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인들의 생계 불안정, 자산 소득 감소가 이민자 탓으로 전환되고 이에 편승한 극우가 부상하는 배경이다. 사실 이민자문제는 스페인 기독교 제국주의의 업보임에도 말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회 선거에서 사회당을 이끌고 승리한 살바도르 야(가운데) 당 지역 대표가 12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바르셀로나/EPA 한겨레 2024-05-13)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회 선거에서 사회당을 이끌고 승리한 살바도르 야(가운데) 당 지역 대표가 12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바르셀로나/EPA 한겨레 2024-05-13)
카탈루냐 독립국민투표 당시 스페인 중앙정부의 저지 경고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바르셀로나의 한 투표소 밖에 길게 줄을 서 있다.(사진 출처 :  바르셀로나/AFP 한겨레 2017-10-01)
카탈루냐 독립국민투표 당시 스페인 중앙정부의 저지 경고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바르셀로나의 한 투표소 밖에 길게 줄을 서 있다.(사진 출처 :  바르셀로나/AFP 한겨레 2017-10-01)

파시스트 프랑코 독재의 종식과 스페인 민주화

​인류역사는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선언, communist manifesto을 거치면서 자유, 평등, 인간존엄의 정치질서를 향해 질주하였다. 미국, 영국 뿐만 아니라 1917년 레닌의 볼세비키혁명을 안착시킨 소련까지 파시즘에 맞서 싸웠다.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것은 소련이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세계에서 국민주권, 자유, 생존권은 보편적 가치였다. 자유주의의 한 분파로 좌파가 자리잡고, 급진좌파라도 냉전 이후처럼 적대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서조차 1차 대전 이전에는 마르크스주의자인 사회당이 제3당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후 세계는 뜻밖에 미국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이냐 아니냐로 양분 되는 냉전 질서를 강요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독일, 이태리 파시즘은 전쟁에서 패망 후 소멸되었으나 스페인 프랑코 파시즘은 40여년간 유지했다. 그것은 전후 냉전 체제 등장으로 공화주의 대 파시즘과의 진영구분이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공화주의의 한 분파로서 인정되던 반자본주의 정치세력(급진좌파)은 냉전질서 속에 생존하기 어려운 처지에 몰린다. ​​민주와 인권이 탄압되는 파시즘이 자유란 이름으로 냉전질서속에서 활개치고 한편 소련의 스탈린주의는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서 이미 간파했듯이 인간 존엄, 민주, 자유의 기본 가치를 훼손하는 반민주 독재국가, 국가자본주의로 역할하는 모순을 목도하게 되었다.  한반도 분단, 한국전쟁, 월남전쟁, 남미의 군사독재, 내전 등 모두는 이같은 냉전 질서가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스페인 파시스트 독재통치 종식은 1975 프랑코가 죽은 후에 찾아왔다.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코 생존시 프랑코 후계자로 지명된 카를로스 국왕에 의해 민주화 조치가 진행되었다. 국왕은 즉위식 첫 번째 조치로 프랑코 독재 치하에서 자행되던 카탈류냐어, 바스크어, 발렌시아어 사용금지 법령을 폐기했다.

이어 국왕이 임명한 총리는 정치범 석방, 카탈루냐, 바스크 자치 부분 허용, 공산당 합법화 등 국민화합을 위한 민주화조치를 진행시켰다.

한발 더 나아가 국왕은 1978년에 신헌법안을 제정하는데 역할하였고, 폭넓은 민주화, 국민화합를 위한 조치들에 반발해 들고일어선 군부쿠데타를 단호히 막아내어 국민적 지지를 받게되었다.

프랑코 사후 7년만인 1982년 총선에서 좌파인 사회노동당이 정권을 장악했다. 이런 일련의 민주화 과정은 프랑코가 생존 중에 미리 후계자로 지명한 국왕의 역할이 컸다. 국왕이 스페인 민주주의 수호자가 된 것이다.

​​현재 스페인 총리는 마드리드 출신 페드로 산체스이다, 2017년 분리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고 수배중이던 주동자들에 대해 사면조치를 카스티야 레온 지역의 정서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해 사면을 성공시키고 노동부장관에 공산당 출신까지 입각시켰다.

산체스는 아르헨티나 극우 밀레이가 스페인에 적대하고 파시스트 세력을 선동하는 데 대해 규탄을 한다.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을 하고, 이스라엘의 침략을 규탄하고 극우 이스라엘 네탸나후를 비난한다. 현 영국 노동당 키어 스타머 총리의 기회주의와 구별된다. 영국 노동당 전 수상 제레미 코빈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다.

오바투어리즘의 부작용,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는 집회에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몰렸다.(사진 출처 :  바르셀로나/로이터 연합뉴스/한겨레 2024.11.25)
오바투어리즘의 부작용,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는 집회에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몰렸다.(사진 출처 :  바르셀로나/로이터 연합뉴스/한겨레 2024.11.25)

​겁 없는 도시 바르셀로나

파리가 프랑스 대혁명, 파리꼬뭔, 68혁명의 본산였듯이 바로셀로나는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파시스트에 대항하던 반란의 도시였다. 인근 바스크 지역이 사회적 경제,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산실이었듯이 카탈류냐는 스페인 진보의 거점이자 전 세계 진보진영 메카의 하나이다.

​파시스트 쿠데타에 공화정이 함락된 후 프랑코 군부독재의 극심한 탄압을 35년 이상 받았다. 프랑코 사후 스페인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카탈로니아 분리. 독립주장이 거세졌고, 주민투표를 거친 독립정부선언도 했다. 스페인 정부와 사법기관은 위헌, 불법으로 규정했다. 또 다시 내전의 위험에까지 이를 위기 상황이었고 주모자들은 사법처리되었다. 2019년도의 일이다.

지금도 바로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와 마드리드의 역사적 감정의 골은 여전하다. ​이 상황에서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국민 대화합 조치를 취했다. 진보적 가치에 기초한 국민 계층 통합과 사법처리된 카탈루냐 독립,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대사면을 단행했다. 카탈루냐 지방정부와 대화, 타협으로 분리 독립의 바람은 잠잠해졌다.

지난 카탈루냐 지방의회 선거에서 주도권이 카탈루냐 지역 좌파정당에서 중앙의 사회노동당 계열로 넘어갔다.

​이런 정치 상황의 변화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반기를 들고 파워풀한 생태도시, 친환경, 사람존중 도시를 지향하던 포데모스의 아다 콜라우 전 시장을 연임에서 실패케 하였다. 전임 시장은 기후위기시대, 자본만능,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정의로운 사회, 진보의 가치를 앞장서 실천하는 도시를 추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사이토 코헤이가 라고  극찬한 상호부조, 국민총행복(부엔 비비르), 생산과정의 민주화 ,fearless city를 추구한 것이다.

전임 시장의 바통을 이은 현 시장은 스페인 집권 사회노동당 계열이다. 그 역시 민주,진보 정치 운동을 하던 인사이다. 아다 콜라우 전임 시장이 내세우던 기후위기 대책을 포함한 과감한 진보적 정책, 두려움을 모르는 도시라는 슬로건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지금 바르셀로나는 분리주의, 독립문제가 현안이 아니다. 너무 많은 관광객으로 교통혼잡, 임대주택의 관광객용 숙소 전환에 따른 서민주거지 상실,  물가 및 집세 급등이 심각한 현안이다. 이같은 도시문제로 카탈루냐 분리독립운동 때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다. 빈부 격차 심화에 따른 계층 갈등이 이민자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

백인들의 생계 불안정, 자산 소득 감소가 이민자 탓으로 전환되고 이에 편승한 극우가 부상하는 배경이다. 사실 이민자문제는 스페인 기독교 제국주의의 업보임에도 말이다.

​아무튼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는 고대, 중세 , 근현대의 서양사가 녹아있는 흥미진진한 정치, 역사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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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김영수 주주  kimy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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