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에피소드 : 다방 아가씨(1)

이지신 주주통신원l승인2020.08.10l수정2020.08.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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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이나 계곡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줄기에도 여러 갈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옆의 또래들과 명랑하게 재잘거리면서도 한눈을 팔지 않고 앞과 주변을 살피며 제 갈 길을 잘 찾아가는 빠릿빠릿한 물줄기가 있는가 하면, 구석진 곳으로 빗겨 나와 본류에 합류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며 빙빙 겉돌기만 하는 한심한 무리가 있다. 그런 곳은 물이 차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나에게도 인생 늦은 봄 언저리에 그렇게 한심한 시절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지 못하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가 차려 준 조명기구 가게에서 형과 함께 장사를 하던 2~3년간 시절이 그러했다. 그런데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다방 아가씨가 생각난다.

당시 길 건너편 지하에는 유한다방이라는 옛날식 다방이 있었고, 거기에는 아가씨가 세 명이 있었다. 형은 아침에 출근 하면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모닝커피를 주문하곤 했다. 나는 그런 일이 내키지 않았지만 형은 약간의 허세를 부리고 폼 잡는 것을 좋아했다. 아침에 커피를 주문하면 다방 아가씨가 와서 커피를 따르고 재떨이 청소도 해주고 탁자도 깨끗하게 정리해주고 명랑하게 웃으며 짧은 잡담을 나누다 갔다. 다방 아가씨들은 한 군데에서 오래 있지 않고 자주 바뀌는 편이었는데, 거기 다방 아가씨 중 딱 세 명은 지금까지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아가씨들은 셋이서 같은 시기에 함께 일을 하였다. 그 이전이나 이후 아가씨들은 기억나는 게 전혀 없다. 아마 그 아가씨들 있을 때 말고는 모닝커피를 주문한 적이 없었나 보다.

그런데 그 세 아가씨들과는 왜 그런지 마치 한 동네 사람들인 것처럼 유난히 친하게 지냈다. 그 아가씨들은 우리를 보면 늘 웃었고, 겨울이면 눈싸움 하며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제일 연장자는 내게 누나뻘 되었고, 그 다음 아가씨는 내 또래였고, 막내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것으로 보였다. 예쁘기는 둘째가 제일 예뻤지만 첫째도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부드러운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가씨들은 모두 우리에게 아주 호의적이었고, 우리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당시 그 다방의 손님들이 대개는 나이가 많은 축이었던 데 반해서 우리는 아직 20대였으며, 더군다나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아직 때가 타지 않은 풋내기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 그들 중 맏이는 하이힐을 신어서 그런지 나보다 키가 커 보였다. 그녀와 가까이 있을 때 그녀는 나를 내려다봤고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는데, 그녀가 나를 말없이 내려다 볼 때면 마치 눈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탐욕스럽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가능하면 은근히 나와 신체를 접촉하려고 들었다. 둘째는 참 잘 웃었다. 그녀가 내 앞에서 영화배우 같이 예쁜 얼굴로 밝게 웃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막내는 제일 나중에 들어왔다.

어느 날 모닝커피를 시켰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커피 보온병 보따리를 들고서 길을 건너오고 있었다. 그녀는 몸집이 뚱뚱했는데도 정장을 입은 모습이 멋져보였다. 사무실로 들어선 그녀를 가까이서 보니 화장이 필요 없을 듯 하얗고 뽀송뽀송한 얼굴에 살짝 홍조가 있었고,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도톰한 입술은 선명한 분홍색이었다. 그녀는 아기처럼 맑은 얼굴 표정과 여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말할 때는 윗입술이 오른쪽만 더 위로 올라가는데, 입을 벌리고 이야기를 할 때는 입술의 속살까지도 보일 것 같았다. 그녀는 몸집이 뚱뚱한 것처럼 씀씀이도 컸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손에 한참을 둘둘 말라서 그걸로 재떨이를 닦는데, 저렇게 몇 번만 닦았다간 화장지가 거덜 날 것 같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형이 내게 말했다.

“야, 뚱땡이가 너 좋아한다더라.”

형은 그 아가씨를 뚱땡이라고 불렀다. 형의 그 말에 나는 그저 싱겁게 웃었다. 누가 나를 좋아한다니 기분은 좋은데, 내가 뭣 땜에 좋을까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그 당시 자존감이 아주 낮은 상태였다.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희망도 없던 시절이었다. 근데 형의 다음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네게 주고 싶다는데?”

“아니, 그 애가 형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나는 사실 그 아가씨를 아직 성인이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 눈에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직 아가씨란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명랑하고 순진한 덩치 큰 여자 아이일 뿐이었다. 그 아가씨는 집이 이천이라고 했다. 그럼 그 아가씨는 벌써 남자 경험이 있다는 것인가? 몸을 주고 싶다는 말은 상스럽고 천박하게 들릴 법한 표현인데도, 난 왠지 그 말이 상스럽고 천박하게 들리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참 천진스런 아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난 뒤 일인지는 모르겠다. 누구하고 술을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아주 밤늦은 시간에 만취가 된 채로 그 다방 근처를 걷고 있었다. 아마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 아가씨 생각이 났다. 그 아가씨는 왜 날 좋아한다고 했을까? 그걸 갑자기 그 아가씨에게 묻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하에 있는 그 다방으로 내려갔다. 다방 입구는 쇠창살로 잠겨있었다. 그 시절엔 다방 아가씨들이 다방 안에 딸려 있던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 관행이었던 것 같다.

쇠창살을 두드리자 처음 보는 아가씨 두 명이 나타나서 아주 적대적인 태도로 왜 그러냐고 따졌다. 그새 내가 알던 아가씨 세 명 중 두 명이 바뀌었나 보다. 대개는 나중에 온 사람은 먼저 있던 사람에게 후배 취급을 받는 게 세상사 이치였지만, 아마도 뚱땡이는 워낙 나이가 어려서 고참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았다. 그 뚱땡이 아가씨는 맨 나중에 조심스럽게 나와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뒤에서 서성대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드세 보이는 두 아가씨들에게 저 막내하고 할 말이 있다고, 소란 피울 의도는 전혀 없으니 그냥 이야기만 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억센 두 여자는 나더러 어서 나가라며 경찰에 전화를 하니 어쩌니 하였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던 와중에 금방 경찰 한 명이 지하로 내려왔다. 나는 그 경찰에게 잡혀서 수원역 앞 파출소의 구치소에 수감 되었다.

- 계속 -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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