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홀로서기 (2)

김반아 시민통신원l승인2019.10.30l수정2019.10.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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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외손녀 한아와 말싸움에서 드물게 내가 이겼다.

4년 전에 미국으로 이주한 후 한국 전통을 살려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딸과 어른에게 공손한 자세를 키워가기를 바라는 내가 약조를 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어로 말하기로 한 것이 4년이 되면서 그 약속이 깨져가고 있다.

▲ 한아 태권도 나무판대기 발차기로 깨기

미국 온 지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되어가자 아이들은 완전히 영어권으로 바뀌어 버렸다. 언어만이 아니라, 생각과 자기표현 방식, 특히 할머니에게 따지고 드는데 그것은 미국식도 아니고 디즈니 영화를 많이 본 결과에다 아버지 문화인 프랑스식이 짬뽕이 된 것 같다.

사돈댁을 포함해서 내가 만난 프랑스인들은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의 영향을 철저하게 받은 듯, 대화를 시작하면 논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식이다. 프랑스식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에서 유래한 것 같다. ‘정 나누기’가 자연스럽게 포함된 일반적 한국식 대화와는 퍽 다르고 한국서 태어나서 18년을 살고 부모 따라 서양에 이민 와서 지금까지 55년을 살은 나에게는 그런 게 아직도 불편하다.

▲ 학교 풍물놀이 (9세)

나의 딸은 캐나다에서 출생으로, 소위 말하는 ‘한국인 2세‘고 손자 손녀는 나로 보면 ’한국인 3세‘다. 그런데 그들은 아버지 쪽이 언어를 생명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이다. 아이들의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는 영국을 바라다보는 프랑스 북쪽 놀만디에 살고 계시고 그쪽 할머니는 언어 교수라 아이들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서 사는 지금도 일 년에 세 번을 프랑스에 가서 그쪽 문화와 언어를 익히게 한다.

그런데 아빠 가문에서 받는 논쟁적 사고방식과 미국에 와서 막강하게 영향을 받아 온 아이들 용 디즈니 영화들은 한아의 인간관 및 처세 방식을 형성해 나가고 있고, 어른에게 공손하라는 한국식을 누르고 우세하다. 한아가 기운과 말로 엄마와 할머니인 나를 몰아 칠 때면 “이 집안의 어른은 할머니!” “엄마는 할머니의 딸!”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 “너희들은 할머니가 사랑하는 손자 손녀!” “이 집안의 규율은 서로에게 Respect!”라고 나는 목청을 높여 데모 노래를 한다.

▲ 한아 작품 "Secret Garden"

다섯 살 때 상하이에서 한국 유치원을 다녔고 4년 전 캘리포니아에 와서도 계속 한국어 영어 이중 언어를 하는 초등학교에 다녀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쭉 한국인 선생님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한아 안에는 한국적인 감성 세계가 또렷하게 형성되어 있다. 거기에다 누가 봐도 한국애라고 보이는 전형적인 한국인 외모를 가졌고 식성도 김치를 비롯해서 모든 한국 음식을 선호하고 유제품과 빵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서 엄마와 나는 정기적으로 LA 한인타운까지 가서 한국 식품을 사다가 먹이는데, 한아가 좋아하는 아침 식사는 잡곡밥에 김 자반을 뿌리고 노란 단무지와 먹는 것이다.

▲ 한아 (2016 새해의 결심)

문제는 나에게 있다. 그만큼 성심성의껏 한국문화를 2세 3세 우리 식구들에게 베풀고 먹이고 있는 나는 자연적으로 그들로부터 한국식의 할머니에 대한 존중과 정감의 관계가 돌아올 것을 바라는데 그게 안 돌아 오면 삭막한 느낌이 들다가 도가 지나면 나도 모르게 “포기!“하는 비명을 지르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 열 살난 한아 안에는 여러 세계가 있는데 그게 온전히 통합이 안 되어서 한국 공간에 있을 때는 완전히 한국애 같이 느껴지던 애가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고 나면 남보다도 더 남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한아 작품 (태극기와 DMZ)

그러던 중, 지난주에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학교에서 “Science Project”가 있어 자기 팀의 두 친구를 우리 집에 불러다가 함께 준비작업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내게 귀띔해주기를 둘 중 한 아이는 남자아이고 한아가 좋아하는 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엄마가 다른 일로 집에 없게 되어 나에게 호스팅 역할이 맞겨졌다. 그래서 그 전날 한아에게 물었다.

“내일 누구 누구 오는 거야?”
“앤디와 재크린”
“아, 한아가 좋아한다는 그 앤디?”
“아이, 할머니, 그냥 친구예요.”
“한아가 좋아하는 친구?”
“할머니, you are 73 years old.”

“Yes, and my heart is young. 한아, 할머니에게는 사랑이 가장 중요해. 더 많이 사랑받고 싶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어. 한아가 할머니한테 사랑을 주지 않고 딱따구리 같이 말할 때면 얼마나 슬픈지 몰라.

“Hana, love is very important to young people. I think I am younger than you in heart, because you some times don’t give me love.” 라고 데카르트 방식으로 따져 말했더니 조용히 듣고 있던 한아 얼굴 전체에 미소가 번졌다.

아, 한아와의 관계에서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면 되겠다!

손녀 관계도 긍정적인 자기표현과 사랑이 비결이다.

▲ 한아와 할머니 2019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반아 시민통신원  vanak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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