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에 진입하셨습니다.

니트로글리세린의 폭발성은 뛰어났습니다. 노벨은 많은 사람들의 피를 마시며 돈을 벌었지요. 상을 제정한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하지만 본심이 아니었던들 어떻습니까. 세상의 법칙은 댓가를 요구합니다. 상을 향한 열망과 욕망을 바라보며 노벨은 저 세상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겠군요. 니트로 글리세린의 폭발성은 굳어지고 제약된 채로 계속됩니다. 멀쩡했던 산허리에 구멍을 내고 콘크리트를 바릅니다. 목적은 ‘사람’을 태운 자동차가 지나도록 하는 것 뿐이지요. 자연의 법칙이 댓가를 요구합니다. 그 값을 치러야 할 것은 우리 세대입니다. 잠깐,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터널에 진입하셨군요.

폭발이 싫으시다면, 폭발로 부숴가며 차근차근 구멍을 내는 게 옛 기술이라고 알고 계신다면 당신이 옳습니다. 우리는 지렁이를 닮은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TBM Tunnel Boring Machine, 번역하면 터널 굴착 기계 정도가 될까요.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박힌 이빨, 회전하며 직진하는 튼튼한 몸체, 지렁이가 배설물을 뿌려내듯 파낸 흙들은 벨트를 따라 기계의 뒤로 쏟아집니다. 뿌리던 콘크리트를 대신하여 세그먼트 segment 라 불리는 조각들이 파낸 자리를 지지합니다. 상처투성이의 표면대신 매끈한 피부를 가지게 되었군요. 우아함을 자랑하며 이 거대한 기계는 오로지 직진뿐입니다. 목표점에 도착했지만 방향을 틀어 되돌아 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터널이 자꾸 필요해진다면, 거대한 기계도 언젠가는 작고 연약한 지렁이처럼 자유자재로 꿈틀거리며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 저는 그 필요성이 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운전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일순간 시야는 집중됩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협소한 시각’이라고 말했습니다. 학교때 배웠던 플라톤의 ‘동굴’이 지나갑니다. 동굴안은 어쨌든 환합니다. 가끔은 무지개색의 화려함까지 곁들여져 있습니다. 물론 감상할 만한 풍경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바람에 섞여오는 맑은 산의 공기를 마실 여유따위는 당연히 없습니다. 오로지 직진, 직진해야 합니다.

의학은 이것은 터널 비전 tunnel vision이라고 부릅니다. 병(病)아닌 병이라고 불러도 좋겠지요. 우리도 한때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깨치지 못한 지식, 능숙하지 못한 기술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생존을 목표로 직진합니다. 끝이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다행입니다.

곧 터널을 빠져나가시게 됩니다.

당신이 지나온 곳은 산이지만 산이 아니며 바다였지만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죽어버린 선승(禪僧)의 법어(法語)를 흉내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냥 사실입니다. 산을 지나왔지만 산을 보지 못했고, 바다를 건너왔지만 바다를 보지 못했다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실체가 느끼는 거짓된 감각이 가상현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 가상현실은 거짓된 감각의 최종판이겠지요. -

안녕히 가십시오. 터널을 빠져나가면 갑작스레 환한 햇살이 있어 눈이 부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을 감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니르바나 Nirvana의 흔적이 당신께 손을 흔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어지는 남은 출근길,
아직 마음을 놓지 마시길 바랍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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