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를 알아야 사람이다. 사람을 찾습니다. -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볼라치면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워 가끔은 마음이 어수선하다. 내가 정말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내가 속한 사회가 사람 사는 사회가 맞는지 회의가 들면서 심한 정체성 위기에 지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대중 전달 매체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세태 만상에는 똑똑해서 성공했다는 사람도 많고 혹 아직도 출세를 향해 노심초사 노력하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딱히 사람 모습 그 자체는 찾기 힘 드는 것 같아 살짝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신신애 가수 겸 배우의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를 결코 지나칠 수 없으리라.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는 표현은 명언 중 명언이라는 의견에 단호하게 부정할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1993년 KBS 가요 톱10의 순위에 오르는 등 널리 유행하며 제법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때의 세상 풍경을 풍자한 인기 가요였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꽤 괜찮은 가요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잘난 대로 - 못난 대로’ 살게 내버려두는 사회는 그렇게 썩 좋은 사회는 아니다. 인간 상실의 시대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온 국민의 힘찬 대행진으로 이어져 인간 회복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요사이 특히 국가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여기저기 나서서 설쳐 대는 꼬락서니를 구경하자니 괜한 심사가 뒤틀린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서 표적이 될 수 있겠지만 영향력의 측면에서 사회적 책임도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또 우리가 흔히 하는 이야기로 국가의 녹(祿)을 먹는 사람인데 납세자인 국민 위에 함부로 군림하려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은 금물이다. 알고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정말 이 세상에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참 엉뚱하게도, 잘났다고 착각하는 사람과 스스로 낮게 평가하여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두루 모여 국적 불명의 섞어찌개 맛을 내고 있다. 참 우습다. 비록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상류층 행세를 하는 사람들의 우월의식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무시와 혐오 감정이 숨겨져 있어 심각한 사회 병리 현상을 유발한다.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서 여간한 방해물이 아니다. 우월감(superior complex)과 열등감(inferior complex)은 용어에서 보듯이 정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 콤플렉스 개념이다.
상식 중의 상식이지만 사람의 생물학적 이름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다. 생물의 학명은 스웨덴의 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가 처음 생각해내었고 현재도 이를 기초로 하여 발전시킨 명명법에 따른다.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혹은 ‘생각하는’을 의미하는 형용사인데 결국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 생각하는 지혜를 가진 생물이라고 스스로 정의한 셈이다. 자칭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생물학적 학명에 모자람을 느끼고 새로운 이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물론 새로운 생물학적 인간이 새롭게 진화되어 출현하지 않는 한 과학적으로 학술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국제생물과학연합(IUBS)이 채택한 국제동물명명규약(ICZN)을 위반하는 것이다. 주로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간 현상을 관찰한 결과이거나 혹은 바람직한 인간상에 대한 희망을 표명하는 이름들이다. 예를 들어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노마드(Homo nomad, 유목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 호모 페스티브스(Homo festivus, 축제하는 인간), 호모 에코노믹스(Homo economics 경제적 인간), 호모 에콜로지쿠스(Homo ecologicus, 생태 인간) 등이다.
천차만별 참으로 온갖 색다른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인류 사회에 살고 있다. 농사짓는 농부, 약을 짓는 약사, 글을 짓는 문학가, 집을 짓는 건축가들이 밥도 짓고 미소도 지으며 함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황순원 작가와 황해 배우의 “독 짓는 늙은이”가 있는가 하면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를 마주치며 나누는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전적으로 ‘짓는 존재’ 임이 틀림없다.
이참에 《평화 짓는 사람》의 학명을 붙여 보는 것이 재미있을 듯하여 명명법에 따라 찾아보니 《호모 파키피쿠스(Homo pacificus)》가 적절하였다. 동물명명법은 라틴어 단어를 사용하고 라틴어 문법을 지켜야 하는데, ‘평화적인’, ‘평화를 이룩하는’, ‘평화를 좋아하는’ 뜻을 가진 형용사 “pacíficus”를 적용한 것이다. 2명법에서 속(屬, genus)명은 명사를 사용하고 첫 글자를 대문자로 시작하며 종(種, species)명은 형용사를 사용하고 소문자로 시작한다. 그리고 학명은 이탤릭체로 표기한다.
그런데 법칙을 지켜서 학명을 찾아 정해 놓고 보니 프랑스의 소설가 삼 콜샤크(Sam Kolchak)가 쓴 동명의 공상 과학 소설이 이미 출판되어 있고(그림1), 브라질의 재즈와 록 가수이자 작곡가인 루노 토레스(Luno Torres)도 같은 이름의 앨범을 발매하였다(그림2). 또 평화의 사람을 아예 아종(亞種, subspecies)으로 규정하고 3명법을 사용하여 호모 사피엔스 파키피쿠스(Homo sapiens pacificus)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세계 도처에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대단히 반가웠다.
이쯤에서 우리네 사람 사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잘 살펴보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구별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착시현상이 있을 뿐이다.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못난 사람으로 판별되는 우스꽝스러운 현상도 감지된다. 자랑거리와 부끄러움 거리를 구별 못 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파행적 입시교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됨됨이는 출신학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심지어 소위 일류학교 출신이 똑똑하지도 않다. 온 국민이 허위의식에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장서서 한국 사회를 그르치고 있는 사람들의 학력 배경을 보면 더욱 그렇다. 소위 ‘공부 잘한다’는 것도 실재하지 않는다. 겉보기로 시험 점수가 높다는 사실만 있다.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점수 따는 기술을 가진 개체를 양산하였다. 380만 원에 팔리는 디오르 가방의 원가가 8만 원이라는 사실(2024.6.13. Jtbc 뉴스룸)은 한국 사회의 왜곡된 인간차별 현상과 흡사한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명품이나 잘난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다만 허위의식이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 진짜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가야 국가의 미래가 있을까? 사람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출발점이다. 우리는 홍익인간이라는 훌륭한 건국 이념으로 역사를 시작한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고난의 근대사를 겪으면서 얻은 심리적 생채기투성이를 치유하고 사람의 모습으로 재생되어야 한다. 호모 파키피쿠스(Homo pacificus)로 진화하여 사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을 보는 안목의 기준이 평화가 된다면 아마도 진짜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지상주의, 승자독식의 천박한 사회를 벗어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숭고한 사상을 바탕으로 함께 평화를 나누며 달려가는 호모 파키피쿠스의 세상을 희망해 본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단다. 여기도 평화, 저기도 평화, 평화가 판친다는 새로운 노래가 유행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평화 짓는 사람》이 되는 그날, 온 세상이 평화의 춤을 추며 행복에 젖는 환상적 모습을 꿈꾸어 본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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