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세 살 젊은이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난 3월 3일 스물세 살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이 부패한 상태로 발견된 걸 보면 며칠 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학교 교사로서 트랜스젠더임을 고백하고 퀴어 축제를 집행했던 녹색당 정치인 김기홍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후일 가능성이 크다.

김기홍 님은 2월 24일 죽기 직전 ‘너무 지쳤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혐오의 시선 앞에서 그는 지쳐 있었다. 그리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 꿋꿋이 살아가고자 고난을 자처했던 삶 또한 소진돼 갔다.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은 현실 앞에서 그의 삶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혐오와 차별, 그리고 거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는 내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 또한 스멀스멀 싹텄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자신을 향한 미움으로 전화돼 자신의 내면을 조금씩 갉아 먹어갔다. 서른여덟 살! 짧은 생을 그렇게 마감했다.

트랜스젠더 김기홍(맨 왼쪽)씨가  2020년 국회 정론관에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녹색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도전을 발표하는 모습.(출처 : 서울 연합,  한겨레 자료사진)
트랜스젠더 김기홍(맨 왼쪽)씨가 2020년 국회 정론관에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녹색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도전을 발표하는 모습.(출처 : 서울 연합, 한겨레 자료사진)

그는 2020년 4‧15 총선 당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가 되었다. 거대한 벽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 그리고 혐오에 맞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바람을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 국회에 들어가면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공무원과 교사도 정당에 가입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그리고 교원노조 관련법 없이 교사들도 일반 노조법으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그러고 난 뒤, 당적을 유지한 채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아마도 김기홍 님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인으로 자유로운 영혼처럼 살아가고자 했던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소박한 꿈을 이루질 못했다. 평범하고 소박한 것조차 누리질 못하는 사회의 거대한 벽 앞에 절망하면서 스스로 ‘너무 지쳤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목숨을 끊었다.

변희수 하사 역시 지난 해 1월 강제 전역 조치를 당했다. 군인권센터의 도움으로 기자회견을 하던 그는 울먹이며 ‘성별 정체성을 떠나 나라를 지키는 성실하고 훌륭한 군인으로 남고 싶다’고 자신의 소망을 밝혔다.

 

<군인으로 죽고 싶다>던 변희수 하사의 생전 기자회견 모습.(출처 : 연합뉴스, 한겨레 신문)
<군인으로 죽고 싶다>던 변희수 하사의 생전 기자회견 모습.(출처 : 연합뉴스, 한겨레 신문)

돌이켜보건대 그 눈물어린 기자회견은 국민 전체를 향한 간절한 호소였던 것 같다. 울먹울먹 거리면서 스물세 살 젊은이가 얼굴을 드러낸 채 기자들 앞에,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기자회견에서 고백했듯이 성전환 수술을 받기 전까지 무수한 고민과 숱한 번민의 시간을 보냈다. 부대 내에서 문제를 공론화하기 전까지 변희수 하사는 성별 정체성 혼란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컸다.

지정된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불쾌감)로 인해 정신적 혼란과 고립감, 그리고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그는 악화되는 우울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대대장, 군단장 등 군지휘관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렸고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부대원들의 따뜻한 지지도 얻었다.

변희수 하사가 2019년 11월 휴가를 내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은 성소수자도 차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그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저로 인해 좀 더 나은 사회, 좀 더 좋은 대한민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작은 소망을 피력한 적이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변희수 하사는 어린 시절부터 오랜 꿈이었던 훌륭한 군인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변 하사는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생활기록부 진로 희망 란에 항상 ‘군인’이라고 썼다.

변 하사는 동료들이 인정했듯이 성실하고 사명감이 투철한 군인이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고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 또한 아주 뛰어났다. 누구보다 군을 사랑하고 사명감이 투철한 젊은이였다.

고 변희수 하사는 <군인>이란 직업에 소명의식이 있었다. 그는 2020년 <한겨레>와 만나 긴 인터뷰를 했다. (출처 : 한겨레 자료 사진)
고 변희수 하사는 <군인>이란 직업에 소명의식이 있었다. 그는 2020년 <한겨레>와 만나 긴 인터뷰를 했다. (출처 : 한겨레 자료 사진)

변 하사는 PD 수첩이나 기자회견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성소수자로서 “성별 정체성을 떠나 훌륭하게 나라를 지키는 성실한 군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심중을 강렬하게 드러냈다. 그러면서 “군대 내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은 환경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국민들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육군은 <군인사법>을 거론하며 지난 해 1월 ‘심신장애 3급’ 판정과 함께 강제전역 조치했다. 앞서 변 하사가 법원에 낸 성별 정정 결정 기일 이후로 심사해 줄 것을 요청한 것조차 육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곧바로 변 하사는 강제전역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인사 소청을 냈지만 지난 해 7월 이 또한 군에서 기각 당했다. 결국 지난 해 8월 변 하사는 대전지방법원에 전역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바로 오늘 첫 변론기일이 잡혀 있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강제로 전역처분 조치를 내린 것이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육군참모총장에게 전역 처분 취소를 권고했다.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역시 “성소수자를 병리현상으로 보는 것은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성 전환 수술 자체가 정신적 ‧ 신체적 장애로 분류될 수 없음에도 이를 강행한 육군에 대해 법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통보했다.

영국 BBC는 변희수 하사 사건이 한국 사회 ‘보수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보도했다. 그러면서 영국, 독일, 프랑스를 비롯해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북서유럽 절대 다수 국가들과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이스라엘, 볼리비아에서는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 세계적으로 19개 국가에서 성전환자 청년들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 역시 130만 병력 가운데 15,000명이 트랜스젠더 장병들이다.

그럼에도 육군과 국방부는 국내법상 성전환자는 군 복무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북한과 대치하는 엄중한 상황이라는 안보환경을 내세우며 낡은 방송을 되풀이했다. 심지어 전투준비태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둥 다양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문제라는 둥 현안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보다 회피했다.

한 마디로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자 낡은 관행에 젖은 무책임한 모습이었다. 그러자 정의당, 민중당, 앰네스티,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여성민우회 등 정당 사회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공대위를 꾸리며 군당국의 무성의한 조치에 분노했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단체는 <변희수의 이름으로, 인권의 이름으로 승리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출처 : 참여연대 제공)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단체는 <변희수의 이름으로, 인권의 이름으로 승리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출처 : 참여연대 제공)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입시나 기업 입사 시험에서 불이익이 주어져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근무와 승진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미숙한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학교 교과서 역시 성소수자 차별은 야만적이며 반인권적임을 강조하고 있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이미 한국 사회는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 이주노동자, 북한이탈주민, 성소수자의 차별이 심각한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것은 2020년 국가인권위에서 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국민 88.5%가 찬성한 것이다.

그런 연유로 2007년 노무현 참여 정부에서 최초로 차별금지법을 정부 입법 발의했다. 이어서 2008년 노회찬 의원 역시 차별금지법을 입법 발의했다. 그러나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되었다.

14년 전부터 일곱 차례나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지만 법안이 철회되거나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돼 왔다. 명백히 입법 권한이 국회의원들에게 있음에도 직무를 유기한 것이자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다.

변희수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의원들 가운데 권인숙 의원(더불어 민주당)은 이렇게 심경을 토로했다. 변하사의 죽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며 "전혀 본 적이 없지만 너무도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말 국회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고백했다.

국방부 앞 변희수 하사 추모게시판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출처 : 한겨레 전광준 기자)
국방부 앞 변희수 하사 추모게시판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출처 : 한겨레 전광준 기자)

다행히 21대 국회에선 장혜영 의원(정의당) 등 10명의 국회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입법 발의해 현재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스물세 살에 목숨을 끊은 변희수 하사는 1998년 6월 11일 생으로 22년 9개월을 다 채우질 못했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맞서 자신이 굳건히 바로 설 수 있도록 눈물로 호소했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각계각층 연대의 손길을 간절히 원했다.

변희수 하사가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 눈물로 기자회견을 감행한 것은 한 순수한 청년이 보여준 용기이자 결단이었다. 그 모습은 하루하루 생과 사를 넘나드는 모든 성소수자의 희망이기도 했다.

사회의 거대한 편견과 차별이라는 암울한 현실과 혐오에 맞서 싸운 한 젊은이의 투쟁은 그만큼 울림이 컸다. 그런 이유로 그의 죽음은 명백히 사회적 타살이다. 그 외로운 죽음 앞에 기성세대로서 한없이 부끄럽다. 차별과 배제, 그리고 혐오가 더 이상 안타까운 목숨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도록 한국 사회의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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