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기억, 그 단편

L에게

우리가 울산에서 같이 일한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신도 말뫼 Malmö의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겠지요. 고작 1달러에 울산까지 팔려와 재조립된 코쿰스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 그 아래에서 우리는 담배를 나눠 피웠습니다. 인생 밑바닥끼리 모인다는 조선소에도 계급이 있어 '직영'이라고 불리던 중공업의 정직원들이 맨 위였고, '본공'이라 통칭되던 협력업체의 사원들이 그 다음이었으며, 당신과 나는 가장 밑바닥인 작업자 신세였지요. 직영들도, 본공들도 퇴근하고 난 어둠까지 우리는 일했습니다.

아무런 기술없이도 시작할 수 있었고, 일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누구누구 팀'에 속한 작업자. 본사가 내려준 임금에서 협력업체가 일부를 떼고, 다시 팀장이 떼고. 그러고나면, 기량에 따라 일당을 지급받던 미숙련 노동자. 여름 햇QUX을 맞으며 족장의 발판을 올리고, 두꺼운 먼지를 호흡하며 동축케이블을 '오가야' 합창에 맞춰 날리고, 쓰레기를 치우고 무거운 짐을 어깨에 올려 계단을 오르고 내리던 것 모두 우리의 일이었지요.

늦은 밤일을 마치고 나면 카페 불빛도, 가로등도 없는 암흑 속에서 작업등끼리 서로 홀로 빛나던 곳, 바다위에는 건조를 마치고 팔려가는 선박들의 불빛만이 가물거리던 곳. 당신은 그 막막함을 일찍부터 이기지 못하고 나보다 앞서 울산을 떠나버렸지요.

▲ 건조중인 배의 상층부에서 내려다 본 풍경. 거칠게 쓰인 일련번호는 도면을 통해야 의미를 알 수 있다.

친애하는 L,

서울로 치자면 강남과 같다던 울산의 중구. 조선소가 있고 조선소에 의지해 삶을 노래하던 곳. 그곳의 풍경도 이제는 많이 변해버렸다 하더군요. '물적분할'이라는 낯선 용어가 등장하더니 오랜 나무둥지에 깃든 새들 같았던, 서양 얘기 속의 세계수에 기대었던 요정같던 이들이 서서히 무너져 간다는군요. 눈물로 크레인을 보냈던 말뫼의 사람들은 서서히 웃음을 되찾아갔다는데, 울산의 사람들은 든든해보이던 직영도, 위로 굽실대고 아래로 내려보던 본공도, 밑바닥을 받쳐주던 작업자들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군요.

그리고 당신의 부음을 전해 들어야만 했지요.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요. 울산보다 낫다며 새로이 의욕을 보였었는데, 술 한잔하자는 걸 선약이 있어 미뤘던 게 우리의 마지막 연결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빈소마저 쓸쓸하더군요. 아들을 갑작스레 보낸 노모는 머리를 싸매고 누웠고, 이혼했음에도 당신은 두 아들을 그리워했지만 빈소를 찾았을 때 그 아이들 아무도 당신의 마지막을 지키지 않고 있더군요. 당신이 바랬던 소박한 성공도, 굴지의 조선사들이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려 시작한 해양플랜트 사업의 꿈도 결국은 이뤄내지 못했군요.

여전히 친애하는 L,

당신이 떠난 후 나 역시 울산을 떠나 떠돌았지요. 당신은 생명을 내놓았듯이, 나는 다리 하나 불편해지는 대가를 치르고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지요. 돌아보면, 도크 dock 가 창고로 바뀌는 동안, 야드 yard 가 말뜻 그대로의 벌판으로 변해가는 동안 우리 모두는 무력했지요. 성공했던 방법을 바꾸지 않았고,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며, 하면 된다는 지나친 자신감에 취해 짧은 환상을 보고 있었을까요?

다시 돌아보면, 문현문을 지나 피어있던 아름다운 벚꽃들, 그 짧은 행복처럼 시간들이 지나갔군요. 당신은 세상을 떠났고, 조선소의 작업등이 예전처럼 알알이 환해지기는 어렵겠지만, 매년 꾸준히 피우던 꽃처럼 사람들의 의지는 언제 어디서건 다시 피어나겠지요.

부디 그 꽃의 모습이 아름답길,

그리고 당신 또한 저세상에서도 평안하길 마지막으로 바래요.

 

                          2019. 7. 장마의 끝자락에서 L을 추억하며....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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