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어리석은 폭군과 수치심을 모르는 여자 덕분에 지난 몇 달 동안 7~80년대 유신과 계엄 그리고 삼청교육대의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전방 GOP에서 근무하다 교대로 내려와 잠시 삼청교육대 경계 임무를 수행한 경험도 있었지요. 노상원을 중심으로 군과 계엄 세력은 전두환을 롤 모델로 생각했고, 윤석열을 반대했던 반국가 세력은 당시 삼청교육대처럼 끌려갔겠지요. 그리고 임시 막사에서 밤이면 수시로 비상을 걸어 목봉 체조를 시키고 낮에는 끌려가 작업을 했을 것입니다. 시골에서 일하다 억울하게 끌려왔다던 그때 그 농부는 지금쯤 외로운 혼이 되어 강원도 민간인 통제구역 안 어딘가를 떠돌고 있지는 않을까?
인간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모태에서 생겨나 관 속에서 마칩니다. 시작과 종착점은 같아도 어떤 이는 김장하 어른처럼 선한 영향력을 남기고, 어떤 이는 끔찍한 고통을 후대에 남기기도 하지요.
그동안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로 대만에서 병원을 들락거렸습니다. 한 번은 잠을 잘 무렵 미쳐 방문을 열고 화장실에 갈 여유도 없이 토하고 어지럼증에 몸을 못 가누었습니다. 처음 경험이라 두렵더군요. 이대로 눈을 감으면 아침을 못 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지인에게 전화했지요.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가서 CT 촬영을 하고 결과를 보았는데, 다음날 의사 말로는 급성 뇌경색일 수 있다고 하며 큰 병원 소개해 줄 테니 MRI 촬영을 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스피린 처방 약을 주고요. 대만에서는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아 부담되어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퇴원했습니다.
주변에 알아봤더니 대만에 나이 든 사람들 상당수가 어지러워 구토를 했고, 잠시 누워 있으면 괜찮아졌다고 합니다. 이 증상의 80% 정도가 세반고리관 이상이라고 해서 조심조심 살기로 작정하고 한국에 들어가 검사하겠다는 생각도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에 또 더 심한 구토와 어지럼증이 왔습니다. 앉을 수가 없어서 기어서 움직였습니다. 또 지인에게 연락했고, 엠블런스를 불러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뇌 MRI 촬영을 하고, 혹시 소뇌 감염에 의한 증상일 수 있다고 척수를 뽑아 감염 여부 체크를 하는데, 6시간 똑바로 누워 있는 고통이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 비용이 몇 백만 원이 나오더군요. 나중에 경동맥 촬영도 해보며 의사가 내린 진단은 이석증도 아니고 세반고리관에 염증이 생겼다가 가라앉은 상태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왼쪽 눈이 심하게 불편해서 약을 넣고 있습니다. 5월에 한국에 들어가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어지러운 한국의 내란 정국과 맞물려 일어났고, 현재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하는 성찰의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결론은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없애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옛사람들은 신외지물(身外之物)을 경계하였습니다. 우리 몸 밖에 있는 물건, 즉 명예, 권력, 재물 등을 뜻하지요. 신외지물이 많을수록 사람은 자연에서 더 멀어집니다. 몸을 쓰며 땀을 흘리기보다 편안하게 먹고 마시며 누리는 삶이 많아지게 됩니다. 많은 것을 누리다 보면 탐욕은 점점 더 자라고 결국은 남의 것을 빼앗게 됩니다.
“禍福無門, 惟人所召.(화복무문 유인소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와 복이라는 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를 불러들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재앙이나 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제 스스로 만든다는 말이지요.
물고기는 미끼를 물다가 잡혀 죽고, 새는 모이를 탐하다 식탁에 오릅니다. 인간이나 동물에게 내리는 재앙은 재물이나 이익을 탐하는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이지요.
이제는 하나둘 없애는 마음을 가져야 할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없애고, 신외지물에 덜 연연하려고 노력하렵니다. 내 몸 안의 근심, 걱정, 불면, 질병, 분노, 미움 이런 것들은 없애면 없앨수록 내 영혼이 마치는 그날까지 좀 더 자유롭고 평안해지지 않을까?
결국 身外之物이 아니라 생각이 인간을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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