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지전리에서 붕어빵 파는 조정원(72)씨와 초코의 삶

이북 실향민 자손으로 성남동에 살다가 7년 전 청산에 귀촌

원래 이름은 ‘순덕’이었다

지금도 호적상(반려견 등록명부)에는 ‘순덕’이로 등록이 되어 있다.

혼자 사는 것이 외로웠다. 적적했다. 자식들 다 자라 품 떠난지 오래고 고령이 되어 홀로 된 삶에서 견디기 힘든 것은 ‘고독’이었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유기견 센터를 지난해 4월 찾아갔다. 사람이 오자 막 앞발을 들고 뛰어 달라 들던 개들 사이에 한쪽 귀퉁이에 풀이 죽은 듯 홀로 앉아있는 장모 치와와가 눈에 들어왔다. ‘너도 나처럼 외로운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본능적으로 직감적으로 그 개를 반려견으로 선택했다. 외로운 생명끼리 등 기대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 초코와 함께

그렇게 순덕이는 조정원(72, 청산면 지전리)씨 집에 입양됐다. 그런데 순덕이를 순덕이라 부를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인근 이웃집 아주머니 이름이 순덕이었던 셈이다. 입양한 개한테 ‘순덕’이라고 부르면 자칫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을 급조해 생각했다.

색깔이 초콜렛 색깔이니 ‘초코’로 하자. 그래서 순덕이는 ‘초코’가 되었다. 지난해 4월 4살 때 입양했으니 올해 5살 박이다. 그 작디작은 배에는 수술 자욱이 있었다. 아기 강아지들을 이미 한번 출산했던 흔적이었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적응도 잘 못하는 듯 낑낑댔다. 생고기를 주고 통조림을 사주면서 옥이야 금이야 길렀더니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기 시작했다. 고급진 음식을 주었더니 이제 사료는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꼭 소고기 통조림과 버무려줘야 먹는다.

산책은 필수다. 저녁나절 보청천 강가 산책을 하면 기뻐서 날 뛴다. 그렇게 새 친구를 만났다. 4년 동안 어떤 상처가 깊숙하게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1년 남짓 초코는 치유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일흔 두살 조정원씨 이야기

대전 성남동이 고향이다.

가난했다. 밥 굶는 것은 예사였다. 아침나절 보리밥 한 그릇 먹고 점심은 보통 건너뛰었으며 저녁에는 풀때죽을 해먹었다. 밀가루를 물 조금 끼얹어 보물보물 손으로 만지다 보면 덩어리가 뭉쳐지는데 그것을 물에 넣고 끓이면 죽도 되고 수제비처럼 되기도 했다. 풀때죽이라 불렀다. 아버지는 평안남도 순천시 내남리의 동쪽에 있는 남시 마을에 산 피란민이었다.

625동란당시 영동 용산으로 온 가족이 피난 왔다가 대전 성남동 수용소에서 배급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남동 둑방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15식구가 한주먹거리 배식을 나눠먹곤 했다. 배를 한참 곯았다. 6남매중 차남이었던 그는 뱀풀의 풀씨를 모아서 죽을 써먹기도 하는 등 어렵게 살았다.

성남국민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자동차 정비공장에 취업해서 검은 기름때를 잔뜩 묻혔다. 집에 오면 얼굴과 손이 새까맸다. 당시 깨끗한 성남동 냇가에서 몸을 씻고 들어갔다. 여기까지 오는데 말 못할 사연이 많았다.

그는 7년 전에 연고도 없는 청산면에 정착했다. 동네가 조용하니 마음에 들었다. 대전에서 호떡과 핫도그 팔던 기술로 지전리 희당꿀 사거리 옆에서 붕어빵과 핫도그와 과자를 떼다 판다. 월세 20만 원짜리를 감당하려면 그거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나이도 나이니만큼 악착같이 하기보다 쉬엄쉬엄 하고 있다. 가을 겨울 한철 장사만 한다. 10월부터 시작해 5월이면 장사를 접는다. 욕심내지 않고 6개월만 장사한다. 나머지 봄, 여름은 어찌하니 물으니 ‘먹고 자고 논단다’.

“돈 많이 벌어 떼부자 될 생각도 없고 집세만 내면 되니까 쉬엄쉬엄 해야지. 이웃 집 수리한다면 거기 잠깐 일하면서 용돈 벌이 하는 정도지. 나머지는 그냥 쉬어”

조그만한 모닝 차량이 한 대 있긴 하지만, 기름 값이 아까워 여행은 엄두도 안 낸다. 그냥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좋다. 초코랑 산책하고 청산에서 유유자적 하는 삶이 노년에 찾아온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게 별거 있나? 그냥 이런 게 사는 거지” 방금 구워진 노릇노릇한 붕어빵을 젊은 사람 셋이서 사가면서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한다. 그와 초코가 환하게 웃었다.

 

* 황민호씨는 현재 옥천신문 제작실장을 맡고 있다. 

* 이 글은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황민호 옥천신문 제작실장  minho@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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