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서사어체계가 완비된 것이다. 8세기 이후에는 서사를 위한 이두가 아닌 구송을 위한 이두의 일종인 석독구결이 나타나 14세기로 이어지다가 13세기 이후 음독구결이 함께 나타남으로써 훈민정음 창제의 주요한 이유로 이두의 불완전성을 제시한 것이다. (중략)

[신라 금석자료]

1.포항중성리신라비(501년)

2.영일냉수리비명(503년 추정)

3.울진봉평신라비명(524년 추정)

4.울주천전리서석원명(525년 추정)

5.울주천전리서석추명(539년 추정)

6.단양신라적석비명(540년 추정)

7.임신서기석명(552년 추정)

8.무술오작비명(578년 추정)

9.남산신성비명(591년)

[통일신라시대 금석자료]

1.감산사미륵보살상조성명(719년)

2.감산사아미타불상조성명(719년)

3.관문성석각(722년?)

4.상원사종명(725년)

5.무진사종명(745년)

6.화엄경사경조성기(755년)

7.정창원소장 신라장적(758년?)

8.정창원소장 신라출납대장(758년?)

9.정창원소장 전의 첩보명(8세기 중엽)

10.영태2년명 석조비로차나불조성명(766년)

11.창령관용사석불대좌명(772년)

12.길항사석탑명(785∼798년)

13.영암 서구림리 매향비명(786년)

14.영천청제비정원명(789년)

15.선림원종명(804년)

16.창령인양사비명(810년)

17.중초사당간석주명(827년)

18.청주연지사종명(833년)

19.규홍사종명(856년)

20.홤동명금□명(865년)

21.삼화사철불조상명(860년대)

22.선방사탑지석명(879년)

23영양석불좌상광배명(889년)

24.송산촌대사종명(904년)

[신라 목간자료]

1.월성해자 죽간(6∼7시기)

2.하남 이성산성 죽간(608년)

3.함안 성산산성 죽간(540년 경)

4.인천 계양산성 죽간(고신라)

5.창령 화왕산성 목간

위에 열거한 기록 증빙과 상고한국어의 자료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거론한 이상규는 교수는 말미에 “다시 한 번 한국어의 뿌리이자 삼한어의 기반이 된 신라어에 대한 연구를 가일층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2> 신라노래와 한국시가의 흐름

한국문학언어학회장이며 성결대 류해춘 교수의 발제에서는 향가(鄕歌)의 가진 문학과 음악으로서의 형식을 말했다.

(중략)짧은 노래로 정형성을 지닌 신라노래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향가라 할 수 있다. 다름으로 연(聯)으로 이오진 연장체 형식의 신라노래의 흔적이 문헌에 나타나는 자료로는 『균여전』에 있는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라시대의 연이 나누어지지 않으면서 긴 노래인 장시에 대한 기록은 ‘글자가 많아서 게재하지 못해였다’라고 설명해놓은 월명사의 「도솔가」조에 나오는 「산화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신라노래의 기본형식이 되는 이 3가지 방식이 고려시대의 노래와 조선시대의 노래를 관통하여 한국시가의 흐름에 주된 맥이 되는 현상을 살펴보고자 한다.(중략)

(중략)신라의 짧은 노래인 향가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서 창작한 우리나라 고유의 시가이다. 향가를 논의하고 살펴보면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가장 큰 문제는 향찰(鄕札)로 표기된 작품의 해석이다. 작품의 해석에 관한 논의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며, 원문의 90%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다음의 문제로는 신라 노래인 향가의 명칭과 관련된 갈래와 장르의 문제이다. 일상적인 개념의 향가는 신라 사람들이 즐겨 창작하고 불렀던 우리나라의 노래라는 명칭이다. 신라 사람들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지은 한시(漢詩)나 외국에서 들어온 노래와 구별하기 위해서 순수한 우리말의 노래라는 의미로 향가를 사용했다. 이처럼 신라시대에는 보통명사인 신라노래로 사용했던 향가의 명칭은 19세기 말부터 그 의미가 한정되었다. 이후에 향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삼국유사」에 실린 향찰문자로 표기된 일련의 신라노래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향가를 사용하고 있다.

(중략) 향가의 형식을 다루면서 신라노래의 근본적인 형식을 문헌에서 찾아 형식의 기준을 한국시가에서 보편성을 가지고 추론하여 세 가지의 형식으로 정의하였다. 그 세 가지는 1)연 구분 없이 짧은 노래 2)연을 구분한 노래 3)연을 나누지 않은 긴 노래 등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구조와 형식의 연구는 한국시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의미한 시각과 함께 신라노래의 뚜렷한 증거가 되고, 한국시가의 역사적 흐름과 변화를 살펴보는데 중요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중략) 결국 이 글은 신라노래가 가지고 있는 형식의 특수성을 검토하여 신라노래와 한국문학의 흐름을 새롭게 살펴보고자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3> 경주 어(語)의 전승 가치와 상용 방안

마지막 발제자는 유일한 경주사람으로 동리목월기념사업회 최병섭(수필가) 전 회장의 순서였다.

---(중략) 경주말의 뿌리인 향가 연구는 일본인 소창진평(1929년)에 의해 시작되고, 이에 자극을 받은 양주동 선생의 연구보고서(1968년)가 나온 후, 서재극, 조동일 등의 학자들이 향가 연구와 경주어 채록에 몰두했고, 이임수 교수는 1983년부터 경주 동국대에서 향가와 이후 문학작품과 경주말 연구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경주문화원 부설 향토연구소에서 주관한 ‘경주말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학술회가 있었다. 서울대 최명옥 교수의 「경주지역어:신라어로부터 현대 경주어까지」라는 논문에서는, “경주지역어가 신라어의 계승이며, 고려어와 조선어의 영향을 끼쳤고, 아울러 한국어 연구를 위해서는 현대 경주어 연구가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내용이 소개되었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는 「사료(史料)로 본 신라시대의 경주말의 모습」이란 논문에서 “신라말은 오늘 날 우리가 쓰는 말의 근원이자 뿌리다”라고 주장했고, 경북대 이상규 교수 역시 「한국어 형성과 방언」이라는 논문에서 “6∼8세기 전후의 향찰을 토대로 어휘, 음운, 어법이 15세기 중세어와 근접하며, 또한 신라어가 현대한국어의 출발”이라는 점을 주장하였다.(중략)

‘경주 문인들의 경주말 사랑’에서 시인 박목월의 “기계장터”를 경주문인협회 최상문 중견시인의 낭송이 있었다.

---기계장터

아우보래이

사람 한 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쿵둥하구나

누군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 같이 기계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베 앙 그렁가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 목발 받쳐 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 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경주인들의 경주말 발굴. 전승 사례’에서는 경주문화원의 ‘경주 민요집’ ‘경주사람 천하명물 정만서’ ‘남기고 싶은 경주 이야기’ ‘경주말의 보존과 활용’ 등의 발간과 ‘경주말겨루기 대회’ 등의 사례를 발표했다. 최햇빛 선생님의 유별한 한글사랑부터, 전공과는 무관한 김주석(연대 화공과 졸. 전 경상화학과 조양화학 CEO)씨의 경주방언 수집과 연구를 알렸다. 서울대 최명옥 교수와 더불어 1986년부터 15년에 걸쳐 경주 건천 지역의 노인 22분을 통해 채록한 ‘경주속담.말사전’을 편찬했다. 발제자인 수필가 최병섭 선생은 이 외에도 경주어에 대한 가치 인식과 실천적 실현 방안에 관한 개괄적 제안을 펼쳤다.

발제가 끝나고 질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장윤익(인천대, 경주대) 전 총장은 경주어와 터키어의 유사점에서 신라의 세계적 입지를 말했다. 경주에서는 “부추”를 “정구지”, “비누”를 “사분”이라 부르는데 이는 현재 터커어와 동일한데 이와 유사한 언어가 이 외에도 허다히 많다는 사실이다.

페루에서는 한때 자신들의 시조가 일본이라 여겨서 일본인 후지모리가 장기집권을 했으나 부패한 정권이 망한 뒤, 역사 재조명으로 그 시조 뿌리가 일본 아닌 한국이었음을 자각하여 한국어 공부에 열중이라고 했다.

천 년이 넘도록 맥을 이어오는 신라향가를 하이쿠처럼 2행시로 세계화 시켜야한다는 견해부터 향가의 국제적 행사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으로 많았다. 정부 주도로 2대 명절인 추석과 설날에 향가 경창과 백일장 등 전통문화계승을 더 늦추어선 안 될 것 같다. 각 지역에서 예선대회를 거쳐 준결승에 이르기까지 전국적 규모의 행사로 향가의 문학성과 길고 긴 역사성을 복원시킬 방법을 학계와 정부는 구체적 연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라어는 경주어의 뿌리인가? 라는 질의에서 10년 20년 안에 제대로 된 고찰이 없으면 어휘는 기록으로 남겠지만 경주말의 고유한 발음은 사라져 가치마저 잃게 된다는 우려도 나왔다.

신라인들은 결코 영남에서의 붙박이 삶이 아닌 서아시아와 동유럽까지 폭넓은 교류와 소통을 해왔음을 광범위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팽배했다. 사회를 맡은 서울대 권재일(한글학회 회장)명예교수님의 “만주어와 우리말 조사”에도 뜨거운 기대감을 가졌다.

질의 도중 우레 같은 박수를 세 번이나 받은 오동춘(서울 4개 학교 국어선생님 역임)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웅변에 장내에는 큰 웃음이 터졌다. 애국가에 관한 뜨거운 애정을 과시하며, 일편단심 충국정신의 도산 안창호, 한글사랑 외솔 최현배를 알리며 위트와 해학적으로 접근했다. 일제 식민 시기의 적확한 셈법은 34년 11개월 14일이라는 또박또박한 가르침에 참석한 경주고등학교 학생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이 강연의 특징이 단 한 사람도 졸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들 눈을 반짝이며 오래된 역사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신라와 경주에 그만큼 관심이 깊었다. 한 가지 무척 아쉬운 점은 경주시 문화관련 공무원이 단 한 사람도 눈에 뜨이지 않는 점이다. 꼭 알아야 지식을 갖추어야 격이 높은 문화행정을 시행할텐데 업무가 많다해도 국제적 행사 참여 불가는 무척 안타깝다. 

◆세계 속의 빛나는 한글, 우리 자긍심

11월 8일, 동일 시간대에 강의실 1, 2에서 강연이 있었던 관계로 동시에 취재를 할 수 없었다. 점심 식사 후 2부에서는 “한글문학 세계화의 길”에 관해 신달자(문학진흥정책위원장) 시인님과 알브레히트 후베(독일 본대학 명예교수)교수의 강의가 있었다.

신달자 시인님의 ‘한글의 새로운 부활과 조명(照明)’ 

1) 자신을 사랑하자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이 유엔이 주최한 청소년 행사에 초청 연설을 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몸과 노래의 리듬만큼 격렬한 춤으로 기억되는 그들이 무슨 연설을 할까 궁금했는데 뜻밖에도 ‘자신을 사랑하자’는 좀 당황하고 신통하기도 했다.

‘노래를 사랑하자’라면 몰라도 한마디로 경이롭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의 일환인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자는 기획이 숨어 있었다. RM(김남준) 리더 말에 나타난 ‘나를 사랑하자’에는 깊은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이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고 무엇에 흥분하며 무엇이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합니까?」 놀랍게도 어린 청춘들이 하는 말이다.

사실은 나는 이 나이에도 늘 이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내 이름은 시인이고 까지는 단번에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는데 “흥분”과 “심장을 뛰게 하는”에서는 길을 잃고 만다. 젊은 시절에 나는 시와 미래에 대한 열정으로 옴 몸을 태웠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내 인생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 라는 자기 질문에 흥분하고 가슴이 뛰었던 시절이 있었다. (중략)

결국 나는 한글에 그 초점을 맞춘다. 한글이야말로 나를 존재하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대상이다. 한글이야말로 영원히 흥분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중략) 방탄소년단은 5억 원을 유니세프에 기부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덧붙였다. “저희는 저희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기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래와 춤은 많은 대상들을 매혹하고 놀라게 하고 인기를 끌려는 수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속에 터져 나오는 말과 그 말에 대한 진실을 자연으로 터져 나오는 몸짓으로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목표에 근거를 두었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나+사랑+한글>로 <나+국가+한글>로 <나+한글+세계>로 해석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용하는 한글을 사랑하고 내가 태어난 국가를 사랑하는 일이 될 것이다.(중략)

2) 한글은 촌스럽고 외국어는 세련되다?

신달자 시인은 또 한 때 홍대 거리를 도배하던 외래어간판들이 점차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뀌는 현상에도 기뻐한다. 카페 이름 <엉뚱상상>, 물고기 글자에 그림문자를 표현한 카페 <물고기>, 옛날을 추억하게 하는 <은하수 다방>,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는 북카페 등의 상호를 보면 시인은 직접 들어가 보게 된다고 했다. <달콤살롱>이라는 살롱과 <안녕, 낯선사람>은 한글은 크게 영어 hello,stranger는 작게 표기해 우리글의 자신감을 나타내고, 이 외에도 <노pd네 콩 볶는 집>은 사람들 사이에 <노콩>으로 불리는 문화공간으로 음악회도 열린다고 한다.

<카페 일상> <게으른 고양이> <북카페 작업실> <카페 바 디디다> 쉬는 의자가 예쁜 그림으로 그려진 <정민언니>는 고달플 때 찾아가고 싶다고 한다.

끝으로 독일에서 30여 년간 한글수업을 하는 독일의 알브레히트 후베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제목: 한글은 묶여있는 영웅Ⅰ, 부제-한글과 정보기술(IT). 후베 교수의 연구 분야는 한글, 훈민정음, 음양오행설, 정보기술 네 가지에 연구의 단초를 두었다.

후베 교수는 태극도에 관한 주자의 성리학부터 오행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의 한글 28자에 관해 다각적인 연구를 해온 것 같았다. 한글의 글자 모양 중 위의 것은 대자연이 만든 것으로 소리와 순서를 따랐고, 아래의 것은 사람이 바꿀 수 있는 세상을 본 뜬 것이라 했다.

(중략) 원래 컴퓨터는 빈 깡통(바보). 이유는 컴퓨터는 말 두 마디만 할 줄 안다. 즉 0과 1. 이 두 ‘단어’를 처리하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 모든 글자나 기호들 0과 1로 바꾸어 표현해서 입력해주어야 한다.

0과 1로 계산하는 수학은 이진법이다. 서양에서 이진법을 연구 개발한 학자는 라이프니츠Leibniz(1646∼1716)로 라이프니츠는 컴퓨터의 아버지다. 동양에서는 이진법이 음양설에 포함되어 있다. 훈민정음(한글)은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한 문자다. 세종대왕은 라이프니츠보다 250년 전 이진법을 기초로 한 문자를 창제했다. 세종대왕은 컴퓨터의 아버지다. 라이프니츠는 64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진법으로 알아봤지만 그 속의 세계관을 몰랐다. 세종대왕은 이진법 뿐 아니라 온 누리를 기준으로 된 문자를 만들었다.

음양오행설은 한의학, 즉 인체에 적용되고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균형, 조화, 평화를 찾는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세종대왕은 '차세대 컴퓨터의 아버지!' 라 했다.

질의 시간에 구룡포가 고향이라는 젊은 배우 박야성씨가 촬영 차 경주에 왔다가 좋은 강연이 있어 달려왔다며 “표준말의 한계 때문에 우리말이 지닌 언어의 풍요가 축소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객석에서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참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지방의 사투리로 치부되는 어휘는 의외로 다양한 언어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표준어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의 경계를 허물어 국어학계에서는 넓은 지역어의 채증으로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자유로운 사용을 권장하고, 기록에 남겨야 한다고 본다.

배우 박야성씨의 질의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온 김숙경(캐나다 여류문인협회)회장님은 600만 해외동포들을 위한 문학적 자료가 너무나 빈곤하다며 안타까운 재외동포의 현실을 토로했다. 현재 10만 명 이상의 해외동포 문인들에게 대한민국 정부와 문학계에서 더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받고 싶다고도 했다. 외국에서 살며 우리글을 쓰는 문학에 매달리는 향수는 더 절절하고 고독한 행위일 것이다. 글로벌 시대라지만 아직 정부 관계기관의 손길이 못 미치는 재외동포들의 한글사랑과 문학 활동에 지지와 더불어 교류행사도 정기적으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폐막식 인사에 즈음한 손해일(시인.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님은 김소설의 ‘진달래꽃’을 2번 낭송해 대공연장 안에 불꽃놀이 같은 웃음이 터뜨렸다. 처음은 시의 원형 그대로 낭송했고, 두 번 째는 경상도 사투리 버전의 ‘진달래꽃’이었다.

 

(표준말버전)

진달래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경상도버전)

진달래 참꽃

내 꼬라지가 뵈기 싫어

가삔다카모

내사 마 더러버서 암말

않고 보내주꾸마

영변에 약산 진달래 참꽃

한거석 따다

니 갈라카는 질바닥에

쫘악 뿌리주꾸마

니 가는 걸음걸음마다

내가 나뚠 그 꽃을

사부잭이 삐대밟고

가뿌리그라마

내 꼬라지가 뵈기 싫어

가삔다카모

내사 마 때리직인다캐도

안 울끼다 마

◆국립한국문학관은 왜 문학의 본향(本鄕), 경주를 외면하는가?

2015년 12월31일 문학진흥법이 통과된 이후 대한민국 창건 이래 가장 큰 국립한국문학관 건립계획이 언론에 발표되었다. 필자는 당시 시의회 문화행정위원장에게 이를 알린 뒤, 혼자서 A4 4장 분량의 국립한국문학관 경주유치 의견서를 작성해서 시청 문화예술과와 시의회에 각 1통씩 보냈다. 45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투자금액과 문화재적 가치와 인적자원의 활용 등 대단히 매력적인 이 거대 프로젝트에 얼마 후부터 전국의 24개 시, 도, 군, 구,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야단법석을 떨었다. 서로 자기 지역 출신 문인들 이름을 나열하며 그간 찬밥 신세이던 문인들을 영웅시했다. 서로들 문학적 적임지역이라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신라의 찬란한 향가문학과 김시습의 금오신화로 산문의 바탕이 된 경주에서 필자는 느긋한 자신감을 느꼈다.

단순히 국립박물관처럼 문학적 사료를 전시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고 했다. 미래세대인 학생들을 연계해 인문학의 근본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장의 가치도 고려해야하며, 천년이 넘도록 기록된 신라시대부터 근대까지의 문학과 역사물까지 총망라하는 집합체 역할의 문학관이라 필자는 생각했다. 거기에 가장 적합 곳은 누가 뭐래도 바로 신라의 수도 서라벌인 경주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인 확장성이 중요하다. 매해마다 쏟아지는 출판물과 새롭게 탄생되는 등단 작가들을 위한 더 넓은 토지 수용이 점진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경주시의 면적은 1천 324㎢로 서울의 2배이며, 전국 시 단위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두 번째로 넓다. 서로 문학적 역량이 가장 크다며 부르짖는 동안 정작 경주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신라의 문물만으로도 차고 넘친다는 자만이었을까? 하물며 대구시와 경상북도도 별개의 유치 운동에 들어가고, 도내에서도 각 시가 서로 별개로 제안서를 내고 중앙에 선전을 하느라 온갖 잡음이 무성했다. 경주에서도 몇 몇 학자와 문인들이 힘을 합쳤지만, 경주시의 적극적인 유치의욕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전국에서 유치과열경쟁으로 이상 열기가 치솟자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은 일단 보류로 가닥을 잡았다.

이후 암암리에 수도권역으로 추진한다던 소문이 돌더니, 11월 2일 서울 은평구에 건립예산 608억의 한국국립문학관 건립이 확정되었다. 여기서 문학의 본향인 경주의 문인들은 몹시 서운하다. 서울시보다 2배나 더 넓은 경주시의 확장성은 무한하며, 새로 조성된 화랑마을의 문화적 벨트와 국내외 대규모 관광객 유치에 따른 숙박시설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경주다. 이 완벽한 역사성과 미래지향적인 경주가 변방이라는 이유 때문에 소외된 것은 선진국의 균형발전과는 철저히 거리가 멀다.

세계의 문인들이 칭송하고 우러르는 신라, 천년이 넘는 문학의 기록을 태동한 경주는 문화체육부 결정에 여러모로 편치 못하다. 더구나 고적유물보존으로 인해 건축물 고도제한부터 발굴에 따른 손실, 대규모산업단지 유치 불가까지 경주시민들이 겪는 경제적 피해는 엄청나다. 이런 비생산적인 가난을 극복해야하는 경주시민들에게 국립한국문학관은 과연 꿈에 불과한 꿈이었나, 그런 생각이 짙게 남아있다.

한글의 바탕글이 된 이두의 신라 수도, 경주를 사랑하기에 이 꿈의 무산은 앞으로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앞으로 한 가지 간절한 희망사항이 있다면 국립한국문학관 중 별도의 <신라관>을 반드시 경주에 유치해서 문학의 본향임을 후세에 전하고 싶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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