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여의도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및 특별법안 철회촉구 전국행동'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부산에서 버스를 빌려 새벽길을 열며 서울을 향했습니다.

대선을 앞둔 국회 앞의 풍경은 복잡했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현수막과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은 경력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과 영광에서 울산과 경주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서울에서도 종교환경회의 대표를 비롯해서 녹색당 당원들이 함께했습니다.

지난 1월 25일(화) 오후 2시부터 전국의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 주민들이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모여 '고준위핵폐기물 관리 기본계획과 특별법안 철회촉구 전국행동'을 열고, 지역주민들을 희생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한 민주당을 규탄했다. ©장영식
지난 1월 25일(화) 오후 2시부터 전국의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 주민들이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모여 '고준위핵폐기물 관리 기본계획과 특별법안 철회촉구 전국행동'을 열고, 지역주민들을 희생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한 민주당을 규탄했다. ©장영식

문재인 정부가 무책임하게 고준위 핵폐기물을 핵발전소 지역에 보관하라는 기본계획을 세우고, 국회가 특별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인 ‘탈원전 정책’은 걸레가 되었습니다. 핵마피아들의 집요한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탈원전 정책’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던 결과입니다. 정부의 주요 정책이 공격을 받아도 올곧게 대응하지 못한 집권 여당의 무능과 무책임의 결과입니다.

그동안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주민들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했습니다. 핵발전을 하면 ‘핵종’이라는 방사성 물질이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방사성 물질은 기체와 액체로 주민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협했습니다. 핵발전소를 지을 때도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주민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핵발전소가 있으면, 지역이 발전한다고 선전했습니다. 주민들은 그 선전에 속았던 것이 유일한 잘못이었습니다.

월성 핵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황분희 씨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장영식
월성 핵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황분희 씨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장영식

고리에서 처음으로 핵발전소를 지을 때도 “작은 전기 공장 하나가 들어선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전기 공장이 들어서면 지역이 발전한다”라고 회유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그 작은 전기 공장이 지금의 발전소인 줄 알았더라면 목숨을 걸고 막았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았던 지역과 주민들에게 또다시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핵발전소가 있는 곳에 ‘부지 내 저장시설’이라는 이름으로 고준위 핵폐기물 건식저장 시설을 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과 주민들의 무한희생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핵발전소 지역을 핵무덤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월성 핵발전소로부터 17킬로미터 내에 살고 있는 울산시 북구 주민 이현숙 씨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에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장영식
월성 핵발전소로부터 17킬로미터 내에 살고 있는 울산시 북구 주민 이현숙 씨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에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장영식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의견수렴 기간에 제출한 의견도 무시했습니다. 25개 핵발전소 지역과 인근 지역 자치단체, 의회 및 시민단체가 보낸 의견서를 묵살한 것입니다. 전국의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도 정부의 기본 계획을 심의 중단을 촉구했으나 묵살했습니다.

이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4명은 2021년 9월 15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발의했고, 11월 23일 산자위 전체 회의에 상정했습니다. 현재 이 법안은 산자위 법안심사소위 여야간사 협의와 안건 상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특별법안에는 정부의 기본 계획과 맥을 같이하며, 고준위 핵폐기물 ‘부지 내 저장시설 건설’을 법제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빛 핵발전소 대응 호남권공동행동을 대표해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고창군민행동’ 최재일 공동대표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에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최재일 공동대표는 당직자에게 "안철수 후보가 서울대학교를 나왔으니 서울대학교에 고준위 핵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도록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장영식
한빛 핵발전소 대응 호남권공동행동을 대표해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고창군민행동’ 최재일 공동대표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에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최재일 공동대표는 당직자에게 "안철수 후보가 서울대학교를 나왔으니 서울대학교에 고준위 핵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도록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장영식

고준위 핵폐기물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성환 의원은 서울 노원구병 지역의 국회의원입니다. 그는 노원구청장이었던 2012년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된 노원구 월계동 도로에 사용된 방사능 오염 폐 아스팔트를 전면 철거하고, 노원구청 뒤 공영주차장과 마들수영장에 임시보관 중인 각각 235톤과 94톤의 방사능 오염 폐 아스팔트를 보관 용기에 밀봉해 경주 방폐장으로 영구 보관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자기의 지역구에는 방사능이 검출된 위험한 물질을 일도 보관할 수 없다고 펄쩍 뛰던 사람이 방사능 오염 폐 아스팔트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은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과 주민들이 감당하라는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것에 대해 취소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후안무치한 일입니다.

부산 시민을 대표해서 부산에너지정의행동 김현욱 씨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장영식
부산 시민을 대표해서 부산에너지정의행동 김현욱 씨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장영식

5년 전, 대선에서는 탈핵이 주요 의제였습니다. 대부분의 대선 후보들이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동의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더 이상의 핵발전소를 짓지 않는 것에도 동의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5년 전의 시간에서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후퇴하고 있습니다. 유럽이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핵발전이 될 수가 없다고 선언하고, 핵발전소를 폐로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대선 후보들은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곳에 핵발전소와 핵쓰레기장을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깨끗하고 경제적이라는 핵발전을 왜 수도권에서는 발전하지 않을까요. 수도권과 가장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에 짓고, 그곳에 핵쓰레기장도 짓겠다는 것은 핵발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동의이며, 역설입니다. 핵발전소와 핵쓰레기장을 수도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짓겠다는 것은 차별입니다. 지역을 차별하고, 지역 주민들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지역을 배제하고, 지역주민들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핵발전이 청정에너지라면, 핵발전이 가장 값싼 에너지라면 왜 한강변에 핵발전소를 짓지 못하는 걸까. 왜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수도권에 핵쓰레기장을 짓지 못하는 걸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기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 주민들과 송전선로가 지나는 경과지역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영식
핵발전이 청정에너지라면, 핵발전이 가장 값싼 에너지라면 왜 한강변에 핵발전소를 짓지 못하는 걸까. 왜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수도권에 핵쓰레기장을 짓지 못하는 걸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기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 주민들과 송전선로가 지나는 경과지역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영식


50년 전,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때도 주민들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50년이 지난 후에도 묻지 않고 있습니다. 핵발전소가 있는 곳에 10만 년이 넘도록 보관해야 하는 핵쓰레기장을 짓는 것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이며 폭력입니다. 국가폭력입니다.

회색 하늘 아래 괴물 같았던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며,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기 위해 탈원전을 백지화하고,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라는 공약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윤석열 후보에게서 방사능으로 암 투병하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애민과 연민의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사진작가 

 

 

이글은  가톨릭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관련기사 :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69

편집 : 김미경 편집장 

장영식 사진작가  hanion@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