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소극(笑劇)의 근원적 책임은 이재명의 ‘여야 간 협치’ 구호에서 비롯된 것
정치 복원은 주권자 국민의 정치적 발언권 제도화 없이 불가능
여야 간 협치(야합)는 정치 복원이 아니라 정치 질곡 가중
민주정치는 여야 간 협치, 국민 간 합의가 아니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
대통령 이재명이 지난 8일 여야 대표와 회동했고,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고, 이재명은 서로 용납, 용인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공통공약을 과감하게 시행해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민주당 대변인(박수현)에 따르면, “(여야가) 진솔하게 허심탄회한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힘당 수석대변인(박성훈)에 따르면, “당 대표(국힘당 장동혁)가 특검기간 연장,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대법관 증원과 같은 사법파괴 시도에 대해 강력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또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반대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한겨레, 2025.9.9.)
회동이 있은 지 사흘 후인 9.11일 민주당 김병기(원내대표)가 장동혁을 만나, 이른바 ‘더 센 특검법’의 취지를 까뭉개는 협의(합의)를 하는 바람에 한바탕 반발의 회오리가 일었다. ‘더 센 특검법’은 합의가 아니라, 원안에서 다소 변조된 내용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변조된 내용이란, 특검이 공소유지하도록 했던 것을 국수본 등에 넘기도록 한 것, 또 1심 재판을 공개하기로 한 것을 조건부 공개하기로 바꾼 것 등이라 한다. 그래서 내란 재판부 지귀연이 재판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표결에서 김용민, 박주민 의원은 찬성하지 않고 기권했는데, 원안이 이렇듯 변조된 데 대한 불만의 표시가 아닌가 하는 해석이 있다.
김병기 소극(笑劇: 웃음거리)을 두고, 세간에서는 깁병기-장동혁 간 야합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한편에서는, 민주당 지도부도 모르게 김병기가 독주했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당 대표 정청래, 나아가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재명은 취임 100일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에서 “협치와 야합은 다르다. 내란을 규명하고 척결하는 것은 협치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김병기 소극에 연루되지 않았던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이재명을 신주같이 보호하고 떠받드는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급기야 김병기 단독의 책임으로 혹은 정청래에게도 다소간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매도하려 한다.
김병기 소극에서 김병기, 정청래, 이재명 등의 입장이 어떻게 달랐던가 하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재명이 앞서 제시한 ‘여야 간 협치’의 구상 자체가 비현실적 허구라는 점이다. 매체에 보도되는 바, 화기애애하게 함박웃음 지으며 악수하는 모습 자체가 보여주기식 ‘쇼(위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병기 소극의 근원적 책임은 다소간에 이재명이 제시한 ‘여야 간 협치’의 구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재명은 “내란 척결은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 “협치와 야합은 다르다” 등의 입장에 있으나, 국힘당 장동혁은 그 반대이다. 여야 회동에서 장동혁은 특검기간 연장,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등에 “강력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표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협치는 상호 작용을 뜻하는 것이다. 이재명이 일단 ‘협치’라는 구호를 들고 나온 만큼, 이재명이 생각하고 필요로 하는 것에서만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국힘당 장동혁에게도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된다. 김병기와 장동혁이 야합하여 ‘더 센 특검법’을 까뭉개버린 것도, 크게 ‘협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재명이 여기까지는 ‘협치’이고, 그 너머는 ‘야합’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쌍방 간 ‘협치’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이다. ‘일방통행’을 ‘협치’로 포장하는 것은 위선이다.
김병기-장동혁 간 야합의 책임은 근원적으로 사흘 전에 이재명이 제시한 ‘협치’의 구호에 있고, 그 ‘협치’ 개념 자체가 허황한 것이다. ‘협치’를 통해서는 내란을 척결할 수가 없다. 국힘당은 여전히 내란을 지지하고 있고, 그 원내대표 송언석은 노상원 수첩에 적힌 사살 대상이 정말로 그렇게 (사살)되었으면 좋을 뻔 했다는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여야 협치’ 구호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그는 정치의 복원이 여야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여기에 빠진 것이 ‘국민’이다. ‘국민’의 뜻이 다수결로 반영되지 않는 정치는 민주적으로 복원될 수가 없다. 이때 국민의 뜻은 ‘추정’된 것이 아니라, 직접 투표를 통해 확인된 것이어야 한다.
이재명이 소리높여 외치는 ‘국민주권’의 정치철학이 결여한 것은 활성화된 정치적 발언의 주체로서의 국민 자체이다. 그러나 이재명이 주창하는 담론의 맥락에서 국민은 예외없이 이재명 자신이나 민주당 등, 위정자가 위해주어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남아있다..
‘협치’ 구호 만큼이나 이재명의 ‘국민주권’ 구호는 일방적이다. 그가 말하는 ‘국민주권’의 개념은 국민투표로 확인되지 않은 추정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지지도가 60% 이상 나온다는 것은 종합하여 뭉뚱그린 것이고, 사안별 지지도가 아니다. 여론 지지도가 높다해서, 이재명의 모든 정책이 지지받는 것이라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재명의 ‘국민주권’ 개념은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나 자신의 자의적 의지를 ‘국민의 뜻’으로 빙자하여 독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입에 달고 다닌 것이 국민의 뜻이었다.장동혁은 특검기간 연장,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대법관 증원 등이, 내란 척결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오히려 사법파괴 시도인 것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여당이 추진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여야에 합의가 불가하듯이, 국민도 합의에 이를 수 없다. 제각기 취향과 이해관계룰 달리하는 인간이 어떻게 합의에 쉬 도달할 수가 있나? 여야가 합의하자고 하고 국민의 합의가 있어야 무엇을 도모할 수 있다는 말은 아무것도 개혁하지 말고, 기존의 상태를 그대로 지켜나가자는 뜻이다.
여야든 국민이든 정치적 결정은 합의가 아니라, 다수결로 해야 한다. 민주정치의 원칙은 합의가 아니라, 다수결에 있다. 획일적 통합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되, 결정은 다수결로 해야 한다. 국회 내에서도 여야간 합의 운운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의원 수에 따라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 국민의 합의가 아니라, 그와 같이 국민의 뜻은 다수결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병기 소극의 근원적 책임은, 민주의 보루 다수결 원칙을 백안시하고, 뜬금없이 이재명이 들고나온 여야 간 협치의 구호에 있다.
한편으로, ‘협치’를 표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힘당 장동혁의 요구 및 김병기-장동혁 간 협의(합의)를 ‘야합’으로 폄훼한 것은 자기모순이다. ‘협치’는 일방의 생각을 상대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소통이다. 그러나 이재명이 장동혁의 요구를 ‘야합’으로 정의한 것은 자기의 가치관에 맞는 것, 필요한 것만 협치하겠다는 일방적 작용이며, 독선이다.
이재명을 비롯한 위정자의 독선은 ‘협치’의 구호 뿐 아니라,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의 구호에서도 드러난다. 4년 중임제 자체에 대한 평가 여부를 떠나, 개헌의 필요성을 4년 중임제하고만 연결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여기에 빠진 것이, 시중에 회자하고 있는 국민발안권이다. 국민의 능동적 정치 발언권을 백안시하고,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목매는 것은 위정자의 권력욕에 기인한 편향성의 발로이다. 위정자들이 공히 갖는 편향성과 독선은 유신독재의 박정희와 여전히 같은 물에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안은 동상이몽의 극치이다. 여론조사에서 개헌 필요성이 57%, 또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실시에 대한 찬성이 61%라고 한다..(한겨레, 2025.9.11.) 여기서 여지없이 도출되는 결론은 내년 지방선거에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위정자들의 눈에는 근 40년 만에 하는 개헌의 핵심이 4년 중임제'인 줄로만 보인다는 사실이 반증되었다.
이런 여론조사는 목적성, 경향성을 가진 편파적인 것이다. 왜 여론조사에서 국민발안권 제도화 여부에 대해서는 아예 묻지 않나? 그 이유는 자명하다. 끼리끼리 카르텔을 맺은 여야 위정자들이 국민에게 정치적 발언권을 주기 싫어하는 것이다. 극소수를 제외한 다수 위정자들이, 여야 정당끼리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협치하고 야합하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념할 것은, 여야 간 대립(혹은 협치)이 아니라, 여야 위정자들과 국민 민중 간의 대립, 갈등이 성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위정자 중 누구, 거대 양당 중에 어느 편을 지지하는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위정자를 한 묶음으로 해서, 그들에게 대항하여 독재 유신헌법이 앗아간 국민 민중의 정치적 발언권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겠다. 국민의 입법 및 개헌 발의권, 국민 발의에 의한 국민투표 부의권 등이 그것이다.
그러자면, 극장의 우상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이 여야 간 협치를 구호로 내걸 때,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국회 다수결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너나없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로서 여당이 추구하고 있는 검찰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에 대해, 혹여 이재명이 유보의 뜻을 표한다 해도, 국민이 반드시 그를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탄핵에 결정적 쐐기를 박은 문형배(헌법재판소 소장 대행)가 법관 증원은 당분간 고려해야 할 것이라 한다고 해서, 증원에 발목 잡히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겠다. 편견의 한계를 피해갈 수 없는 개인의 사견(私見)이 아니라, 국민 민중의 경험에 의한 지혜가 우선해야 하는 것이다.
제도의 변화는 완벽한 기획에 따른 것이 아니더라도, 우선 첫발 떼고, 나머지는 보완해 가면 된다. 우선 눈에 보이는 대로 때 놓치지 않고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뗌질과 미봉책도 구슬과 같아서 엮어 놓으면 보배가 된다. 이미 공고한 성을 구축하고 있는 기득권의 노림수가 지치지 않고 다양하게 개혁을 방해하는 가운데, 시간을 놓치고 주저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시간의 연기는 개혁의 편이 아니고, 장고 끝에는 오히려 악수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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