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람이 울렸다

알람이 울렸다.

기계식 시계가 처음 등장한 곳은 유럽이었다.

자연력의 도움이 아닌 온전한 인간의 힘으로 만든 시계는 서구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여 산업혁명에 도달했다. 해시계의 그림자는 단절없이 움직인다. 즉 아날로그는 연속적인 물리량이다. 째각거리는 톱니바퀴의 소리는 분절이다. 디지털은 그 분절 分節 을 단위로 삼아 스스로를 정의한다. 

세슘원자의 진동주기는  ‘시간’이라는 변화폭, 혹은 물리적으로 어떻게 정의해야 할 지 모르는 분절에 색을 입혔다. 단장 丹粧 을 마친 시간은 새롭게 태어난다, 이제 시간은 유전자를 보호하는 탈로미어의 친구도 아닌,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는 내재된 생체리듬이라는 순진함을 벗고 인간을 향해 군침을 삼킨다.

시간이 멈추는 세계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변화가 없는 세계와 동일하다. 변화가 없는 세계는 그 시점에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이 멈추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서만 존재한다.

거꾸로 가는 시간은 이론적으로는 존재한다. 그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 는 이론이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계속 무지하다는 전제하에 시간은 거꾸로 흐를 수도 있다.

시간의 속도는 바뀔 수 있다. 그것은 시간의 본질이 ‘변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빠르게 느낀다면 시간은 빠르게, 느리게 느낀다면 시간은 느리게 흐를 것이다. 오로지 이것만이 우리가 시간을 마주하며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다.

출근한다.

당신도 나도 핸드폰의 액정을 수 차례 들여다보거나, 손목에 차고 있는 와치 watch 를 동어반복한다. 혹은 벽에 걸린 예쁜 캐릭터의 미소를 찡그린 얼굴로 쳐다보면서도 머릿속으로 출근에 필요한 남은 시간을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백 여년전에도 그러했었지만 백 년을 더 올라간다면 모두가 그러지 않았을 것이며 다시 백 년을 더 올라간다면 고작 몇 몇만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기는 출근이 지긋지긋한가? 출근할 필요가 없는 평화와 그로 인한 불안이 더 흥미로운가? 상반된 우리의 감정 사이에서 시간은 영원히 존재하며, 우리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 집요함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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