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냥꾼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때가 내 나이 사십대 초반의 일이었으니 그야말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던 시기였다. 세상을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했고 인생사 돌아가는 이치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여기던 때였다. 그러다가 문득 그 가공할 존재에 대해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그래! 그 놈 - 그 년, 혹은 그 연놈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이나 '그 존재'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편의상 그 놈이라고 부른다 - 하다못해 그 놈의 몽타주라도 그려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야말로 장님이 앞도 못 본채 손으로 더듬어가며 코끼리를 그려보겠다는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악마사냥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kr.battle.net에서 인용

나는 그 놈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스스로 먹잇감이 되기를 자처했고 인간 마루타가 되고자 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며 놈은 나의 주위를 빙빙 맴돌며 기회를 노리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놈에게 포획되었다. 나는 정신 차려 놈의 작태를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놈은 나의 두개골에 투명 파이프를 꽂았는데 그것은 모든 고체나 모든 물질을 투과하는 투과성 파이프인 듯했다. 나의 두개골에 있는 골수가 놈이 꽂은 파이프를 통해 빠져나가 놈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골수가 빠져나가는 동안 심한 정신적 고통을 느꼈으며 세상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심신이 박약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기를 한동안 지속하더니 놈은 나의 골수가 나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상태가 되자 놈의 파이프를 서서히 거둬들였다. 놈의 파이프가 거둬지자 나는 비로소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몇 년간 어두운 감옥에서 살다가 석방되어 맑은 공기를 마시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나의 골수는 이미 상당량이 빠져나간 뒤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나의 골수가 일정량 이상으로 다시 찰 때까지 놈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놈의 생명력은 인간의 골수를 흡입하는 것으로 연명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골수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다시는 자처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것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기에 나는 그 이후 다시는 인간 사냥꾼에 결연히 맞서는 무모함을 감행하지 않고자 했다. 대신 나는 놈이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골수를 흡입하는지 알고 싶었다. 인간이 어떤 정신 상태나 어떤 육체적 상태에 있을 때 인간을 포획하여 골수를 빼먹는 것일까? 인간의 골수를 빼먹는 어떤 주기나 사이클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주기가 있다면 그 주기는 인간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주기일까? 아니면 놈의 상태에 따라 바뀌는 주기일까? 나는 그것을 알기위해 할 수 없이 또 한 번 마루타가 되어야 했다. 이왕 시작한 도전이라면 해 볼 때까지는 해봐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는가?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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