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기 한겨레 정기주주총회 현장인터뷰

부부가 함께 주주인 경우는 드물 것이다. 거기다 자제 분들까지 모두 주주인 경우는 더욱 드물 것이다. 더구나 두 분은 요즘 세대가 아니다. 은발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원호(71), 백청자(75) 노부부는 노을에 물든 가을 논배미처럼 잔잔했다. 태풍에 헝클어져 비틀린 벼를 닮지 않았다. 쓰러져 비바람 맞아 군데군데 썩기도 하는 그런 벼를 닮지 않았다. 삶의 궤적은 노후의 풍모에 고스란히 우러나오는 법이다.

현재 성남 분당에 사시는 두 분 앞에 앉은 나도 바람 자는 날의 가을 억새처럼 잔잔해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두 분은 창간 이전에는 조선일보를 구독했다. 한겨레 창간 이후로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그 신문을 읽는 동안에도 역사의 흐름에는 예리한 감각을 지녔었다. 세상이 잘못돼가고 있다는 자각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그다지 강퍅한 세상에서 정의를 부르짖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강의를 찾아다니며 경청했다.

당시 명동성당 옆 전진상기념관에서 매주 ‘월요강좌’가 있었다. 박정희 독재를 규탄하는 강사는 송근호, 김수환 추기경, 리영희, 함석헌, 문정현 등 쟁쟁한 이들이었다. 정신은 먹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배움의 성찰은 일생을 두고 행할 목적이 돼야 한다. 백범에 관한 강의를 들으며 두 분의 국가관은 형성됐다.

두 분의 종교는 개신교였지만 매주 명동성당을 찾는 경계를 넘었다. 옹졸하거나 편협하지 않은 열린 시각의 증빙이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사진전을 종로성당에서 봤다. 근대사의 엄청난 오류 앞에서 새로운 역사의식을 다잡았다.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라 부부가 함께 집을 나서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빠짐없이 동행했다. 아이들 또한 그런 부모님의 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따랐다. 바른 부모 아래서 바른 자식이 자라는 당연한 이치고, 바른 국가에서 바른 역사가 이룩된다.

부랴부랴 집안일을 마치고, 애들을 건사해놓고 아직 파릇한 젊은 부부가 나란히 집을 나서 인문학 강의를 듣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건강한 광경이다. 그저 보이는 모습인 게 아니라 깊은 감동으로 눈물이 맺히는 순간이다. 독재와 쿠데타와 숱한 음모의 격동기를 겪은 우리나라에 이런 부부가 몇이나 될까. 아내는 남편의 뜻을 쫒았고, 남편은 아내를 동등한 인격체로 우러렀다.

이렇게 날이 갈수록 미래지향의 탄탄한 정신세계를 지닌 두 분은 어느 날 정태기(전 한겨레신문사장) 씨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전국의 미디어와 언론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통폐합되고 정직한 말과 글이 죽은 사회에서 그 강의는 한줄기 빛이었다. 올바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천국의 문인 양 한겨레 탄생에 스스럼없이 참여했다.

비교적 생활이 넉넉했던 부부가 보유한 주식이 700주다. 세 자제분 앞으로 각각 100주가 있다. 그래서 전체 보유주식은 1000주다. 당시 12, 14, 17세였던 자식들은 지금 모두 중년에 이르렀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한겨레와 함께 한 그들 역시 변함없는 한겨레의 팬이다. 이 부부에게 지금 청년이 된 한겨레는 늦게 본 자식 같은 존재다. 은발의 부모는 늘 막둥이가 걱정된다. 노을 아래서 바라보는 막내의 등을 보며 홀로 우뚝 잘 살아갈 것을 염려한다. 그래서 늦둥이는 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일부 정치인이나 뜻 깊은 대학교수 등 사회지도층이 아닌 보통의 주주들에 대한 일반적 시각은 적잖이 왜곡돼 있다. 국가와 사회에 매사 불평불만인 뒤틀린 반골들이 한겨레 주주인 것으로 안다.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는 위험한 적색주의자 또는 그와 유사한 모색을 획책하는 암묵적인 무리로 취급 받는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야유하며 반애국자로 낙인찍기도 한다.

그런 폄하의 시선 속에 이런 장한 부부가 있다. 아름다운 역사를 위해 소중한 젊음을 할애하고, 부유하지만 낮은 세상에 귀를 기울이는 선량한 이들이 있다. 세상의 귀감이 되는 두 분의 자제들 역시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탐욕을 버렸으리라. 두 분에게 무한한 존경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이미진 주주통신원  lmijin0477@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