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게 다시 경찰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하려는 정성호
FBI(연방수사국) 등 연방정부의 기능은 각 주(State)의 권력에 의해 견제
미국 검찰은 지검장 민선제를 통해 시민이 견제
경찰뿐 아니라 검찰, 법원도 지역자치로 분권하고
지검장, 지방경찰청장, 지방법원장 등은 교육감처럼 민선해야

법무부 장관 정성호 (사진출처: 한겨레, 2025.8.28.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15612.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50828)
법무부 장관 정성호 (사진출처: 한겨레, 2025.8.28.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15612.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50828)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법무부 아닌 행정안전부 산하에 설치하겠다는 민주당의 개혁안에 대해, 정성호는 그렇게 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 “중수청은 검찰과 달리 선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누가 담보할 수 있느냐”고 발언했다.(경향신문, 2025.8.27.) 행안부 산하에 설치하는 중수청도 공정하게 수사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은 도긴개긴, 그러니 지금까지 선하게 수사하지 않은 법무부 소속으로 두자는 것이 정성호의 지론이다.

이 같은 정성호의 말에 일리가 있다. 현재 검찰에서 수사 기능을 떼어내어 행안부 소속의 중수청으로 넘긴다고 해서,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비리에 절어 빠진 경찰 및 검찰이 새사람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허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아예 중수청을 원위치하여 법무부 산하에 설치하자는 정성호의 말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정성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권력기관 분립의 원칙이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권력을 더욱 쪼개서 분립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정성호는 국가수사위원회(국수위)를 설치해 경찰·중수청·공수처 수사를 통제한다는 구상에 대해 “수사기관의 장이 대통령이 돼 윤석열(전 대통령)처럼 막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런데 정성호 말대로 중수청, 국수위 등을 행안부 아닌 법무부 산하에 둔다고 해서, 막나가는 윤석열을 견제할 수가 있나? 내란을 통해 보았듯이, 행안부나 법무부나, 그 나물에 그 밥, 결과는 똑같다.

정성호는 검찰을 ‘통제’ 기관으로 두려 한다. 경찰·중수청의 전건송치(수사한 모든 사건을 공소기관에 보내는 것)도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 및 수사지휘권 부활을 통해 통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검찰이 한 번 확인하는 절차를 둬야 수사기관이 사건을 망치기 어렵다”, “사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남용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장담한다.

이 같은 정성호의 비현실적 희망은 그 ‘검찰’에 대한 통제를 누가 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속수무책이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남용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그의 판단은 과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권력분립이 필요하다면, 그 원칙은 검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성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남용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단정했다.

정성호에 따르면, “보완수사권을 반대하는 분들은 검찰이 보완 수사를 빌미로 수사를 확대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검찰을 인적으로 완전히 정리하고 범죄사실의 동일성 내에서만 보완 수사하도록 하면 된다. 만일 검찰이 새로운 범죄사실을 인지하면 사건을 원래 수사기관에 되돌려 보내도록” 하면 된다고 한다.

정성호의 이 같은 말은 허황하고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가득 차 있다. 첫째, 검찰을 인적으로 어떻게 완전히 정리할 수가 있나? 해묵은 비리의 검찰을 어떤 식으로, 그것도 완전히, 정리한다는 뜻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정리는 누가 할 것이며, 한정된 임기의 법무부장관 정성호가 그 정리를 보증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단발성 장관이 뭐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여기는 것은 정성호의 망상이다.

둘째, “범죄사실의 동일성 내에서만 보완 수사하도록”, 셋째, “검찰이 새로운 범죄사실을 인지하면 사건을 원래 수사기관에 되돌려 보내도록” 하면 된다는 정성호의 희망은 허황하다. ‘동일성’, ‘새로운 범죄사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현령비현령이다. 온갖 사건은 이리저리 얽혀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를 ‘동일성’, ‘새로운 범죄사실’로 보는가 하는 기준이 애매할 수밖에 없다.

정성호의 제안에서 가장 황당한 점은, 검찰이 동일성 내에서 보완 수사하지 않고, ‘새로운 범죄사실’을 원래 수사기관에 돌려보내지 않을 때, 견제와 처벌의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한편에,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권력분립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검찰에 대해서는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남용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당치않다.

정성호는 신설 전망에 있는 중수청이 검찰과 달리 선하게 수사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 ‘검찰은 악이고 경찰은 선’이라는 생각에 합리적인 토론을 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점 등을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수청과 경찰이 검찰과 같이 선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그 통제의 권한을 검찰에 되돌리려 하는 정성호의 의도는 동조할 수가 없는 일이다.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설치하겠다는 민주당의 제안에 대해, 법무부장관 정성호가 “행안부 장관은 현행법상 지금도 경찰이나 국가수사본부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할 수 없다”, “미국을 봐도 FBI(연방수사국) 같은 수사기관이 모두 법무부 소속으로 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중수처에 대해 행안부 장관이 ‘민주적 통제’를 할 권한이 없다고 해서, 중수처를 법무부 산하에 두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인용하건대, 정성호 자신이 말하는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에 권력은 분립해야 하는 것이므로, 기소·공소청과 중수청을 같은 법무부 산하에 모으지 않겠다는 것이 이번 일관된 검찰개혁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이 걸림돌이 되면, 법을 고치면 되는 것이고, 헌법에 걸림돌이 되면 헌법을 고치면 된다. 행안부 장관에 통제권이 있으면, 다시 중수청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입법하면 된다. 국회의 입법 권한은 그럴 때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위해 죽으라고 개헌을 외쳐대면서, 다른 필요한 개헌이나 입법은 왜 더 하려 않고 뭉개는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정성호는 미국 연방수사국 등이 모두 법무부 소속으로 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정성호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은 미국은 각 주(State)가 독립국같이 고유의 헌법(주법)과 의회, 집행기관들을 갖추고 있어서, 연방정부의 기능이 최소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방수사국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각 주(State)의 검찰은 산하 군(County)의 지검장 민선제를 통해 시민에 의해 통제된다. 이 같은 지역 분권과 민권이 확립된 나라에서는 윤석열 같은 이가 나와서 독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정성호가 염려하는바, ‘검찰 해체’를 통해 신설될 경찰·중수청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과거의 검찰과 같이 정치적 표적 수사를 자행할 경우에 대한 통제는 다른 방법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자치 경찰 같은 자치 검찰, 나아가 자치 법원으로 분권되고, 지검장, 지방 법원, 지방 경찰청장 등은 교육감같이 민선하면 된다. 지역적 분권과 민권의 제도화로 검찰, 경찰, 법원의 권력은 통제되어야 한다.

정성호의 편애적 시각에는 무소불위 검찰의 영광에 대한 관성과 향수가 서려 있다. 보완수사권이라는 미명하에 검찰, 법무부 등에 통제의 권력을 되돌려준다면, 고양이에게 생선 가져다 맡기는 꼴이 될 전망이다. 이는, 정성호 자신이 고백하는바,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설치함으로써 초래되는 위험에 비해,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

임은정(서울동부지검장)이 검찰개혁을 가로막는 ‘5적’을 적시했다. 정성호가 ‘5적’은 이재명이 임명한 이들이라고 응수했고, 언론에서는 정성호의 이 발언을 ‘묵직한’ 한마디로 편을 들었다.

정성호의 발언은 두 가지 점에서 편향적이다. 첫째, 이재명이 임명한 이들은 ‘이재명이 임명했다’는 이유로 비판하면 안 되나? 이재명을 도우는 것은 그가 했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정성호는 전자, 임은정은 후자에 속한다. 이재명의 실수를 방관하는 이는 이재명이 급기야 질곡에 빠지기를 기다리는 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 정성호 발언의 근저에는 비판을 불허하는 권위주의 의식이 깔려 있다. 이것은 시중에 회자하는바, 임은정이 상명하복했다는 시각과 통한다. 상부의 명령도 무조건 따르면 안 된다. 윤석열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누구든지 그 말 그대로 듣고 끌어내면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옳든 그르든, 틀린다고 생각하면, 하면 안 된다.

여기에 권위주의 상명하복이 아니라, 상호 토론의 장이 열려야 하는 것이겠다. “보완수사로 수사권을 놔두면 검찰청이 공소청으로 간판만 갈고 수사권을 사실상 보존하게 된다”는 임은정의 주장에 대해, 공봉숙(서울고검 검사)이 “검사가 수사를 아예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현재 검사들이 하고 있는 진실 발견과 피해자 보호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론을 폈다고 한다.(데일리안, 2025.9.1.)

공봉숙의 눈에는, 여전히 검사들이 “진실 발견과 피해자 보호”를 해 온 것으로 보이는 것이고, 검사들이 저지른 숱한 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틀림 없다. 왜 검찰개혁의 화두가 세간을 달구는지 원인에 대한 일말의 배려 없이, 그이는 검사들은 ”진실 발견과 피해자 보호“를 하는 존재인 것으로 피력하고 싶은 것이다. 공봉숙이 떠드는 것은 검사에 의한 권력 오남용의 현실이 아니라, 이상적 원론이다. 그동안 양산된 숱한 피해자들을 무뇌충 혹은 개돼지로 보지 않고서야 저렇게 뻔뻔한 말을 저리도 용감하게 해댈 수가 없을 것 같다.

공봉숙이 보완수사를 반드시 지금까지처럼 검찰이 해야한다고 주창하면서도, 검찰의 일탈에 대한 방지의 보완책에 대한 대책 관련해서는 일언반구 없는 것이 그 반증이다. “20여년 동안 보완수사를 안 해 봤느냐”고 임은정에게 호통치는 공봉숙에게는, “그 20년 동안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어떻게 악용되어 왔는지를 본 적이 없느나”고 반문할 필요가 있겠다. 공봉숙이 임은정에게 “정신 차리기 바란다”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겠다.

최자영 객원편집위원  paparuna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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