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싶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와 캘리포니아에서 재회하길 바랐기에 캘리포니아로 지정해 직장을 알아보았다. 주변 지인들은 마치 잡을 수 없는 꿈을 원하는 돈키호테 같은 낭만주의자가 아닌가 하고 나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했다. 부정적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하여 머리를 비우고 ‘생각하지 말고 한번 해보자’라는 막무가내 추진력으로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다.

감사하게도 꿈은 하나씩 척척 이루어졌다. 졸업과 동시에 캘리포니아에 취직했다. 6개월 만에 미국 취업비자도 받았다. 남자친구도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취직했다. 100%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이라 캘리포니아에서 같이 살 수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술술 풀렸다.  LA행 비행기를 탔을 때,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하늘빛 같은 미래가 나에게도 펼쳐질 수 있을까?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LA 공항에서 느낀 분위기는 ‘혼돈’ 그 자체였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갈 길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며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다. 오래된 공항이라 인천공항에 비해 허름하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났다. 그럼에도 새로운 환경이 재밌게 느껴졌다. 시들시들한 야자수가 곳곳에 보였다. 하늘은 맑았고, 날씨는 따듯했다. LA에서 일하고 있던 남자친구가 공항에 마중 나와 덜 낯설게 느껴졌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장거리 연애는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우리는 새 출발을 기대하며 숙소로 향했다.

2개월 머물렀던 숙소 
2개월 머물렀던 숙소 

첫 숙소는 회사가 마련했다. 외국 혹은 멀리서 온 직원들은 ‘재배치 패키지’ 혜택을 받는다. 이 패키지엔 LA행 비행기 티켓, 2개월 무료 숙소, 1개월 차 무상 대여 그리고 2개월 뒤 새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가이드 지원도 포함되어있다. 이 지역을 잘 모르는 신입사원들이 최대한 편하게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마련한 패키지다. 세세하게 배려해준 회사에 고맙고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들었다. 따듯한 햇빛이 들어오는 세련된 숙소를 왔다 갔다 하며 이게 정말 꿈인가 생신가 했다.

회사에서 구해준 숙소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가구, 세탁기, 티브이, 주방용품 등... 추가로 살 것이 거의 없었다. 동네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주민들과 푸른 잔디를 뛰어노는 다람쥐들이 보였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만나는 사람은 무척 친절했기에 마치 컴퓨터 게임에 나오는 이상적 동네 같았다.

LA에 도착한 다음 날, 남자친구와 ‘락 콘서트’에 갔다. 입구에서 경찰과 보안관들이 소지품과 가방을 검사했다. 통과된 사람만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총기 소지를 염려하여 엄격하게 검사하는 것 같았다. 콘서트는 미대륙이란 걸 실감할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낮 2시부터 밤 11시까지 야외 콘서트장 5곳에선 다양한 뮤지션이 공연했다.

콘서트장
콘서트장

콘서트장에선 다양하고 과감하게 옷을 입은 청중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름 캐나다에서 4년을 생활하면서 과감한 옷차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LA는 차원이 달랐다. 망사로만 이루어진 탑을 입고 가슴만 간당간당하게 가린 분들, 비키니 탑만 입은 분들, 씨쓰루 옷을 입고 과감히 엉덩이를 노출한 분들.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게이들이 많은 도시라서 다양한 게이 패션도 볼 수 있었다. 타이트하게 쫙 달라붙은 스키니 혹은 나팔바지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배꼽티에 화사한 화장을 한 게이분들이 긴 기럭지를 자랑하듯 콘서트장을 활보했다. 얼굴과 몸은 딱 봐도 남자인데 차림새와 걸음걸이가 여성스럽고 하늘하늘 섹시해 마치 새로운 인종을 보는 듯했다. 이런 차림 외에도 화려한 색감의 옷, 특이한 스타일 옷, 과감한 타투 혹은 피어싱, 파격적인 머리 스타일과 화장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패션 가운데 우리의 깔끔한 한국식 옷차림은 정말 재미없어 보였고 전혀 LA답지 않아 이방인이 된 듯했다.

낮 시간대 콘서트는 평화로웠다. 잔디에 누워 음악을 듣기도 하고, 스낵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푸른 잔디에 누워 음악을 듣고 햇빛을 만끽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저녁이 되자 현대 락의 거장들이 무대에 올랐다. ‘Arctic Monkey’와 ‘Cigarette after sex’가 노래를 불렀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다. 낮에 느꼈던 차분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흥분한 청중들은 일어나서 방방 뛰며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환호했다. 우리도 뜨거운 열기에 취해 같이 방방 뛰며 콘서트를 즐겼다. 콘서트가 끝나기 전 미리 콘서트장을 빠져나왔다. 콘서트가 끝나면 택시를 잡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LA 도시의 밤은 콘서트장과 상반되게 음산하고 조용했다. 길에서 행인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노숙자들만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노숙자들은 다리 밑이나 길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마트에서 사용하는 카트를 훔쳤는지 카트에 본인의 삶을 몽땅 넣어 다녔다. 어떤 골목을 지나가니 오줌 냄새가 찌릿하게 났다. 콘서트에서 느꼈던 흥은 완전히 사라지고 긴장된 마음에 남자친구 옆에 바짝 붙어서 갔다. 남자친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1년 정도 살아서 이런 모습에 익숙한지, 이게 미국 도시의 양면성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마침내 택시를 잡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숙소로 향했다.

캘리포니아는 내가 꿈에 그리던 아름답고 이상적인 곳만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밤이 된 도시는 마치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시를 연상케 했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방금 본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씁쓸하면서 안타까웠다. 아름다운 캘리포니아에는 어두운 면도 존재하는 것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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