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재즈계 샛별 등장 '새머라 조이' 글를 썼다. 그 글에서 새머라 조이가 부른 노래를 들어 보면 귀에 익은 곡이 많이 나온다.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재즈 명곡을 그녀 스타일 버전으로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젊어서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을 새롭게 불러주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중 2022년 나온 그녀의 두 번째 앨범 <Linger Awhile>에 수록된 'Misty'를 다시 소개한다.
'Misty'는 1954년에 피아니스트 '에롤 가너'가 작곡한 연주곡이다. 그는 1954년 비행기로 이동하던 중, 창문으로 비행기가 안개 속을 날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어떤 멜로디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악보를 읽고 쓰지 못해 멜로디를 기록할 수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멜로디를 계속 떠올렸고, 비행기 착륙 후 호텔로 달려가 녹음기를 구했다. 호텔 피아노로 멜로디를 연주해 녹음했다. 이 일화를 들은 그의 친구가 '안개처럼 희미한 곡이다'라고 해서 'Misty'라는 제목이 붙여졌다고 한다.
1959년 노랫말이 붙여져 '조니 매티스'의 앨범 <Heavenly>에 수록되었다. 에롤 가너의 곡은 1991년 '그래미홀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조니 매티스'의 곡은 2002년에 올랐다.
이곡은 수많은 음악가들이 연주하고 불렀다. 나는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가 부른 곡을 처음 만났다. 그래 그런지 그녀가 부른 곡을 제일 좋아한다.
엘라 피츠제럴드는 수많은 디바들이 존재하는 미국 재즈계에서 '재즈의 여왕'이라 불릴만큼 재즈계의 절대 존재다. 그녀의 음색은 곱고, 부드러우며, 깨끗하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넓은 음역을 가졌으면서도 완벽한 음정과 기교로 많은 장르의 곡을 소화해 냈다. 밝은 노래부터 슬픈 노래까지 감성의 폭도 넓다.
특히 그녀는 여성 재즈 가수 최초로 스캣 창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스캣은 재즈를 부를 때 사용되는 기법이다. 가사가 없고, 즉흥적으로 무의미한 음절을 내뱉어 재즈의 자유로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즉흥적이긴 하지만 곡의 멜로디와 리듬은 함께 가야 하므로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고난도 기술이다. 스캣은 트럼펫 주자 루이 암스트롱이 대중화시켰다. 엘라는 루이 암스트롱에게 영향을 받아 스캣 곡을 선보였다. 공연에서 그녀의 민첩하고 화려한 즉흥 스캣은 청중들을 놀라게 하면서 스캣 곡의 대표 가수가 되었다. 그녀의 기가 막힌 스캣 곡 'How high the moon'을 소개한다.
엘라의 곡 중 'Misty'만큼 서정적인 곡이 또 있다. 'My Melancholy Baby'다. 1912년 '어니 버넷(Ernie Burnett)'이 작곡한 곡으로 역시 수많은 가수가 불렀다. 엘라는 이 곡을 마치 갓난아이를 안고 부르듯 조심조심 애틋하게 부른다. 혹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부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엘라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1917년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는데 친부모님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를 낳았다. 2년 정도 살다 헤어지고 어머니는 새아버지를 만나 뉴욕으로 이사했다. 그녀 15세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새아버지와 일 년여 살다가 1933년 이모와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하여 흑인 고아 정신병원에 맡겨지기도 하고 감화원에서 살기도 했다.
힘든 청소년기를 지내고 1934년 17세의 나이로 아폴로 극장에서 데뷔했다. 1935년 할렘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 기회를 얻었다. 관객과 동료 음악가들의 인정을 받은 피츠제럴드는 팀의 정식 보컬로 여러 히트곡을 녹음했다. 1938년 'A-Tisket, A-Tasket'가 큰 히트를 하면서 드디어 가수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엘라는 1996년 79세에 사망할 때까지 스튜디오 앨범에서 라이브 앨범까지 포함하면 40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했다고 한다. 흑인 여성 최초로 '그래미상'을 받았으며 이후 12개를 더 받았다. 1967년에는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예술가로서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면서, 많은 이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 76세까지 라이브 공연을 했다.
엘라는 민권 운동가이기도 했다. 공연을 다니면서 여러 인종차별에 투쟁했다. 이로 인해 '유색인 평등 정의상(Colored People Equal Justice Award)'과 '미국흑인공로상(American Black Achievement Award)'를 수상했으며, '문화 대사'로 인정받아 '국가예술훈장'과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또한 엘라는 자선가였다. 1993년 '엘라 피츠제럴드 자선 재단'을 설립하여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의료 혜택과 불우한 사람들 특히 어린이에게 학업과 음악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새머라 조이가 바로 이 재단의 장학생이다.
멋진 인생을 원 없이 살다간 엘라 피츠제럴드의 공식 계정에서 선보인 <The Best Of Ella Fitzgerald>다.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한 'Summertime'을 시작으로 24곡이 수록되어 있다. 요새 레트로가 유행이라고 하던데, 요새 같이 불안한 시절에 잠시 옛 감성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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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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