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달의 그늘

종로에 예부터 서민의 사랑을 받아 온 ‘김밥’ 집에 들어섰다.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에 시장기를 메우기 위해서다.
실내장식이나 탁자와 의자가 깔끔하고 초현대적이다.
예와 너무 다르다. 허름한 시골 장터 음식점 같은 예스러운 그런 집.
엄마 손길 엄마냄새가 나던 그 옛 추억을 지니고 들어섰는데
아뿔싸!
전혀 아니다.
더욱 놀란 것은 기계 앞에 서서 기계를 상대로 식사 주문을 해야 한다.
신용카드를 꽂고 주문을 하는데 마지막에 주문완료가 뜨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도우미 아줌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잠시 후에 한 할아버지가 들어선다.
“여기, 주문 받아요.”
도우미 아줌마가 다가와  그분을 주문패널로 데리고 가 주문을 대신해준다.
그이는 5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준다.
도우미 아줌마가 주문에 실패한다.
헌 돈이다. 많이 헐었다. 주문이 불가능하다.
“헌 돈으로는 김밥도 못 먹나?”
할아버지 음성이다.

도우미 아줌마가 주인에게 다가가 소곤거린다.
여사장이 나와 주문패널 문을 열고 1천 원짜리 지폐와 바꿔준다.
도우미 아줌마가 주문을 마친다.

 

이 집의 간판을 보자.
“LA BAB” 
“김밥“이 아니다.
주인 성씨가 ‘라‘씨이냐고 물어보았다.
아니란다.
왜 ‘라밥’이라고 하였느냐고 물어보았다.
라볶이그라탕과 김밥을 함께 이르는 말이란다.
라볶이그라탕? 생소하다. 무슨 뜻일까?
라볶기와 그라탕을 섞은 음식을 만들어 라볶기그라탕이라 이름하고 이집 대표음식으로 삼은 것이다.
요리도 섞어하고 이름도 줄여 쓰니 구세대 사람들이 어찌 알아들을 수 있으랴.
나이든 이에게는 이런 게 너무 생소하다.
외로워진다.
소외감에 휩싸인다.
이 집은 ‘체인’이란다.
이제 김밥집도 자본이 손안에 넣었다.
정겨운 김밥 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라밥 집이 들어선 것이다.
식단도 김밥은 메뉴 한 귀퉁이에 덜렁 하나만 자리하고 경양식 류가 지면을 꽉 채우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한다.
요즈음은 로봇시대, 인공지능시대로 급격하게 이동 중이다.
생산 공장을 넘어 김밥 집에서까지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다.
그걸 나쁘다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소리치고 원망하기만 할 수는 없다.
막을 길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서글프다.

사회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서구화가 깊어진다 해도 이렇게까지 나가도 되는 것일까?
반문해본다.
의구심이 아무리 가슴 두들겨도 어쩔 수 없다.
요즈음 수강하고 있는 ‘자본‘ 강좌 교수님 말씀이 떠오른다.

자본은 국경이 없다.
어떤 통제도 배제하려한다.
모든 경계를 허물고 그만의 자유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폭력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드러나지 않게 할 뿐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최성수 주주통신원  choiss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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