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생명헌장’을 전하러 가는 ‘동방박사’

걷고 있던 2019년 2월 무렵 필자는 가톨릭평론(20호)의 원고청탁을 받았다. ‘지구생명헌장’을 전하러 가는 ‘동방박사’-생명·탈핵 실크로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이 시기 순례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사진을 곁들여 소개한다.



여기는 인도. 그저께 6차선 고가도로 한쪽 켠의 앞쪽에서 소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자세히 보니 그냥 어슬렁거리는 게 아니라 길을 건너려 끊임없이 시도하는 중이다. 건너려다 뒤쪽에서 차들 경적소리가 들리면 움츠러들고 해서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러기를 10분쯤 했을까 마침 차들이 지나가지 않는 낌새를 채고는 뒤를 보지도 않고 과감하게 횡단을 시도한다. 

소 한마리가 주인도 없이 어슬렁거리며 길을 건너려 하고 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 사이에 온 차 한 대는 소를 피해서 차선을 바꾼다. 소는 중앙분리차선까지 용케 진입했다. 그렇게 중앙분리차선을 따라 걷다가 건너편으로 횡단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쉽다. 마주 오는 차량만 보고 피하면 되니까. 마침내 건너편까지 갔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이다. 고가도로를 다 내려가더니 방향을 180도로 꺾어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원래 이 소는 고가도로 건너편 아래쪽 동네에 볼일이 있었던 거다. 그 걸어가는 걸음이 득의양양하다. 

몇 번 시도 끝에 길을 건넌 후 득의양양한 모습. 방향을 꺾어서 내려가는 그 다음 장면이 더욱 감탄스럽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몇 번 시도 끝에 길을 건넌 후 득의양양한 모습. 방향을 꺾어서 내려가는 그 다음 장면이 더욱 감탄스럽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지금은 2019년 2월 초, 인도 뉴델리 북측 200km쯤 되는 곳이다. 걷는 도중 낭보가 왔다. 달라이라마 성하의 기관청에서 친견 날짜가 잡혔다는 회신이 온 것이다. 2월 25일이다. 기쁘기도 하고 심리적 긴장이 풀리기도 한다. 길을 건너던 그 소가 무사히 원하던 길로 접어든 것 같은 기분이다.

수원대학교 사학 분쟁으로 해직당해 법정다툼을 벌이던 중, 2년간 26개국 1만 1000km를 순례하며 생명·탈핵 메시지를 전하는 ‘생명·탈핵 실크로드’를 기획했다(이후 30개국 9000km으로 조정). 탈핵을 염원하는 이들과 함께 순례하며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종교계가 중심이 된 탈핵 국제기구 설립을 요청하는 것을 목표로 바티칸까지 걸어가 2019년 4월 21일 부활절에 돌아오는 계획을 세웠다. 2017년 5월 부처님 오신 날 서울을 떠나 부산을 거쳐 일본(히로시마-나가사키), 대만(타이페이-카오슝), 홍콩, 베트남,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를 거쳐 인도와 네팔의 불교 8대 성지를 걸은 게 모두 4,000여km였다. 2018년 3월에 복직하게 되어 잠시 순례를 멈추고 두 학기를 보낸 후, 2018년 12월, 다시 생명·탈핵 순례를 재개했다.

많이 걸어본 이는 아시겠지만 걸으면 많은 생각이 샘솟는다. 발바닥이 자극되면 머리 쪽도 맑아지나 보다.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지만 지난 일도 떠오른다. 특히 평범한 교수로 지내던 필자가 이런 ‘거창한’ 순례를 하기까지 몇몇 장면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장면1

때는 2008년 봄. 이명박 대통령의 운하 강행에 분기탱천하여 운하반대교수모임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 동네 뒷산에 오른 적이 있다. 300m쯤 되는 봉우리에 오르니 어느 노인네가 쌀쌀한 날씨를 무릅쓰고 두꺼운 파카를 입고 앉아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지가 대통령이면 대통령이지, 어딜 산맥을 뚫고서 뱃길을 만든다고?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야!” 올라오는 사람마다 땀을 식히는 시간 동안은 정상에서 꼼짝없이 노인네의 설교를 들어야 한다. 낌새를 보아하니 오전 일찍이 올라온 듯한데, 해가 지도록 그 자리에 있을 기세다. 그 작전에 탄복하며 집에 와 자리에 누우니 그 영감이 비로소 뜨겁게 다가온다. 그건 작전이 아니라 열정이라고. 그 열정에 필자도 전염된 걸까.

장면2

“아니, 유엔기구가 그럴 수가!”

때는 2009년 8월, 한국에 온 UNEP(유엔환경계획)의 아킴 슈타이너 사무총장을 따라온 전문가들에게 운하반대교수모임의 임원들은 4대강 사업의 부당한 근거들을 제시하고는 UNEP가 이를 비판해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웬걸, 그들은 4대강 사업이 녹색성장의 모범사례라는 리포트를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음은 물론이다.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뭇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과 치명적인 수질 악화가 예견되지 않았단 말인가.

장면3

때는 2011년 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직후 필자의 4대강 반대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해주는 공대 교수 두 분과 식사하면서 탈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놀랍게도 이 두 분은 정색하면서 “대안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분들 수학도 모르나? 같은 사건이 3번 발생하면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걸. 4대강은 반대하면서 그보다 훨씬 치명적인 핵발전소는 대안이 없다니. 이 사람들 제정신인가?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장면4

그 두 분에게 받은 충격으로 바로 그해 여름방학에 탈핵견학 교수팀을 조직하여 독일 도시를 돌아다니던 중 종교계가 독일 탈핵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모두. 그러면서 생긴 의문. ‘바티칸은 왜 침묵하나?’

장면5

때는 2013년 여름. 부산 고리에서부터 동해안 길을 따라 어느 교수 한 사람이 ‘핵발전소 이제 그만’이라는 슬로건으로 걷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원대학교 전자정보통신공학부 성원기 교수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쳐다본다. 그리고 왜 걷냐고 묻는다. 그러면 사연을 이야기하고 공감한다. 저렇게도 운동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를 동해안에서 만난 그때부터 필자도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절집에서 절집으로 걸어 다니면서 스님들께 탈핵에 대해 말씀드렸다.

흉내라기보다는 필자의 안에서 걷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는 게 적절하다. 4년 전쯤 한겨레21의 프리랜서 기자가 필자에게 왜 이렇게 열심히 싸우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필자는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게 편하냐, 화를 참는 게 편하냐”고 되물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595.html

장면6

때는 2016년 여름. 탈핵순례를 하던 중 김제 원평이라는 곳에 들렀을 때 동네 분들이 거친 말투로 묻는다.

“그럼 전기는요?”

어디서 많이 듣던 말투다. 잘 됐다 싶어 되받았다.

“우리나라에 핵발전소가 25개쯤 되는 건 알고 계시죠?”

“……”

“그게 전기 공급하는 비중이 몇 퍼센트쯤 되는지 아세요?”

“……”

말이 없다.

“기껏해야 나라 전기의 30%밖에 공급하지 못하죠. 평소에는 25% 정도밖에 못 합니다! 고작 30%지요!”

“네? 그것밖에 안 된다고요?”

“그동안 이상한 홍보에 속으신 겁니다.”

“……”

“몇 년 전에 옆 동네 부안에서 핵폐기장 반대를 심하게 한 것 기억나시죠?”

“네.”

“그런 나쁜 것을 계속 배출하는 게 핵발전소라는 걸 알고 계시죠? 우리 세대에 좀 편하게 살자고 자식, 손자 세대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아닙니까?”

“……”

“인륜 파괴입니다.”

“……”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입니다. 어쩌자고 모른 체하십니까?”

“…… 맞네요, 더는 지으면 안 되겠네요.”

이쯤 하자 그는 항복했다. 묻어두었던 양심이 살아난 것일까.

필자가 해직시절 걸었던 국내의 탈핵순례코스. 이때 김제 원평에서 동네분들을 만났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걸으면서 더욱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금 후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본보기를 보이는 것 아닌가? 아이들에게 자식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례를 우리가 보여주는 것 아닌가? 정말 몹쓸 짓을 하는 것 아닌가?’ 

있을 수 없는 금기가 버젓이 벌어졌고, 우리는 그것을 외면한다. 독일인들이 일찌감치 그런 윤리적 문제를 간파하였기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직후 ‘17인의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탈핵을 결단한 것 아니겠는가?

장면7

때는 2017년 초. 생명·탈핵 실크로드 예비 답사 차 타이페이에서 만난 추퀘이티엔(周桂田) 대만국립대학교 교수는 대만은 탈핵을 추진하지만, 중국의 핵발전소가 위협적이라는 걱정을 말했다. 필자는 그건 한국에게도 마찬가지 위협이고 동북아시아 전체에도 마찬가지라고 동의했다. 두 사람 모두 지구촌 전체가 탈핵 추세가 만들어져야 중국에도 탈핵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모았다.

장면8

2019년 2월 초 여기는 인도. 한 달 전 순례를 재개해서 뉴델리 부근까지 500km쯤 걸은 며칠 전, 걸어가는 필자를 보고 젊은 정부 관료가 호기심으로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걸어온 사연에 감동했던지 그는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어머니가 손수 싸준 도시락을 필자에게 전달하였고 자신의 청사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9년1월 뉴델리 근교를 지날 때  만난 인도의 젊은 정부관료 Deepak. 그는 한국을 무척 좋아했다.
2019년1월 뉴델리 근교를 지날 때 만난 인도의 젊은 정부관료 Deepak. 그는 한국을 무척 좋아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 사이에 그가 생명헌장의 내용을 포함하여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알고, 필자는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우리는 또 다른 유엔이 필요하다. 지구는 하나뿐이다. 현재의 유엔만으로는 너무 위험하다. 옷감도 씨줄과 날줄로 짜듯이 지구도 그렇게 보호해야 한다.” 그는 단박에 이해하며 맞장구친다. 이역만리 떨어진 사람들이 순식간에 동감하고 가치에 관한 판단을 공감하는 시대가 되었다.

Deepak의 초청을 받아 간 자신의 근무청사의 마당 에서 짧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도관료 Deepak의 초청을 받아 간 자신의 근무청사의 마당 에서 짧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기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지는 순간 지구촌에는 커다란 위기관리 수요가 발생하였다. 1979년 스리마일, 1986년 체르노빌에 이은 3번째 사고라는 것은 앞으로도 사고가 반복될 수 있음을 말한다. 450여 개 핵발전소가 지진 같은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구하는 열망들이 가득함에도 이에 대응하는 체계적 의사결정체제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8년이 지나도록. 이상하기 짝이 없다.

핵발전소 문제의 특징은 소수의 나라만 잘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위험의 자본화’ 같은 풍조가 만연해 분산된 소수의 힘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독일의 헤르만 쉐어(Hermann Scheer)라는 저명한 탈핵인사가 핵심을 짚었다. “만약에 태양광이 중앙집중식 에너지원이고 핵발전소가 분산형 에너지원이라면 그 사람들이 서슴없이 태양광을 택했을 것”이라고. 그런 기술적이고 조직적이고 자본투하적인 위험이 지구촌을 볼모로 잡고 있다.

국제적 장치도 문제다. UNEP가 환경을 파괴하는 한국 정부의 4대강 토목공사에 동조한 것처럼, UN 기능이 지구를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선의로 출발했지만, 한편으로는 지구 파괴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현재의 지구촌은 대의민주주의가 고장난 상태에서 대표 역할을 하는 국가가 많다. 이런 정부들이 모인 UN에게 지구와 인류의 운명을 송두리째 맡겨둘 수는 없다.

사람이 두 발로 걷듯, 가정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듯이, 옷감도 씨줄과 날줄로 짜듯이 지구촌도 두 기둥이 필요한 게 아닌가. 보완적 견제구도라야 안전하다. 가령 한 국가의 권력체제도 삼권분립이 기본이다. 하지만 지구촌은 지방 정부들의 연합만 있는 형국이고 미국이 그 ‘골목대장’이다. 미국이 2016년 파리기후협약을 뭉개는 일도 버젓이 벌어지는 것이 이해된다. 2차대전 후 선의의 리더일 때와는 딴판이다. ‘견제되지 않은 권력은 남용된다’는 이치대로다. 다행히 지금은 지구촌 민중의 에너지를 결집할 수 있는 초연결 시대다.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에는 수십억 명이 접속한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 합리적 체제를 만드는 데 쓸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다.

물꼬는 종교계가 틀 수 있다.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므로 이 주제에 관한 한 소통과 연대가 어렵지 않다. 몇몇 고등종교만 적극성을 갖고 손을 잡아도 어렵지 않게 그러한 일을 해낼 수 있다. 또 지구촌에는 독자적 의사결정체제를 갖추지 못한 나라도 많다. 이런 나라는 UN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지만 종교로 접근하기는 쉬울 수 있다. 새로이 구성될 체제는 UN이 못하는 일을 보완하면서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교회에 간 기억이 난다. 으레 나오는 먹을 것을 기대하고 연극 구경을 하노라면 ‘동방박사 세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필자의 어린 눈에는 그 동방박사 이야기가 솔깃했다. ‘밤에 별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먼 거리를 따라 걸었다'니 어린 생각에도 낭만적으로 보였던 것일까? 수십 년이 지난 2015년 말 크리스마스 때 그 동방박사가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바티칸의 성탄절과 부활절을 보고 있으니 지구호의 커다란 결점이 필자를 자극한다. 떠나기로 했다. 아니 떠나지 않을 수 없다.

떠나는 이유를 만인에게 알리고 공명하려고 ‘지구생명헌장’부터 만들었다. 미국은 나라를 세우기 전에 헌법이라는 기둥부터 만들었다. 지금 지구도 마찬가지다. 생명공동체를 보살피는 기둥을 먼저 세워야 한다.

동방박사는 긴 순례 끝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함께했다. 필자의 순례도 또 다른 ‘아기 예수’의 탄생을 보았다는 ‘솔깃한 이야기’로 전해지고 싶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원영 주주  leewy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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