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행복 육아 5

“좀 아파도 돼!”

출산을 앞두고 있던 내게 남편이 한 말이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에 있어 때로는 부정적 감정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출산을 앞둔 내게 남편이 던진 다섯 글자가 불러일으킨 나비 효과라고나 할까. 그 말로 인해 며칠을 불편한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렸지만 결국은 출산에 대한 모든 생각과 경험을 바꾸었다.

둘째 출산일이 가까운 3월 중순쯤, 마찬가지로 출산을 몇 달 앞둔 아는 동생이 출산에 대해 이모저모를 물어보길래 첫째 때의 경험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무통주사’였다. 무통주사 덕에 별로 힘들지 않게 아기를 낳았노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실제로 그랬었다. 시의적절하게 무통주사를 투여했고, 그 덕에 큰 고통 없이 힘 몇 번 주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남 일 얘기하듯 말했다.

“무통주사 그게 뭐 좋은 거라고 권하는 거야.”

그러더니 그다음 이어진 말이 더 가관이다.

“좀 아파도 돼~”

좀 아파도 된다고? 좀? 남편이 공감 능력이 부족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본인이 겪지 않는 고통이라고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다니. 고통 속에서 출산한 여성들과 출산의 고통에 떨고 있는 모든 임산부에게 뺨 맞을 소리가 아닌가. 그 말을 들은 나는 매우 큰 충격과 상처를 받고 한동안 남편과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고통에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외딴곳에 놓인 기분이었다.

나는 슬픔과 두려움 속에 잠시 침잠해 있다가 문득 무통주사가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출산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검색하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아기를 고통 속에서가 아니라 황홀함 속에서 낳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그것은 바로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추어 둔 진실의 문을 발견하고, 그 문고리를 잡은 듯한 설렘에 마음이 들뜨고 분주해졌다. 그리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동네 도서관을 찾아갔다. 자연주의 출산과 관련된 몇 안 되는 책들을 꺼내어 들고 도서관 책상에 앉아 책에 파고들었다. 만삭인 배로 인해 허리가 아프고 자리가 불편했지만, 운명처럼 찾게 된 문 너머의 세상에서 나는 경이로움과 기쁨, 그리고 희망에 휩싸이게 되었다.

자연주의 출산이란 단순히 제왕절개를 하지 않고 아기를 낳는, 소위 자연분만이라 말하는 출산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주의 출산은 자연분만 시에 통상적으로 행해지는 촉진제, 무통주사, 회음부 절개 등의 의료적 행위를 하지 않고 오직 산모와 태아의 주체적인 능력으로 행해지는 태초의 출산 방법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거의 보기 드문 출산 방법이지만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지극히 당연하게 집에서 이루어졌던 출산 모습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가정 출산은 위험하고 비위생적이며 심하게는 미개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질문을 한 가지 던지고 싶다. 출산은 정말 고통스럽기만 한 것일까?

출산 시 진통이 온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진통을 견뎌낼 수 있게 도와주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출산 시 옥시토신은 무려 평상시의 1,000배 가까운 양이 분비된다고 한다. 신은 인간이 견딜만한 고통을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옥시토신은 자연 마취제와 같으며 아기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하고 몸을 이완시켜 자궁문을 쉽게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황홀한 출산」의 저자는 옥시토신이 황홀한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여성의 몸은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인위적인 마취제와 촉진제를 투여하지 않아도 원활하게 출산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출산은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맹목적으로 믿는 산모 몸 안에서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면 산모가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느낄수록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될수록 옥시토신이 분비되지 못하면서 산소공급도 줄고 혈관이 수축하여 진통이 더 심해지게 된다. 또 두려움과 함께 산모의 진통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바로 ‘촉진제’다. 병원에서는 출산의 빠른 진행을 위해 대개 촉진제를 투여한다. 하지만 이 촉진제의 성분인 피토신은 인위적인 옥시토신으로서 자연스럽게 분비되는 옥시토신의 분비를 막아 긍정적인 흥분과 태아와의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출산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산모는 출산의 주체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출산의 주체이기를 포기하고 그 권리를 모두 병원에 양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심지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병원에서 촉진제를 맞아야 한다고 하면 맞고, 무통주사를 권하면 당연하게 척추에 바늘을 꽂으며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고 하면 또 그렇게 따른다.

나도 똑같이 그럴 수 있었지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는 출산을 거의 10일 남겨두고 그 비밀의 문을 찾게 된 것이다. 은연중에 갖고 있던 출산에 대한 공포, 출산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무지라는 커튼 뒤에 감춰진 문이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경험한 여성들의 감격에 찬 이야기가 이제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차례였다. 그녀들이 말하는 그 신비롭고 황홀한 세계로 금방이라도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렇다. 이제 나는 출산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고 있었다.

담당 의사는 이미 자궁문이 1cm 가까이 열려서 예정일보다 일찍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가 예상한 날이 되었다. 하지만 아기는 여전히 뱃속에서 활발히 움직일 뿐,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갔다. 결국엔 처음 예정일이 되었다. 그래도 아기는 엄마 뱃속이 더 좋은지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매일 매일이 출산예정일이었다. 주위에서는 아직도 아기가 나오지 않았냐며 걱정스레 물었다. ‘나올 때 되면 나오겠죠…’하며 대답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 나도 덩달아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유도분만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물었다. 유도분만! 유도분만이라니. 자연주의 출산을 하기로 마음먹은 내게 본격적으로 현실에 맞서 용기를 내야하는 순간이 왔다. 나는 일부러 병원도 가지 않고(뻔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므로) 그저 아기와의 교감과 태동을 통해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자연적으로 진통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예정일을 넘기고도 8일이 흘렀다. 과연 나는 꿈꾸던 황홀한 출산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 활기찬 새 생명의 울음 소리, 기다리던 둘째 아이를 만나다.


참고문헌 : <황홀한 출산> 엘리자베스 데이비스 & 데브라 파스칼리 보나로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정은진 주주통신원  juj05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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