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임무와 역할

“지금 뭐하자는 게야!”

몇 일 전, 김포에 사는 이모가 호들갑스레 전화를 걸어왔다.

“박상학이란 작자가 또 삐라라두 뿌렸수?”

군 당국이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5일 간 강원·경기 일대에서 야외 전술훈련 및 '2018 대침투 종합훈련'을 벌인 것에 대해 이모는 적잖게 화가 나있었다. 접경지역 주민다웠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3일 전투준비태세종합훈련을 한데 이어 또 다시 벌인 대북군사훈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반발을 했다.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 조성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 특히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험 제거와 적대관계 종식을 확약한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와 배치된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지난 20일 정경두 국방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9년 국방부 업무계획'에 의하면 내년 1월 육군의 전방작전을 지휘하는 지상작전사령부가 창설된다. 특히, 유사시 북 장사정포에 대응하는 대화력전 임무를 수행하는 화력여단도 함께 창설된다.

군당국은 GP철수 과정에서 인민군과 악수까지 해놓고서는 왜, 대북적대를 계속하는 것일까? 복잡하지 않다.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북을 상대로 전쟁연습이나 무력증강을 하지 않으면 미국이 화를 낼 현실을 문재인 정부로서는 외면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예전,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말을 했었다. 특별할 게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강요에 굴복 할 때면 자주 쓰곤해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대북송금특검과 이라크 파병 때 자주 썼었다. 미국에 대해 ‘노’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외쳤던 게 얼마나 순진하고 낭만적이었는지 즉, ‘이상’이었는지를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스스로 고백을 한 셈이었다.

변호사 혹은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미국의 실체나 한미관계의 본질을 몰랐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이 지휘하는 분단체제에서 개혁정치세력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다 그랬다. 대통령 노무현은 ‘미국에 노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말을 ‘객기’로 치부하고 ‘미국엔 박박 기는 거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은 그렇게 미국의 위력과 간섭을 용인했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던 문재인 역시 한미동맹 즉, 한미공조의 본질과 실체를 정확히 확인했을 것이다.

변함없는 한미종속관계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대한 북미 간 합의가 있었고 남북 간에 세 번에 걸친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남북관계는 발전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하지만 이에 부응해야할 한미관계는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오히려 더 밀착된 모양새까지 내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름에 “한국은 내가 승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 김포 해병대 사령부 뒷 산인 문수산 등산을 한 뒤 산 초입 막걸리 집에서 한잔 걸치고 있었던 이모는 발끈했다. 민족공조가 한미공조에 막혀 진전되지 못할 것에 대한 우려가 엿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 발언은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에 의해 곧바로 튼튼하게 실물화된다. 폼페오 장관이 직접 발탁한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방한을 해 통일부 외교부 그리고 청와대까지 돌아치며 ‘한미워킹그룹’을 만들어낸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 사업 전반에 대해 방향을 잡아주는 것에서부터 속도조절까지 거의 완벽하게 꾸려진 대남개입간섭기구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발언에 문재인 대통령도 폼페오 장관 못지 않게 순종하고 나섰다. 11월 3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북압박 지속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어 최근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EU와 함께 집행한 유엔대북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한테 연내 방문하라고 초청했다는 게 맞는 말이기는 한게야?”

박근혜 팬이었다가 탄핵사태 이후 문재인 팬으로 갈아탄 이모는 문재인 대통령에 실망했다면서 그렇게 혀를 끌끌 찼다.

▲ 차관보급에 불과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알현한 한국의 대북정책 당국자들 (왼쪽부터 강경화 외교부장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장관,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 그리고 촛불

“가만 있어서는 안되겠어”

이모는 팔을 걷어부치겠다는 태세였다.

“방법은 있슈?”

“민주평통(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말여, 고거 해야겠어”

이전부터 김포시청 관리가 민주평통 자문위원 위촉 요청을 했었는데 줄곧 망설이고 있던 이모였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촛불을 다시 새롭게 들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정확한 정세인식이었다.

조성된 정세와 현실은 촛불정부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이뤄내야하는 촛불의 역사적 임무가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요청인 자주통일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수시로 알려주고 있다. 새로운 역사적 시대인 지금에 있어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으로 개척해야할 국민주권시대는 자주통일시대 개척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촛불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평양정상선언에서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내왔다는 사실에 실천적으로 주목하고 있다. 합법칙적이다.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은 자주통일운동이 굳게 추켜 들어야할 대원칙이다. 70년 우리 겨레의 지난하고 성과적인 자주통일투쟁을 다 담아내고 있어 생생히 살아있는 민족자산인 것이다.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제대로 움켜쥐게 되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금세 부각된다. 독립된 나라의 국민들이라면 상식적으로 갖고 있을 자존심을 앞세우면 된다. 이모의 말처럼 “니들이 뭔데”라는 것에서라도 출발점을 떼면 된다.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제대로 움켜쥐면 또한 많은 것들이 선명히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트럼프 대통령이 6.12북미회담탁에서 종전선언을 구두로 약속한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미국이 6.12북미공동성명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합의하면서 그 전제로 북미신뢰관계 구축을 적시했다는 것은 더욱 더 또렷이 들어온다.

눈에 담박 들어오는 것은 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주한미군철수 용의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북미정상회담이 끝나고 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3만2천명의 주한미군을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라고 했었다. 비록 말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촛불들은 이제,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굳건히 쥐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보다 강하게는 문재인 정부에게 대북적대를 강요하는 트럼프 정부에게도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현 시기 북미교착상태를 풀고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가능케 하는 길을 열어줄 수가 있다. 머지않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은 물론 자주화된 한국을 열어주게 될 길이다.

“민주평통말여, 깔아주는 꽃길만 걸을 것이여? 엉”

자주의 촛불 대열 어디 쯤엔가 이모의 그 푸지거나 이쁜 욕설들이 질펀하게 깔릴 것 또한 머지않아 보게 될 정치풍경일 것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한성 시민통신원  hansung6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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