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well-being]’이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라면, ‘웰다잉[well-dying]’은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입니다. 잘 죽으려면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른바 ‘입관 체험(入棺體驗)’이 그 연습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미리 자신의 영정 사진을 만들어 놓고, 그걸 보면서 유서처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 다음, 관 속에 들어가 죽음을 느껴보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막상 체험을 마치고 나온 분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제법 의미가 있는 모양입니다. 마지막 편지를 쓰다 보면 대부분 자신이 잘못한 일,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했던 일들만 떠올라서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군요. 입관 체험이 끝나고 나면 대부분 ‘다시 주어진 삶’인 만큼 더 열심히 살겠다는 마음을 갖는다고도 합니다. 우리야 ‘입관’ 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서(遺書)’ 비슷하게 ‘마지막 편지’ 정도는 써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동문선(東文選)》 23권에는 교서(敎書)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 <인왕 유교(仁王遺敎)>라는 글이 있습니다. 고려 17대 왕인 인종(仁宗, 1109~1146, 재위 1122~1146)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남기신 유서입니다. 인종은 예종(睿宗)의 뒤를 이어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습니다. 즉위 초에는 외척인 이자겸(李資謙)의 난, 무신인 척준경(拓俊京)의 난을 겪고, 중기에는 묘청(妙淸)의 난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정(善政)에 힘쓰고 유학(儒學)과 문학의 진흥에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셔서 그랬는지 25년을 다스리고 40세가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무덤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어떤 말씀을 남기셨을까요.
내외 문무백관 등에게 하교(下敎)하노라. 짐이 하늘의 돌보심에 힘입어 선조들께서 남겨주신 기틀을 이어받아 삼한(三韓)을 다스린 지 25년이 되었다. 이제 근심하고 수고롭게 살아온 것이 오래 쌓여서 병에 걸린 지 수십 일이 되었다. 그런데 병세는 더해가기만 하지 차도가 없어서 마침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무시무시한 반란을 여러 차례 겪으셨으니 병에 걸릴 만도 합니다. 그리고 병이 나을 가망도 없어 보입니다. 뒷일이 걱정됩니다. 후계를 지정하고 뒷날을 부탁하실 차례입니다.
왕태자-뒤에 의왕(毅王)이 될 왕자-는 충효(忠孝)의 아름다운 덕을 하늘로부터 타고나 그 덕이 일찌감치 완성되었고, 덕업(德業)이 풍성하여 인망(人望)이 따르는 바이니 왕위에 오르는 것이 마땅하다. 왕비를 높여 태후(太后)로 삼고, 상복(喪服)은 날짜로 달을 대신하고, 산릉(山陵)의 제도는 검약한 것을 따르도록 힘쓰라.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 그 어머니-곧 인종의 부인-는 자연 태후로 승격됩니다. ‘산릉(山陵)의 제도는 검약한 것을 따르도록 힘쓰라’는 말씀은 무덤을 조성할 때 검소하게 하여 국가와 백성에게 주는 부담을 줄이겠다는 뜻입니다. ‘상복(喪服)은 날짜로 달을 대신하라’는 말씀은, 삼년상(실제로는 27~28개월)을 치르는 것이 법도라면 개월 수를 날짜로(27~28일로) 바꾸라는 것이니 이 역시 부담을 30분의 1로 크게 줄이라는 뜻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이토록 백성을 걱정하시니 ‘인종(仁宗)’이라는 묘호(廟號)가 어울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자(孔子)의 제자 증자(曾子)의 말씀 중에 “새는 죽으려 할 때 그 울음이 슬프고[鳥之將死, 其鳴也哀],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그 말이 선(善)한 법이다[人之將死, 其言也善].”라고 하셨다는데 그 말대로입니다. 이제 마무리 말씀입니다.
아아,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는 것이니, 이는 성인이건 지혜 있는 이건 모두 마찬가지인 것이다.[於戱! 有生必死, 聖智所同.] 문무백관은 마음을 같이하고 덕을 합하여 우리 원자(元子)를 도와서 길이 왕실을 편안하게 할지어다. 슬프다, 뜰에 있는 너희 신하들이여, 마땅히 내 뜻을 온몸으로 받들어서 주관하는 자가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는 것이다.’ 아무리 신하가 받아 적은 것이라고는 해도 왕은 역시 왕답습니다. 곧 닥쳐올 죽음 앞에서도 담담합니다. 이미 어려서부터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비록 왕은 아니지만, 우리도 죽음 앞에서 저렇게 담담하고 당당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문선》에 유서를 뽑아 넣은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편집 : 조경구 객원편집위원. 조형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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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선(東文選)》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지어진 우수 작품을 모은 선집이며, 이미 번역되어 한국고전종합DB에 올라 있는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귀한 내 것을 내 것인 줄 모르고 쓰지 않으면 남의 것이 됩니다. 이 코너는 《동문선》에 실린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잊을 뻔했던 내 것을 되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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