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친구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합니다.
아들 친구 엄마는 우울증으로 돌아가셨다 합니다.
나이가 있어 그런가 내 또래 죽음이 들려옵니다.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멀리 있는 거라 우겨보아도
어느새 죽음은 살금살금 다가와 섬뜩 놀라게 합니다.
친구같이 스스럼없이 느끼기에 죽음은 차갑기만 한데
멀고 먼 나라 여행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합니다.

 

꿈속에서 죽음을 겪었습니다.
남편과 둘이 차를 타고 여행을 갔습니다.
교통사고로 조수석이 큰 쇳덩어리와 부딪쳤습니다.

아주 빠른 순간, 나는 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반쯤 부서진 내 몸은 처참했습니다만
나를 내려다보는 나는 담담했습니다.

 

'아~ 나는 죽었구나'
생각하는 순간 다른 장소에 있었습니다.
끔찍한 육신과 달리 전혀 손상되지 않은 나는
빛 하나 없는 검은 상자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여기가 어딜까~ 궁금했습니다.
남편은 어디 있지? 깜깜한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남편이 내 옆에 없는 걸 보니 나만 죽었나 봅니다.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평소 걱정하는 엄마는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나 없이 살 엄마를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자식이 우선인 것이 인간 본능인가 봅니다.
엄마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불쌍했습니다.
엄마 없이 서러워서 어찌 살꼬 ~~~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비 오는 날 제주도 산굼부리에서
비 오는 날 제주도 산굼부리에서

 

그것도 아주 잠시였습니다.
상자 문 하나가 천천히 열렸습니다.
문밖 세상은 밝은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몸이 저절로 빛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빛으로 나란히 이어지는 길은 환하면서도
뿌연 안개로 주변이 아득하게 보였습니다.
얼굴에 부딪히는 촉촉한 바람을 맞았습니다.
바람 속에는 수많은 물방울이 있었습니다.


빛을 머금고 공중을 떠다니는
보석 같은 물방울 하나하나 속으로
모든 기억 조각들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조각들은 순간순간 과거를 되살렸습니다.
좋은 기억도 추한 기억도 모두 드러났습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추한 기억은 그 본질을 알게 되어 부끄러웠습니다.
바람은 힘을 실어 물방울을 내 뒤로 보냈습니다.
이전 삶의 기억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엄마, 남편 생각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빛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갈수록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머릿속은 하얗게 지워져 리셋되고 있었습니다.
지나온 세상에... 아쉬움도 미련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낯섦도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예전의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당연한 순서인 듯
호기심에 가득 차 새로운 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날듯이 가볍게 걷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아~ 꿈이네,... 죽지 않았구나.
아이들하고 엄마, 남편 모두 옆에 있구나.
꿈에서는 울지 않았는데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괜히 아이들이 불쌍해서 베개가 젖도록 울었습니다.
꿈에선 물 흐르듯, 생명이 샘솟듯 자연스런 죽음이

현실에서는 슬프고, 무섭고,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엄마 없는 아이들과 남겨질 엄마와 남편을 생각하니
피할 수 있다면 되도록 죽음에서 피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닥쳐올 죽음은 소풍 가듯 가비얍게 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을 만날 즐거운 기대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 생에겐 냉정한 새 세상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