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월의 모유수유 1

유별난 행복 육아
 
‘엄마’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 육아.
 
나에게도 그런 육아의 삶이 시작되었다. 육아의 시작을 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잠깐이었고, 이제는 어디서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모를 육아가 4년째 진행 중이다.
 
육아란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가지각색인 모양이다. 육아를 하며 맞닥뜨리는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내가 선택한 길은 좁고 외로웠다. 함께 걷는 이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드문드문 남겨진 발자국을 보며 희미한 동질감을 느낄 뿐이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걷지 않는 소수자의 길이 되었을 뿐이다.
 
육아에도 트렌드가 있는 것일까? 과거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불편한 것이 되고 유별난 것이 되어간다. ‘이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불편함의 문제를 넘어 ‘평범한 다수가 될 것인가 아니면 튀는 소수가 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평소 웬만하면 튀지 않으려는 성격의 나는, 육아 앞에선 180도 다른 걸음을 걷기로 했다. 나는 조금은 유별난 엄마로 살기로 했다.
 

고통과 인내의 모유 수유
 
스물 일곱, 아름답고도 푸르른 시절이었다. 메마른 땅에 서서히 봄이 피어나기 시작한 어느 날 나는 한 가정을 이루었고, 그 해 겨울이 깊어 갈 즈음 한 아이를 출산했다. 나에게 출산은 솔직히 별 일이 아니었다. 모유 수유를 경험하고 보니 그랬다. 말로만 듣던 ‘무통천국‘을 누리며 큰 고통 없이 아이를 출산 했기에, 많이 힘들었냐는 미혼 친구들의 질문에도 할만 했다고 의기양양하게 얘기했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은 바로 모유수유였다.

‘모유 수유? 그거 가슴에 아기 입만 갖다 대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내게, 상상 그 이상의 세상이 시작되었다.
 
▲ 친정집에서 조리하던 때의 아들
병원에서 첫 모유 수유를 할 때는 아이가 잠만 자느라 젖을 빨지 않았고, 조리원에 있을 때는 지친 몸을 쉬느라 밤 수유를 거른 탓에 젖이 늘지 않았다. 조리원을 나온 후 마저 몸조리를 하러 친정집에 간지 며칠이 지났을까, 갑자기 왼쪽 가슴이 돌처럼 딱딱해졌고 조금만 스쳐도 참기 힘든 통증에 괴로웠다.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몹시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가슴은 아팠고 아이는 젖을 잘 빨지 못해 배고파 울어댔다. 급한 대로 남편이 마사지를 해 주었지만 더 고통스럽기만 할 뿐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출산할 때도 지르지 않았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가슴마사지 하는 곳을 찾아가 급한 불은 껐지만, 그때의 유선염으로 인해 모유 양이 현저히 줄게 되었고, 그 후로도 수시로 유선이 막혀 계속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행복하지 않은 엄마였다.
 
하루에 8번 이상 해야 하는 수유 시간이, 나에겐 마치 홀로 어두운 터널을 쉼 없이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독한 터널이었다. 친정 엄마는 힘들어 하는 나를 보며, 단유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 하셨지만 나는 왜인지 모르게 모유 수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 방울이라도 더 모유를 먹이고 싶었다. 어쩌면 본능이 빚어 낸 집착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줄 수 있을 때 주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대로 모유 수유를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을까?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정은진 주주통신원  juj05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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