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醬) 담그기, ‘국가무형문화재’ 137호가 되다.

3.19(화) '문화공간 온'에서 장담그기 교육 신청 가능 허익배 한겨레온 객원편집위원l승인2019.03.10l수정2019.05.2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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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醬) 담그기, ‘국가무형문화재’ 137호가 되다

 

‘장 담그기’는 2019년 1월 9일자로 국가무형문화재 137호가 되었다. ‘장 담그기’는 시중에 널리 퍼져있는 보편적인 지식으로 여겨 보유자와 보유단체가 별도 인정되지는 않는다. ‘아리랑’(제129호), ‘제다’(제130호), ‘씨름’(제131호), ‘해녀’(제132호), ‘김치 담그기’(제133호), ‘제염’(제134호), ‘온돌문화’(제135호)도 마찬가지다. 누구라도 ‘장 담그기’를 잘하면 ‘국가무형문화재’라고 자부해도 될 것이다. 장(醬)은 여전히 우리의 식생활의 기본이며 전통문화와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아파트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대도시는 물론 소도시에서 조차 장을 담가 먹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에 장의 역사와 실체가 무엇인지, ‘장 담그기’가 어떻게 지켜져 왔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두장(豆醬),은 고급식품

장(醬)은 한중일은 물론 동아시아인들의 공통된 음식문화로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주례(周禮)]에 처음 언급되었다. 하지만 이때의 장은 육장(肉醬)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장이란 언제나 콩으로 만든 두장(豆醬)을 말해왔다. 두장은 후한시대 쓰여진 [논형(論衡)]에서 처음 언급되는데 그 역사는 2천년이 된다. 흔히 “중국은 육장(肉醬), 한국은 두장(豆醬), 일본은 어장(魚醬)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단순히 말하면 육장은 날고기에, 어장은 물고기에 소금만 뿌려놓으면 자체 효소의 작용으로 발효가 된다. 하지만 두장은 다르다. 콩을 반드시 익혀야 한다. 콩은 지금의 화력으로도 가마솥에 5, 6시간은 푹 삶아야 익는다. 그러므로 두장의 완성은 철기문화가 도래했을 때 비로소 확산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두장은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당시 최고의 고급식품기술이 접목된 신제품이었던 것이다. 두장기술은 콩을 삶는 도구의 발전, 메주를 띄우는 방법, 질그릇이 아닌 옹기항아리의 발명, 또 자연 속 미생물의 활용 등 우리 조상들의 경험이 총 망라된, 인문학적인 결과물이다.

 

~ 장(醬)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

장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해왔다고 볼 수 있다. 3세기 [박물지]에서는 “외국에 시(豉:메주)가 있다”라고 하였고, [삼국지위지동이전]에서는 ‘고려취’를 언급하면서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한다(高句麗善藏釀)”고 하였다. 6세기,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북위(北魏)의 태수가 남긴 [제민요술(齊民妖術)]이란 책에 대두의 종류로 완두와 비두, 고구려 백두, 고구려 흑두를 언급하고 있다. 완두는 탄수화물이 많아 밥이나 죽에 이용되었을 것이고, 비두는 제비콩으로 주로 관상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반면 고구려의 흰콩과 검은콩만이 장을 담을 수 있는 장콩이다. 한양대 이성우 교수는 ‘북위와 고구려는 같은 북방민족으로 비슷한 음식문화를 공유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 북위와 고구려는 혼인동맹을 맺어 왕래가 잦았고, 오랜 세월 평화를 유지하였다.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의 두장기술은 자연스럽게 한반도와 일본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문왕 때(683년) 왕후에게 보내는 폐백품목 속에 메주(豉)와 장(醬)을 언급되어 있다. 939년 [왜명초倭名鈔]에는 일본의 된장인 미소가 ‘고구려장’이라고 하였고, 19세기말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에는 발해의 수도였던 ‘책성의 메주(시)’가 유명하다고 하였다(柵城之豉). 고려시대에는 구휼식품으로 장과 시가 많이 이용되었던 기록도 있고, 조선시대 특히 17, 18세기 무렵엔 ‘장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장의 종류가 많았다.

 

~ 2천여 곳에 달하는 전통장류업체의 활용

한편 도시화, 현대화, 글로벌화 등의 물결 속에서도 당당히 ‘장 담그기’를 지켜온 것은 1980년대 이래 2천여 곳으로 늘어난 전통장류업체들이었다. 이는 ‘농촌여성 일감갖기 운동’ 등으로 정부가 장려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획일화된 장맛에 길들여지지 않고, 집집마다 달랐던 장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2천여 곳의 전통장류업체는 새로운 산업군으로 평가받고 활용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독이 수백 개라 해도, 공장의 생산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저 항아리만큼의 생산, 항아리만큼의 소득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장 사업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각각 적정의 이익을 취하고, 적정의 가격을 지불하는 ‘공정사업’이 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장류업체의 역할은 단순히 장 공급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장류업체의 99%가 국산콩을 사용하고, 지역의 사람들을 고용하며, 지역의 토착미생물을 이용해 장을 담근다. ‘장 담그기’는 박제된 문화재가 아니라 현대인들의 건강과 생활에 필요한 살아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단지 이벤트성으로 ‘장 담그기’가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장이 좋은 장이고, 어떤 장이 가짜 장인지 구별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제공과 체험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물을 갖고 있는 전통장류업체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지역의 전통장류업체는 ‘장 담그기’체험 교육의 장은 물론 음식, 관광, 힐링 등 6차 산업의 전진기지로 두루 활용될 수 있다. 우리 고유의 두장문화를 어떻게 시스템화하고, 어떤 부가가치를 만들어 후대에 물려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 2019년도 ‘장 담그기’는 전국적으로 약 50여 군데에서 실시되고 있다. 2월11일 창원을 시작으로 부산, 과천, 청주, 영월, 의령, 대구, 광주, 제주, 동두천, 김천, 시흥, 광주, 대전, 영양, 울산, 양주, 고양, 진천, 수원, 연천, 안성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2016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 장독대사업으로 각 구청의 신청을 받아 올해는 은평구, 금천구, 양천구, 동작구 등 20여개 구청이 참여하고 있다.

(오는 3월 19일(화) 종로 2가에 위치한 [문화공간 온]에서 20명 한정으로 ‘장 담그기' 교육이 진행됩니다. 이번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 

 ~ 문의 : 02-730-3370 / 문화공간 온 사무실

※ 참조 : [우리 콩 세계로 나아가다], [된장 인사이드], 장보[醬譜]

 ~ 필자 :  한국콩연구회 이사된장학교  유미경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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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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