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 국립수목원에 갔을 때 엄마가 잘 걷지 못하셨다. 힘들다고 중간중간 자주 쉬셨고, 숨이 가쁘다고 하셨다. 작년에 다리 다치고, 치아까지 안 좋아져서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해 기력이 달려서 그런가 보다 했다.
더 마음을 썼어야 했는데…. 딸 산바라지를 하러 가기 위해 내 몸 챙기느라 엄마를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다 5월 24일 토요일, 우리 집에 저녁 드시러 오셔서 이상하게 숨이 많이 가쁘다고 하셨다. 이렇게 숨이 가쁜 적은 없었다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엄마는 병원 입원을 너무 싫어하셔서 스스로 병원에 가겠다고 하시지 않는 형인데…. '아~~ 이거 심각하구나' 생각해서 차려놓은 저녁도 먹지 못하고 응급실로 달려 갔다.
응급실에 도착한 후 엄마는 급격히 나빠졌다. 호흡곤란이 심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도 혼미해져서 의사 표현도 잘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응급실에 순환계 내과 의사가 있어서 신속한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바로 산소 호흡기를 연결했고, 이뇨제를 계속 놓았다. 의사는 남편을 밖으로 부르더니 "마음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라고 했다. 심부전으로 인한 폐부종 같다면서 이 연세에 이런 증세로 들어오시는 분 50%는 사망한다고 했다. 심부전으로 인한 폐부종은 심장이 혈액을 충분히 펌프질하지 못해 폐의 체액이 쌓이는 상태다. 호흡곤란 등 증상이 일어나 급성 저산소증이나 심장 마비로 이어진다.
다행히 엄마는 호전되어 새벽에 준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사흘 후 일반 병동으로 옮겼고 6박 7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일본에 있는 동생이 달려와 엄마 간호를 전담해 준 덕에 나는 딸 산바라지를 하러 미국에 갈 수 있었다. 지금은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점검을 받으러 병원에 가신다. 노화로 인한 것이라 심장근육을 강화하기는 어렵고, 평생 강심제를 드시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했다. 하여튼 지금은 한숨 돌렸다.
몇 년 전 코로나 시국에도 엄마는 돌아가실 뻔했다. 그날 오후 5시부터 엄마와 전화 연락이 안 됐다. 엄마가 가끔 전화기를 진동으로 해놓고 계실 때, 진동 감지가 안 돼 전화를 받지 못하실 때가 많았다. 처음엔 그래서 그런가 했는데… 10시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밤 10시 넘어 엄마 집에 갔다. 엄마는 혼자 고열에 시달리고 계셨다. 전화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슨 말을 물어봐도 잘 대답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응급실로 모셔가서 살 수 있었다. 39도 고열과 설사, 구토를 동반한 급성 장염이었다. 별일 없겠지... 하고 그다음 날 가봤으면 고열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도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밤이라도 전화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엄마는 이번에도 그러질 않으셨다. 몇 차례나 누워있을 때 숨이 가쁜 적이 있었는데, 일어나면 좀 나아져서 아무 말씀 안 하셨다는 거다. '니들 번거롭게 하기 싫어서....'라고 하셨다.
병원에서 이제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는 아직도 약간이라도 경사 길을 갈 때면 숨은 가쁘다고 하셨다. 그래도 매주 월요일에 팝송을 가르쳐주는 영어교실에도 가시고, 목요일은 노래교실도 가시고, 이틀에 한 번 발마사지하는 고주파 치료실에도, 물리치료 받으러 동네 병원에도 혼자 씩씩하게 잘 다니신다. 저녁 식사 후 거의 매일 1시간씩 산책 겸 운동도 하신다. 심부전 예방을 위해서는 심폐지구력을 향상해야 한다. 이를 위한 운동은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이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밖에 없다. 엄마는 이를 알고 열심히 하고 계신다.
엄마가 수십 번 봤다는 최애 영상이다. 엄마는 증손주가 활발하게 노는 영상을 좋아하신다. 영상 시작하자마자 '음마'라는 의미 없는 말을 하는데 엄마는 자꾸 아기가 '엄마' 소리를 했다고 주장하신다. ㅎㅎㅎ
며칠 전 엄마 얼굴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 말씀드렸더니, 엄마는 손녀가 보내주는 증손주 영상을 보면서 매일 웃고 살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증손주가 플레이매트에서 노는 영상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고 ..... "갸가 하는 짓이 아주 웃겨"라고 하셨다. '음마' 하는 위 동영상은 하루 종일 보면서 웃었고, 여러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셨다고 하셨다. 물론 엄마가 열심히 움직이셔서 얼굴이 펴지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매일 눈 뜨자마자 주무실 때까지 웃고 사시니까... 엄마 얼굴도 피어나는 것 같다.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을 보내주는 딸과 사위에게 정말 고맙다.
잠자기 전 광란의 발차기. 저 굵단 한 넓적다리로, 결사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면 나도 웃음이 나온다.
얼마 전 엄마가 영어교실에서 배운 나나 무스쿠리의 'Early One Morning' 가사가 들어간 영상을 찾아달라고 하셨다. 뭐가 바쁜지 깜박 잊고 있었다가 생각나서 얼른 올려드렸다. 엄마는 팝송을 아주 좋아한다. '나나 무스쿠리'는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다. 엄마가 영어교실에 가는 이유는 바로 수업마다 한 곡씩 팝송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래를 배우고 집에서 따라 하는 것도 엄마의 건강을 지켜주는 한 요인이 아닐까?
오래전 나나 무스쿠리의 여러 영상을 카페에 올려드렸는데 너무 오래되었는지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 엄마 카페에 새로 올려드리면서 나나 무스쿠리 2시간짜리 영상을 이곳에도 올려본다. 높은 가을 하늘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지닌 가수라 나도 예전에 무척 좋아했었다. 옛 생각을 하며 한 동안 들어야겠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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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재롱 떤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도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외손주가 진외할머니(외할머니의 엄마)께 대리 효도를 톡톡히 하는군요^^
나나 무스꾸리의 음악까지 덤으로 들려주시니 너무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나나 무스꾸리 노래는 50년 전에 구입한 카세프 테이프라서
못 들은지 오래 됐습니다. 그분이 불의와 독재에 저항한 국민 여가수라는 건
모른 채 무조건 좋아했던 젊은 시절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10 여 년 전 그리스 여행 갔을 때 나나 무스꾸리는 고인이 되었지만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아테네 시내에 있는 생가를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