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부터 10일 향수시네마서 옥천여성영화제 진행
특수학교 설립 위한 엄마들의 분투기 ‘학교 가는 길’
페미니즘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연결하는 ‘우리는 매일매일

지난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2021 옥천여성영화제’가 옥천향수시네마 상영관에서 열렸다. 청주YWCA가 주관하고 충청북도가 후원하는 올해 여성영화제는 ‘한국여성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주제로 한국 영화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조명하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을 관객에 선보였다. 옥천여성영화제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주관했다.

‘2021 옥천여성영화제’가 9일, 10일 이틀간 옥천향수시네마에서 열렸다. 첫째날에는 [학교가는 길], 둘째날에는 [우리는 매일 매일]이 상영됐다. 사진은 관객과의 대화 순간을 담았다.
‘2021 옥천여성영화제’가 9일, 10일 이틀간 옥천향수시네마에서 열렸다. 첫째날에는 [학교가는 길], 둘째날에는 [우리는 매일 매일]이 상영됐다. 사진은 관객과의 대화 순간을 담았다.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이 주관한 옥천여성영화제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라는 이번 영화제 타이틀에 맞게 영화 ‘학교 가는 길’(감독 김정인)과 ‘우리는 매일매일’(감독 강유가람)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속도, 다른 시각으로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들인 만큼 관객들은 세대와 직업을 넘어 공감할 수 있었다.

첫날 상영작인 ‘학교 가는 길’은 발달장애인 학부모의 서진학교 설립 분투기를 그렸고, 둘째 날 상영작인 ‘우리는 매일매일’은 과거를 통해 페미니즘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려는 한 인물의 고민을 담았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장애인 자녀를 둔 여성으로서의 엄마라는 존재, 농촌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으로의 삶을 스스로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 장애아 둔 엄마들의 분투 속 사라진 여성으로서의 자아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훌쩍임 소리는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먹먹함을 거두지 못한 관객들의 붉어진 눈시울은 한동안 지속됐다. 사회구조적 모순이 자아낸 욕망과 이기주의를 넘어 특수학교를 설립하려는 과정 속에서 장애아를 둔 어머니이자 한 여성으로서 보여준 투쟁의 기록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역에서도 현재 진행형인 장애인 교육권 보장을 위한 어머니들의 고군분투와 결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은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설립되는 과정을 장애 아동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2017년 9월 열린 주민토론회부터 2020년 3월 학교가 문을 열기까지 5년의 시간을 기록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이 작품이 단순히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사회적인 갈등을 다루는 것보다 당사자인 장애 아동과 그 어머니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관객들은 이은자, 장민희, 정난모, 조부용, 김남연 어머니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단단한 차별과 혐오로부터 오는 고통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99분의 런닝타임이 지나고 영화 속 어머니들과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거나, 장애인 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우리지역 여성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무대 앞에 선 충북장애인부모연대 옥천지회 홍현진 회장,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신봉기 센터장,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임경미 소장, 유해정 인권기록활동가는 이날만큼은 누군가의 부모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인 여성 개인으로서의 존재에 대해 깊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 ‘그래, 엄마야’를 집필한 유해정 활동가는 여성영화제 상영작으로서 영화 ‘학교가는 길’이 갖는 의미를 ‘여성의 연대를 통해 세상이 변한 서사’에서 찾았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단순히 학교를 만들기 위해 투쟁한 것이 아닌, 여성들의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해서 싸운 것이라는 점에서다.

“책을 쓰면서 만났던 장애인 자녀 어머니들 역시 단 한 번도 독립적인 존재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과거에 무슨 잘못을 했었나 반추하며 항상 죄책감 속에서 살고 계십니다. 게다가 양육의 책임 역시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여성영화제에 걸맞은 작품인 이유는 자녀들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게 아닌 여성들이 스스로 삶의 조건을 바꾸고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 자기 옆에서 웃어주고 울어주는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서 더 성장하고 한 고비 한 고비를 넘을 수 있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해정 활동가)

영화 속 어머니들에 깊게 감정이입한 홍현진 회장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의 고된 삶과 개인으로서의 인권이 사라져버린 현실을 관객들에게 가감 없이 공유했다.

“이 영화를 5번이나 봤는데도 볼 때마다 가슴이 절절해지고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어머니가 하신 말처럼 우리 아이가 발달장애인이 아니라면, 남의 도움이 전혀 없다면 줄 수 있는 게 머리카락밖에 없다는 대사가 너무나 공감돼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자녀를 교육하는 데 있어 발달장애아 부모들은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데, 방법을 몰라서 버둥거리고 울면서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럴 때 내 인권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발달장애아를 둔 엄마로써의 삶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겁니다.” (홍현진 회장)

■ “장애인 당사자 뿐 아니라 부모 위한 평생교육도 필요해”

대화는 자연스럽게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와 전공과 설치에 관한 현안으로 이어졌다. 현재 충청북도 남부3군에는 특수학교는 물론 전공과도 없는 실정이다. 뒤늦게 도교육청은 남부3군에 전공과 설치를 위해 청성면 소재 화성폐교를 대상지로 정했지만, 부모들은 지리적 요건 상 해당 부지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위치 재선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공과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서는 필수인 아주 중요한 교육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옥천을 포함한 남부3군은 장애인복지서비스가 굉장히 잘 돼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백년대계인 교육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전공과를 설치한다고 하면서도 각 부처에서 바라보고 있는 관점들이 다르다보니, 그곳을 실제로 이용하고 혜택을 받아야할 이용자 중심의 추진체계가 없는 실정입니다. 특수학교 설치로 시작된 논의가 전공과 설치로 계획이 변경됐고, 이제는 부지의 문제로 진행조차 안 되고 있다는 점은 참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공적 영역에서 수용하고 준비해야하는데 이 모든 것을 부모의 책임으로 던져버리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죠.” (신봉기 센터장)

전공과가 설치된다고 하더라도 이마저도 졸업하게 되면 장애인들의 자립과 독립을 위한 공적교육기관이 없는 현실도 지적됐다. 연속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퇴행이 발생할 수 있는 발달장애의 경우 평생교육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영화 속 어머님들이 독해졌다는 애기를 들으셨다고 한 것처럼, 저도 예전과는 다르게 독해졌더라고요. 저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받아야할 공교육을 단 한 번도 받은 적 없습니다. 정부 복지정책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많은 것들을 하고 있는데 장애인의 평생교육은 이제 와서야 얘기되고 있습니다. 옥천에서도 장애인평생교육을 하고 있는데, 교육자체가 장애인들이 선뜻 들어갈 수 있는 구조와 분위기가 아닙니다. 저도 통합교육을 찬성하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준비가 됐을 때 하는 통합교육은 환영하지만, 말로만 통합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임경미 소장)

장애인 당사자들의 평생교육의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장애인 자녀를 둔 여성 개인으로서 누려야할 평생교육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그러면서 모두가 함께 연대해나갈 때 비로소 여성 개인으로서 인권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나왔다.

“장애인 자녀들의 배움터를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같이 투쟁하고, 평생을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싸우면서 주저앉은 어머니들, 여성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현실을 놓고 보면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짐을 지고 있는 부모들을 위해서 또 하나의 평생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성을 위한, 장애아의 엄마들을 위한 힘을 길러주는 또 다른 지원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홍현진 회장)

“장애인가족들을 지원하면서 체계 속에서 오는 벽이 높아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나의 인권과 주변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부딪히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구조와 체계를 바꾸는 것도 큰 과제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외면하지 않고 서로가 함께 지지해나갈 때 비로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인권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영화계에서 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봉기 센터장)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 원문보기 : http://www.ok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754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안형기 옥천신문 기자  minho@okinews.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