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스페인 정치, 역사 기행 – 가톨릭 스페인 제국의 팽창과 광기 (3)에 이어
유럽의 절대 다수 나라가 기독교 문화 속에 있다. 특히 스페인은 가톨릭 역사의 전시장 같다. 가톨릭을 빼놓고는 스페인 역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슬람 지배 800년의 역사가 있지만 가톨릭 문화 속에 녹아 스며들었다. 성가족 성당,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톨레도 대성당, 마드리드 엘에스코리알,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등은 꼭 가봐야 하는 관광 명소이다. 특히 성가족 성당은 카탈루냐인 가우디가 설계한 세계적 건축물로 대단히 웅장하고 화려하고 성스럽다. 한편 스페인 역사는 종교의 자유 탄압, 유대인 학살, 신대륙 원주민 무차별 학살, 자원의 수탈 속에 이루어졌다. 그런 범죄는 한 손에 총칼, 다른 한 손에 성경을 들고 하느님의 이름을 팔고 행했다.
거기다 스페인 제국은 폐쇄적인 결혼 동맹을 추구하여 근친혼에 의한 유전병을 유발하고 결국 대를 못 잇고 멸망했다. 가톨릭 제국은 파멸했다. 스페인 제국의 패권은 불과 1세기에 불과했다. 스페인 가톨릭 제국의 영광과 몰락의 역사를 개관하려 한다.
해가 지지 않은 스페인 제국
스페인의 통일은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국왕의 결혼을 통해 이루어졌다. 공동 국왕으로서 스페인을 각각 통치하였으며 콜럼버스의 신대륙 원정은 여왕 이사벨의 지원하에 이루어졌다. 유럽 왕실과 마찬가지로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왕정 강화, 영토 보위를 위해 결혼 동맹을 추진했다. 자녀를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 왕가) 왕가와 결혼시킨다. 이사벨, 페르난도 사후 왕가를 이어갈 아들이 없게 되자 스페인 통치권은 합스부르크 친손자 겸 외손자(카를로스 1세)(1516~1556)가 넘겨받는다.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 출생도 아니고 스페인 말을 못했음에도 외조부의 아라곤 왕국, 나폴리 등 이태리 영토, 외조모의 카스티야, 신대륙의 영토를 물려받았다. 게다가 그는 친조부 합스부르크 왕조의 모든 영토, 친조모의 플랑드르, 프랑스 공국의 일부 등 방대한 영토를 인수하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임까지 하였고 이때부터 카를로스 5세로 불렸다. 카를로스 5세 때 신대륙에서 야만적인 학살이 자행되었고 라스 카사스 신부가 카를로스 5세 왕에게 원주민 학살 중단과 노예 경영 폐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카를로스 5세는 죽으면서 아들(펠리페 2세)에게는 스페인 제국과 이태리, 신대륙 등을 물려주고 동생 페르난도에게는 신성로마제국을 넘겨주었다.
부왕 카를로스로부터 막대한 영토를 물려받은 펠리페 2세는 1569년 태평양의 필리핀을 정복하고 동방 교역 확대, 지중해 해상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오스만 터키와 전투를 벌인다.
그 유명한 레판토만 해상의 전투에서 터키를 격파함으로써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무적함대란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여세를 몰아 포르투갈까지 통합하여 그 식민지까지 손에 넣었다. 해가지지 않는 스페인 제국을 완성하였다.
당시 스페인은 16세기 중에 전 세계 금, 은 총생산량의 거의 절대량을 차지하는 부국이었다. 멕시코, 볼리비아, 페루 등 신대륙에서 금광, 은광 채굴권을 장악하여 거대한 제국의 기반을 이루었다.
펠리페 2세는 수도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천도하고 거대한 엘 에스코리알 궁전을 신축하였다. 스페인 역사에서 가장 번영하던 때이다.
지는 태양, 스페인의 몰락
한때 스페인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이태리 지역까지 합병하고 4대륙에 식민지를 운영했던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막강한 경제력의 제국이었다.
이 같은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식민지로부터 금,은보화가 들어와도 종교 전쟁 등 과도한 팽창주의,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적자 규모가 증대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메리카 식민지 광산에서 채굴한 금, 은을 제노바 금융가에서 담보로 제공해 금융을 썼다.
종교 이데올로기에 갇혀 자행된 유대인 추방의 후과로 경제 기반이 무너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6세기 중반 펠리페 2세는 이미 파산지경에 이른 상태에서 네덜란드 반란 세력을 지원하던 영국군의 징벌을 위해 무적함대를 파견했으나 1588 칼레 해전에서 완패했다.
칼레 해전 패배는 해상권 장악에 치명타였다. 해적선 수준의 후진국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것이고 세계 해상권력의 이동 계기가 되었다. 승전한 영국은 중상주의에 날개를 달게 되었고 영국 해안과 미국, 인도 등에서도 스페인 상선을 몰아낼 수 있었다. 여기에다 신, 구교 간의 갈등에 의한 끝없는 종교전쟁, 세금 저항 등에 의한 분리 독립운동 등으로 스페인은 외형상 부국이었으나 재정은 고갈되고 산업은 침몰하는 상태였다.
결국 17세기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분리 독립하고 프랑스 북부, 남서부, 동부의 할양, 18세기에는 나폴리, 사르데냐 등이 떨어져 나가면서 스페인은 강대국의 대열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 편 : 스페인 정치,역사 기행 -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멸망과 기독교의 참회(5)(끝)
편집 : 김영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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