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초미의 관심사다. 내년 4월 총선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야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선거 결과와 득표율 격차에 따라서 지도부 개편 또는 정계 개편도 거론된다.덧붙여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선거제 논의 결과에 따라 진보정당의 운명도 갈린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갈 것인지 아니면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갈 것인지에 따라 정의당을 비롯해 군소 진보정당의 운명이 결정된다.중요한 점은 사표를 최대한 줄이고 득표율에 따라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확립하는
2023년 9월 14일 검찰이 『뉴스타파』를 전격 압수 수색했다. 같은 시각 『뉴스타파』 봉지욱, 한상진 두 기자 자택도 압수 수색했다. 지난해 20대 대선 투표일(3/10)을 나흘 앞두고 『뉴스타파』가 3/6일 보도한 내용을 문제 삼았다. 대장동 사건 몸통 김만배가 신학림에게 들려준 녹취파일이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다.9월 4일 「국민의 힘」 장제원 의원은 국회 상임위 발언에서 “폐간을 고민해야 된다. 없애버려야 된다.”고 강변했다. 그러자 답변에 나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국기 문란 행위이자 중대범
국군의 뿌리는 후기 의병 전쟁(1907-1915) 당시, 일제에 맞선 항일 의병들이다. 후기 의병들은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와 연해주로 망명한다. 망명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일본군과 교전했던 항일 빨치산 독립군들이다. 항일 의병장, 홍범도가 여기에 속한다.그는 망명 전에 함경도 삼수, 갑산, 혜산 지역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의병 전쟁을 치른 항일의병장이다. 망명 후 게릴라식 유격전으로 일제 경찰주재소와 헌병분견소를 습격하고 친일파를 응징했다. 1910년 8월 홍범도는 연해주에서 창설된 항일 독립운동단체 「성명회」에 가입했다. 오직 대한
7월 18일 서이초 교사 비극이 발생한 지 50여 일이 지났다. 그 50여 일 동안에도 교사들 죽음이 똑같은 사유로 계속됐다. 어제도 대전과 청주에서 40대 교사와 30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땐 가슴이 철렁했다.이젠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내일이면 또 다른 교사가 생을 달리한 소식을 접하는 건 아닌지 자못 두렵다. 학교를 떠난 글쓴이도 이럴진대 현장에 있는 교사들 마음은 어떠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양천구 S초교 교사는 두 아이 엄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족의 죽음은 가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지난 서
50도가 오르내리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교사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5차 추모집회에서 무대 위 특수학급 젊은 교사는 ‘살고 싶다’고 절규했다.6차 추모 집회에서 고등학교 교사는 무대 위 대독한 호소문에서 학부모로부터 “교사 자격이 없다”, “쓰레기 교사”라는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을 울분에 찬 목소리로 토로했다.여기 6차 추모집회 무대 위에서 발언한 어느 초등학교 교사 또한 경찰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형사고발로 건강이 크게 무너져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며 고통스러운 심정을 토로했다.매주 토요일마다 전국의 교사들이 상경해 분노하며 절규
오는 서이초 교사 49재를 앞두고 교육계가 정면충돌할 조짐이다. 교육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해임, 파면 등 중징계와 형사고발까지 운위했다. 명분은 ‘학생의 학습권 침해‘를 좌시할 수 없다는 이유이고 실제는 ‘불법 집단행동’으로 규정했다. 그동안 7월부터 8월까지 주말마다 수만 명이 운집한 교사 추모 집회가 열렸다. 50도가 넘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교사들은 슬퍼했고 분노했으며 절규했다. 서이초 교사의 비극을 보면서 교사들은 자신의 비극을 예견했기 때문이다.그 추모 자리에 교사 출신 강민정 의원이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최교진
글쓴이가 박영신 선생을 만난 것은 용산고등학교 시절(1998-2001)이다. 첫인상이 시인 김수영을 연상하게 했다. 가치 판단을 할 때 눈을 크게 뜨며 단호한 모습이 영판 그러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화력이 높았던 것과 달리, 학교 비리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용산고 – 서울대 출신 교사와 과학고에서 전근해 온 서울대 출신 교사들로 구성된 '용산 마피아'와 맞서며 재임 기간 내내 학교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20년이 지난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고 예나 지금이나 '모럴리스트 시인 김수영'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S초 새내기 교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가르치던 교실 옆 보조공간에서 생을 마감했다. 겨우 스물네 살 2년 차 꿈 많은 교사였다. 비극이 발생하기 2주 전, 자신이 쓴 일기장엔 “숨이 다 막히고...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썼다.2017년 김은지 선생님은 경기도 의정부시 H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담임을 맡고서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밤낮없이 학부모 민원 전화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이 컸다. 2018년과 2019년 담임을 맡았을 때는 “아이들과 교
내가 그를 만난 곳은 여의도고등학교다. 2012년 그 학교에 부임했고 교무실이 달라서 1년 동안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지냈다. 2013년에 연구부(1층)에서 1학년부 교무실(2층)로 옮겼다. 박용규 선생은 생활지도부(3층)에서 진로상담부(5층) 내 직업반 담임으로 이동했다. 점심시간 천 명이 넘는 소란을 피해 조용한 공간을 탐색했다. 우연히 5층 복도 맨 끝 교실을 발견했다. 교실이라기보다 꾸민 것 없는 조그만 방이다. 다섯 평 정도 되는 방인데 평소엔 비어있다가 직업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는 월요일에만 작은 교실이 되는 그런 공간이다
90년대 중반부터 NGO 동아리 지도교사를 했는데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인권연대」와 「참여연대」에선 검찰 권력을 예의주시했다. 그 당시 「참여연대」와 「인권연대」는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20년 전부터 못지않게 ‘검찰 공화국’을 예견하며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2019년 '조국 사태'는 조국이란 한 ‘개혁적 지식인의 위선(?)’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강남좌파가 안고 있는 계급적 불일치’가 낳은 문제도 아니다. 더군다나 '조국 사태'는 학종 전형이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
S초 교사의 비극은 처음이 아니었다. 어제(8월 7일) MBC 보도에 따르면 2년 전 경기도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사 두 명이 6개월 간격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두 20대 젊은 교사였다. MBC가 보도하기 전까지 경기도 교육청은 추락사로 처리했다. 모두 개인적 죽음으로 덮어버린 사안이다. 그러나 MBC 보도에 따르면 명백히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사회적 죽음이다. 잘못된 교육 현실이 교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S초 교사의 비극은 결코 새내기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노교사도 2016년 담임을 맡은 학
노회찬은 2018년 7/18일~7/22일 기간, 여야 원내대표단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출국 전 드루킹 특검 별건 수사로 드루킹 김동원이 노회찬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고 언론에 크게 보도된 상황이었다. 노회찬은 정의당 대표 이정미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다. 출국 전 아내 김지선은 남편 노회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여보, 내 계좌는 수십 년 전 것부터 다 뒤져도 걸릴 게 하나도 없잖아, 우리 그동안 쓰는 것도 버는 것도 별로 없이 살아왔잖아” 그러자 노회찬도 “나도 그렇지 뭐”라고 얘기하자
지난 6월 14일 수요집회는 1600번째 맞는 항의 시위였습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한 수요시위를 올해로 31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수요시위를 이끈 주체는 37개 여성단체, 종교단체 연대기구로 출범한 「정대협」(「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의 약칭 , 「정의기억연대」 전신)입니다. 그 중심에는 1991년 최초로 ‘정신대’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임을 고백한 김학순 할머니와 윤정옥 교수, 윤미향 활동가(현 국회의원)가 있습니다.일본대사관은 CCTV를 통해 집회 장면을 감시할 뿐, 단 한 번도 문밖으로 나와 피
지난해 12월 화물연대노조 파업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핵과 같은 위협”이라며 역사상 처음으로 고강도 압박을 가했다.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 화물연대를 백기 투항시켰다. 노조 탄압 직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화끈한 대처’에 지지도가 크게 올랐다.그러나 하루 16시간 화물트럭을 몰아서 300만 원 정도 받는 ‘안전운임제’ 연장을 요구한 노동자들의 절규와 고통에 대해 대통령은 ‘나몰라’라 했다. 올해 2월 대통령의 ‘건폭’ 발언은 노동개혁이란 미명 아래 ‘노조 때리기’에 대한 학습효과였다. 일용직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처
스물네 살 초등학교 새내기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사노조를 통한 동료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실에 공격적 성향을 지닌 학생”이 있었고 “학교 폭력 관련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교실에 들어갈 때 환청이 들릴 정도"로 새내기 교사는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지난해보다 10배는 더 힘들다"고 동료 교사에게 토로했다.이런 사실이 일부 전해지자 전국 초등 교사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양 새내기 교사의 죽음에 슬퍼했고 분노했다.어떤 선배 교사들은 새내기 교사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자책하며 미안해했다. 교사를 향한 학교 폭력
시인 임화(본명 임인식)를 언급할 때 보통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시인,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고 미제 스파이로 처형된 비운의 혁명가를 떠올린다. 해방공간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문예비평가 김동석은 잡지 『상아탑』을 통해 임화를 ‘병든 지식인’으로 혹평하기도 했다.현대 문학비평가들 또한 혹평하기는 마찬가지다. 카프를 “거대한 사이비 조직체”로 폄훼한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카프에 대해 “단 한 편의 우수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심지어 어느 저명한 문학비평가는 임화를 ‘일본 군국주의 찬양자’로 혹독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재개발 2구역 '에일린의 뜰'아파트 시공을 맡은 건설사는 IS 동서 건설이다. 6월 30일이 입주 시작일인데 IS 동서 건설은 지난 6월 초순 조합원 220여 가구에 대해 전격적으로 유치권을 행사했다.유치권을 행사하면서 쇠막대(철봉)를 현관문 입구 좌우 네 군데 벽에 구멍을 뚫어 용접해 박았다.그러다 자신들 스스로 문제를 의식했던지, 아니면 쇠막대 유치권 행사 장면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부담을 느꼈던지 스스로 쇠막대를 철거했다.문제의 발단은 추가 공사비 171억 원이다. 이에 대해 조합 측과 시공사 I
운암 김성숙은 승려 출신 항일독립운동가다. 승려 신분으로 다른 스님들과 함께 3·1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중국 망명 후 의열단 선전부장으로 맹활약했다. 무명의 항일독립투사 김산(본명 장지락)은 운암에게서 마르크스주의를 접했다.님 웨일즈의 『아리랑』에 나오는 “금강산에서 온 붉은 승려”, “1922년~1925년 나를 공산주의자로 만든 사람은 김충창”(김성숙의 이명)이 바로 그 대목이다. 젊은 날 김산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운암 김성숙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 도산 안창호를 꼽았을 정도로 운암은 김산에게 지대한 존재였다
해방 공간 조선 최고의 교육자 3인은 백남운, 이극로, 이만규 선생이다. 세 분 모두 코뮤니스트가 아님에도 월북 인사라 대중에겐 잊힌 인물이다. 세 분 가운데 이만규 선생이 해방 공간 펴낸 『조선 교육사』(상, 하)는 한국 교육사의 정초를 닦은 교육사학계 기념비적 역작이다. 한국 교육사 관련 어떠한 책도 『조선 교육사』(상, 하)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게 학계 중론이다.1946년 미군정이 주도한 「국대안」 사건에 맞서 「국대안 반대」 투쟁을 맨 앞에서 이끌었던 인물 또한 이만규 선생이다. 이만규 선생은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교육 분
2020년 교사 세미나를 통해 글쓴이는 일제강점기 최고의 노동소설이 『인간 문제』(1934)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인간 문제』는 1928년 12월 테제에 기초해 ‘노동자, 농민 속으로!’라는 기치로 내걸고 1930년대 초 ‘혁명적 노조 운동’(일제 공문서 용어 ‘적색노조운동’)을 시대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던 강혜원 선생님이 발제를 하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인간 문제』를 쓴 작가 강경애를 접했다.강혜원 선생님은 일찌기 박영신 선생님과 함께 쓴 『교실 밖 국어여행』(1992)을 펴내 국어와 문학사에서
짐승 세계에선 약한 자가 살아남기 어렵다. 어미도 강한 새끼에게 먹이를 준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선 정반대다. 약자에 대한 연민과 함께, 약자는 늘 공동체의 관심과 보호의 대상이다. 모든 가정에서 튼튼한 자녀보다 허약한 자녀에게 부모는 더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갖는다. 학교 선생님도 스스로 잘하는 학생보단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짐승 세계와 인간 세계의 크나큰 차이다.2021년 12월 3일부터 시작한 「전장연」(「전국 장애인 차별철폐연대」의 약칭) 출근길 시위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
나는 큰아들이어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기대 또한 컸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틈날 때마다 큰아들에 대한 기대를 피력하곤 하셨다. 낡은 유교 폐습 때문인지 큰아들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그런 환경에서 어린 시절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학교 공부를 곧잘 했다. 달마다 치는 일제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었고 전체 운동장 조회가 열리는 날 앞으로 나가 상장을 받았다. 그날 오후 상장을 보여드리면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머릴 2cm 이하로 빡빡 밀어야 했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여전히 60명
1993년 교육부에서 펴낸 『민주시민교육 장학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기술돼 있다.“만일 교육은 잘 되었는데 ‘민주시민교육’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개념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주 시민자질의 함양에 있다. 모든 것에 성공하고 이 점에 실패했다면 그것은 교육 전체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엔 교육의 목적을 인격을 갖춘 자주적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음을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교육의 목적에 실패하고 있다. 대부분 시험형
어제도오늘도, 그리고내일도 역사 속사라져야 할 놈들은 시퍼렇게 살아나좀비처럼 또 살아나높은 권력에 취해‘건폭’이니 온갖 망나니 짓을 해대고 돈에 미친 질식 사회괴물 엘리트들 요설에청년들마저 시들어가네그 사이아까운 목숨들피지도 못한 채꽃잎처럼 스러졌다네 역사 정의가 무너진 사회는사회 정의도 없는 사회라니 아!130년 전수만 명 보은집회에서보여준 높은 인간성의 승리처럼 다시 높은 시민성을세계만방에 보여줘우리도 놀라고, 세계도 놀란2016 촛불을!우리다시 마주하리라! 좀비로 태어나는 너희와 달리혁명의 아들로 태어난 우리는희망찬 광장에서
〚좋은 세상 연구소〛 산하 다섯 번째 강의 주제는 「‘근대 민주 인민’의 탄생, 동학사상, 동학 농민 혁명」이다. 지난 토요일(4/22) 「공익공간 삼각지」에서 열렸다. 강사는 박용규 박사(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로 독립운동사 전공자다. 그는 최시형, 전봉준을 위시해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전한 농민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서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그는 70년 동안 야산에 방치된 독립유공자 이윤재 선생을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데 결정적으로 활동한 참 지식인이다. 글쓴이가 알기로 일본
2010년대를 전후해 유럽 사회에 극우 정치 세력이 노골적으로 준동했다. 게다가 그들에 대한 지지도가 급부상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2013년 창당한 「독일 대안당」(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은 EU 경제체제 해체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등장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2010년 그리스가 IMF 구제금융으로 휘청거렸다. 2011년엔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슬로바키아,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등 유럽 전역은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잔뜩 먹구름
80년대 신자유주의 사조가 유럽 사회를 강타하면서 노동시장 또한 국가 간 장벽이 무너졌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북서유럽 국가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형성돼갔고 동시에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혐오범죄가 증가했다.그뿐만 아니라 청소년 범죄 증가와 함께 청소년 투표율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떨어져 사회문제로 대두하였다. 설상가상으로 80년대엔 극우 정치 세력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북서유럽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켰고 90년대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 온 시대
2022년 12월 8일 제2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약칭 「진실과 화해위」)는 1989년 전교조 사태를 ‘국가폭력’으로 규정했다. 교사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1,527명 교사를 강제 해직시킨 사건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1989년 당시 노태우 군부정권은 교사가 노동조합을 건설한다는 이유로 일부 교사를 ‘빨갱이 교사’로 낙인찍었다. 1989년 3월 충북 제천 제원고(현 제천디지털전자고)로 초임 발령을 받고 일본어를 가르치던 강성호 선생이 대표 사례다. 1989년 5월 28일 전국교
누님은 언제나 밝은 얼굴이었다. 대학생 시절, 동생이 힘들어하면 옆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하며 다독여주고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89년 전교조 해직 당시, 누님은 동생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 든든한 힘이었다.성장하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누님과 다툰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린 시절 군산에서, 삼천포에서,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목포에서,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누님은 언제나 화사했고 든든했으며 엄마처럼 따뜻했다.목포에서 유달초등학교를 다닐 즈음 누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곤 했다. 그 친구들은 누님처럼
내가 김동춘 교수를 처음 만난 때는 1984년 3월이다. 그해 대학 또는 대학원을 졸업한 20대 중반 새내기 교사들 8명이 동시에 구로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김동춘 교수는 이란 논문으로 대학원을 졸업한 상태였고 당시 지리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그 시절 전두환 군부 정권은 석사장교제도를 두어 6개월만 지나면 제대할 수 있었는데도 그는 현역 사병으로 꼬박 2년을 다해 군 복무를 마쳤다. 군 복무 중간 휴가를 나왔을 때 그는 변혁 이론에 뒤처지는 것을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80년대 중후반,
2016년 3월 세기의 대결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있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인공지능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후 알파고는 한국, 중국, 일본,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바둑기사들을 완벽하게 제압했습니다. 바야흐로 21세기 인공지능(AI) 자본주의 시대를 예고했습니다.사람들은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서서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습니다. 2023년 2월 18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인공지능(AI)과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던 뉴욕타임즈 기자는 인공지능(AI)의 어두운 세계를 접한 뒤
서구정복자의 시각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종종 콜럼버스를 ‘좌절하지 않는 탐험가’로 묘사한다. 심지어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영웅’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콜럼버스가 없었다면 오늘의 아메리카도 없었고 역사의 진보도 불가능했다고 강조한다.역사 속 콜럼버스는 자신의 제안을 불신했던 이탈리아, 포르투갈을 떠나 황금과 성경으로 스페인 국왕을 설득했다. 스페인제국 이사벨 여왕은 당시 포르투갈보다 먼저 인도항로를 발견함으로써 세계 제국을 욕망했다. 그리하여 콜럼버스를 지원했는데 콜럼버스는 4차례에 걸쳐 중남미 일대를 침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