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하여 1학기 강의를 다시 맡다.

다람살라 성전 주변은 이런 설산이 둘러싸고 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람살라 성전 주변은 이런 설산이 둘러싸고 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숙소 바깥으로 보이는 히말라야의 모습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숙소 바깥으로 보이는 히말라야의 모습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알현 다음 날 일행 4인이 히말라야 산등성이를 타고 산보하기로 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알현 다음 날 일행 4인이 히말라야 산등성이를 타고 산보하기로 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산악마을의 좁은 길은 조랑말을 좋아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산악마을의 좁은 길은 조랑말을 좋아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람살라 성전 마을의 모습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람살라 성전 마을의 모습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인도 남부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만났다.  K- Pop을 좋아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인도 남부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만났다.  K- Pop을 좋아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환호하는 학생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환호하는 학생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4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4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말라야 산등성이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3인.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말라야 산등성이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3인.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점심을 먹고 난 후 다시 춘향가 중의 '갈까 부다' 한 대목을 뽑는 무심거사. 이 곡을 듣고 난 유영자 선생은 눈물을 보였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점심을 먹고 난 후 다시 춘향가 중의 '갈까 부다' 한 대목을 뽑는 무심거사. 이 곡을 듣고 난 유영자 선생은 눈물을 보였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엿새 동안 묵은 Varuni 숙소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엿새 동안 묵은 Varuni 숙소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달라이라마성하의 한국 제자인 청전스님(가운데)을 찾아뵈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달라이라마성하의 한국 제자인 청전스님(가운데)을 찾아뵈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청전스님의 거처에서 내려다본 다람살라 시가지 모습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청전스님의 거처에서 내려다본 다람살라 시가지 모습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뉴델리에서 만난 한국식당의 게시판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뉴델리에서 만난 한국식당의 게시판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뉴델리에 있는 간디 박물관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뉴델리에 있는 간디 박물관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인도 파키스탄 분쟁 때문에 다람살라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 별수 없이 뉴델리까지 하루 밤낮을 걸려 직접 가야 했다. 티켓은 다시 발매해야 한다. 덕분에 뉴델리 도착 후 간디 박물관을 찬찬히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여기에서 간디가 일명 '소금 행진(Salt March)'이라는 비폭력 행진 캠페인을 벌였다는 사진기록을 보았다. 

위키백과의 설명을 요약하면,  위키백과: 소금 행진

소금행진의 사진기록1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소금행진의 사진기록1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소금 행진(영어: Salt March) 또는 소금 사트야그라하(영어: Salt Satyagraha)는 영국 식민지 하의 인도에서 소금세 폐지를 주장하며 일어난 비폭력적 시민 불복종 행진(사트야그라하)이다. 1930년 3월 12일에서 4월 6일까지 마하트마 간디는 소금 사트야그라하에 참여한 60,000명쯤되는 사람들을 이끌고 해안 마을까지 240마일(390 킬로미터)을 걸었다. 1930년 3월 12일 영국의 소금 독점에 대한 세금 저항과 비폭력 행진 캠페인으로시작하여 인도 독립운동에 자극을 주었고, 이때문에 세계 관심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79명이 간디와 행진을 시작하였는데 간디와 많은 다른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소금을 생산하는 24일 행진을 계속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인도인들이 그 길을 따라 합류했다. 소금 사트야그라하 선거 운동은 인도의 주권과 자기 통치에 대한 세계와 영국의 태도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많은 인도인들이 처음으로 싸움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소금 행진의 사진기록2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소금 행진의 사진기록2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걸어가는 동안에 많은 이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 뜻이 모여서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냈다는 대목과 사진들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뜻을 모으는 방식은 함께 걷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는 이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처음 79명이 걷던 것이 24일 후에는 6만 명으로 불어났고 독립운동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니, 놀라운 사건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도 희망을 품는다. 생명탈핵실크로드도, 출발은 100인위원회의 결성으로 걷기 시작했지만, 언젠가 100만 인의 뜻이 모이고, 결국에는 지구를 위험으로부터 구출하는 결실을 볼 수 있으리라는.

인도 젊은이들의 길거리 공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인도 젊은이들의 길거리 공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시 귀국 직후 광화문에서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시 귀국 직후 광화문에서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시 귀국했다. 대학에 복직하였기에 다시 귀국해서 1학기 강의를 마친 후 다시 출발한다.

불교닷컴에서 그 소식을 자세히 보도했다.
불교닷컴: 이원영 교수 생명탈핵실크로드 1차 5,000km 순례 회향

귀국후 지인들과 후쿠시마8주기(2019년 3월) 행진에도 참가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귀국후 지인들과 후쿠시마8주기(2019년 3월) 행진에도 참가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원영 주주  leewy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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